[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18회

등록 2005.07.11 08:01수정 2005.07.11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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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장 이혼권(離魂拳)

철혈보주 독고문(獨孤文)은 아들의 시신을 보고도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그의 속내야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묵묵히 관 속에 뉘어진 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른발이 발목부터 잘려나가고, 갈고리 같은 병기에 의해 심장이 뜯겨져 나가 있었다. 죽은 뒤에도 경악과 의혹스런 표정은 풀지 않았다. 침착한 아이였다. 그래서 전 무림이 움직인 이번 조사에 선발되었던 터였다. 최소한 자기 목숨 정도는 지킬 것이라 생각했다.

깨알 같은 음호로 된 전서구를 받았기에 더욱 안심하고 있었다. 그 내용은 놀라운 것이었고, 아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그들 일행 중 보고를 받은 곳은 오직 두 곳 뿐이었다. 철혈보와 구양가. 구파일방이 아닌 구양가란 점이 놀라웠지만 아들은 훌륭하게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리라 믿었다.

"이건 분명 구음쇄골조(九陰碎骨爪)군."

육능풍이 침음성을 터트리며 나직하게 말을 흘렸다. 구음쇄골조는 과거 구마가 사용하던 독문병기 중 하나. 보고에 있는 것과 같이 천마곡이 과거 절대구마의 후인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명백하게 입증시켜주는 일이었다.

"쓸어버립시다. 나는 조카 놈의 시신 앞에 그 놈들 중 단 하나라도 살려두지 않을 것을 맹세하겠소."


철혈대를 이끄는 독고좌였다. 독고하운은 그가 자신의 후계로 점찍고 있던 아이였다. 차기 철혈대주. 그의 눈에서는 날카로운 금광이 쏘아 나오고 있었다. 철혈보의 원칙대로 목숨에 대한 대가는 상대의 목숨이었다. 모두 그렇게 느끼고 있었다. 사실 절대구마의 무학에 있어 천적은 철혈보의 무학이었다. 오룡의 유학을 얻은 철혈대제 독고수광은 절대구마의 후인들을 대비해 철혈보를 세운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진형은 아이의 장례 준비를 해주겠소?"


독고문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만향지 진독수가 고개를 끄떡였다. 독고상천은 동생의 시신을 보며 주먹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화산파(華山波)의 장문인 개화검(開花劍) 우태현(瑀太賢)은 사제의 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화산오검(華山五劍)의 수좌(首座)이자 마음속에 검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었던 화심검(和心劍) 화웅(樺雄)의 시신은 차라리 도륙되었다고 보는 것이 가장 적합한 표현이었다. 온전한 모습을 갖추지 못한 모습이었다. 명치 아래부터 아랫배까지 파인 구명은 사람의 머리통이 들어가고도 남음이 있을 정도였고, 귀 밑에서 목줄기까지 베인 검흔으로 목은 기이한 각도로 꺾여 있었다.

그는 화산오검 중 한 명이었던 매봉신검(梅䭰神劍) 탁일항(倬壹恒)의 죽음을 조사하다 그 임무를 완수치 못하자 이번 선발된 조사대에 자신이 끼기를 간절히 원했다. 탁일항의 죽음이 천마곡과 관련이 있다는 그의 생각이 너무 확고하여 허락한 것인데 이 지경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사실 이번 조사대는 대개가 후기지수로 구성되어 있어 매사에 신중한 화웅이라면 그들을 이끌 수 있다고 판단한 것도 한몫 하였다. 파옥노군(破玉怒君) 규진(揆桭)과 화산오검 중 일인인 자하신검(紫霞新劍) 정무(鄭珷) 역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잔인한 놈들...오라는게야. 자신 있으면 오라는 것이지."

파옥노군의 이빨 사이로 분노를 짓이기는 중얼거림이 새 나오고 있었다. 백삼십년 전에 모습을 드러낸 혈검문(血劍門)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절대구마의 후인임을 명백하게 내보이고 있었고, 이제 전 무림에 자신들의 존재를 알린 것이다.

이러한 일은 나머지 스물두 군데의 무림문파나 세가에서도 있었다. 전 무림이 분노하기 시작했다. 분노란 것은 묘해서 자꾸 말을 하다보면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더욱 커지는 것이다. 그 분노의 대상이 공동의 적이라면 분노는 더욱 활활 타오르게 되는 것이다.

구양휘가 단 하나밖에 없는 동생 구양중의 죽음에 대한 비보(悲報)를 듣고 구양가로 급히 떠난 것은 영락 칠년 정월 스무이레였다. 광도와 혜청을 동행한 채.

------------
창문에 돌멩이가 날아와 부닥치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여자의 비명소리가 새벽 공기를 갈랐다.

"아--악--!"

새벽은 사람 몸이 가장 느리게 반응하는 때다. 하지만 그는 창문에 부닥치는 돌멩이 소리에 눈을 뜨고, 여인의 비명에 정신을 차리면서 자신의 주위로 밀려든 살기에 송하령의 몸을 안고 급히 옆으로 굴렀다.

파--팍--!

그가 누워있던 침상에는 두 자루의 검날이 솟구쳐 오르고 있었다. 잠시만 더 누워 있었다면 꼬치에 꿰듯 검날은 그의 몸을 뚫고 들어왔을 것이다. 하지만 위기는 그것뿐이 아니었다. 그는 위맹한 기류가 쏘아오는 것을 느끼며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송하령을 보호하기 위해 등으로 고스란히 장력을 맞았다. 맹렬한 고통이 등짝을 파고들었다.

펑!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장이 뒤흔들리고 정신이 아찔해왔다. 그의 등짝에 작렬한 장력은 예사 것이 아니었다. 상체를 벌거벗은 상태에서 그의 등에는 보통사람보다 작은 장인이 선명하게 찍혔다. 하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송하령을 옆으로 밀면서 앞으로 굴렀다.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상대의 기쾌한 공격은 그가 있던 바닥을 뒤집어 놓고 다시 그의 머리 쪽을 향해 다가왔다. 그는 상대를 확인하지도 못한 채, 왼손을 흔들며 상대의 장력을 옆으로 비껴나가게 함과 동시에 상대의 손목관절에 있는 양곡혈(陽曲穴)을 잡아채갔다. 무의식적인 수비를 위한 공격이었지만 그것은 예상할 수 없는 것이어서 상대 역시 공격을 하다말고 급히 물러났다.

매우 민첩한 인물이었다. 물러나는가 싶더니 다시 빠르게 뻗은 손을 교차시키며 좌우 쌍장을 쾌속하게 뻗어왔다. 그러나 이제는 당하지 않을 터였다.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차린 담천의는 일어나지 않고 상체를 뉘였다. 담천의의 상체가 지면과 평행이 되며 빙글 돌았다. 그의 팔이 부드럽게 장력을 밀어내며 상대 오른팔을 타고 오르며 팔 관절에 있는 곡지혈(曲池穴)을 잡아채 가며 오른손을 쭉 밀었다.

상대의 기쾌한 공격이 중간중간에서 끊기고 있었다. 왜소한 몸집에 복면을 쓰고 있어 표정을 살필 수 없었으나 빼꼼이 보이는 눈빛에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다. 여유를 돌린 담천의가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미는가 하면 잡고, 채 가는가 싶으면 어느새 막강한 타격을 실은 공격이다. 태극산수의 묘용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었다. 그의 부드러우면서도 강맹한 기운이 장내를 휩쓸자 공격하던 자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 이미 등에 치명적인 장력을 맞아 기혈이 뒤집어져 맹렬한 고통에 진기의 흐름이 고르지 못했지만 상대에게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었는지 더욱 공격적으로 변해갔다.

쇄---액-- 슈---우---

방바닥을 뚫고 침상에 꽂혔던 두 자루의 검날은 이미 독랄한 뱀의 혀처럼 그의 하체와 옆구리를 노리며 파고들었다. 담천의는 자신에게 장력을 날린 자를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몸을 사각으로 비틀며 신형을 허공으로 솟구쳤다. 허공에서 급하게 두 번이나 재주를 넘은 그는 두 흑의인의 팔목과 머리를 일곱 번이나 연속적으로 공격했다. 그들은 담천의의 쾌속한 대응에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서기 바빴다.

동시에 그는 허공에서 신형을 틀며 장력을 날리며 다가드는 인물에게 돌아섰다. 검을 든 두 흑의인을 잠시 떼어놓고 정작 그가 공격하고자 했던 목표는 장력을 날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쾌속하게 다가드는 그 자의 전면으로 오히려 가슴을 내밀며 마주쳐 갔다. 하지만 그의 움직임은 마치 뼈 없는 동물처럼 부드럽게 꺾이며 상대의 장력이 그의 가슴을 강타하려는 순간 옆구리 사이로 흘리는가 싶더니 오른 손을 튕기듯 뒤집으면서 손바닥으로 상대의 가슴을 격타했다.

퍽---!

의외였다. 몸집이 왜소하다고 생각은 했으나 가슴에 닿는 순간 뭉클한 느낌이 오는게 상대는 여자인 모양이었다. 여자의 가슴을 공격하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막강한 타격이 실린 그의 장은 치명적이었다.

"우--엑---!"

그녀는 비명과 함께 입에서 피분수를 뿜으며 일장 밖으로 날아가 바닥에 처박혔다. 즉사는 면했지만 최소한 움직이지는 못할 터였다. 하지만 그가 상대의 가슴을 격타하고 두 흑의인의 검날이 그의 양 옆구리를 노리며 파고든 것은 동시였다. 숨돌릴 틈이 없었다.

"핫--!"

그는 짧은 소성과 함께 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끊임없이 파고드는 검날은 다시 그의 발목을 노리며 놓아주지를 않았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손을 바닥에 짚고 발목을 노리고 쏘아 오는 두 자루의 검날을 옆으로 비껴내면서 양발로 상대의 검배를 차는가 동시에 신형을 세웠다.

위---잉--- 퍽!

헌데 이게 웬일인가? 그가 신형을 바로 잡는 순간 소리없이 파고 든 경력은 그의 몸에 닿는 순간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느낄 수 없었던 소리없는 경력은 그의 왼쪽어깨에 쇠뭉치로 후려치는 듯한 고통을 안겨주었다. 정신이 아득해 왔다. 왼쪽 어깨가 탈골되며 뼈가 부러진 것 같았다. 왼팔이 허공에서 덜렁거리고 목에서 피가 솟구쳤다.

"우--욱!"

그가 주륵 밀리며 나동그라졌다. 도대체 무엇인가. 쇠뭉치로 어깨를 내리친 것 같은 이것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의 입에서 피분수가 뿜어졌다. 더구나 그 충격에 그의 몸은 바닥에 나동그라짐과 동시에 앞으로 데굴데굴 굴렀다. 정신이 혼미해왔다. 의식의 끈을 맹렬히 잡고는 있었지만 이미 정신과 몸은 엄청난 충격에 의지를 말살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서도 그가 굴러간 곳은 자신의 검이 놓인 탁자 쪽이었다. 그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고, 그가 바라던 일이었다. 그는 누가 자신을 공격했는지 파악할 사이도 없이 자신의 검을 집어 들었다. 동시에 검자루를 잡고는 검집째 검을 뽑지도 않고 뒤로 휘둘렀다. 그것은 이렇듯 급박한 순간에 또 다른 묘용을 가져왔다. 검에서 검집이 빠져나가며 검집이 등 뒤로 다가드는 상대에게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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