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08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7.14 17:02수정 2005.07.14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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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한 결전

“일이 모두 잘 되었단 말이지? 나무아미타불.”

장작을 패고 있던 두청은 안면에 흉터가 있는 사람의 보고를 받고서는 웃음을 지었다. 두청이 한번 손짓을 하자 흉터가 진 사내는 바람같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서둘러라! 조선군이 제대로 방비를 갖추기 전에 우리가 먼저 도착해야 한다!”

청나라의 몽고팔기에 예속되어 있는 2만의 몽고군은 좁은 길에서 기병을 이동시키느라 애를 먹으면서도 쉬지 않고 남한산성으로 진군했다. 멀리서 이를 숨어 지켜보고 있던 조선병사가 마치 다람쥐 마냥 산등성이를 넘어 나무사이로 달려갔다.

“몽고놈들은 대략 2만이고 우리는 만 명이 채 아니 되오. 남한산성에 얼마정도의 장졸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으나 내가 듣기로는 조정에서 항복의 뜻으로 안에 있던 병사들을 대부분 밖으로 내보내었다 하오. 거기서 바로 심양으로 끌려간 이들도 상당할 것이오.”

차충량의 끝마디에 작전회의를 하던 막사 안은 숙연한 분위기가 되었다. 조선 팔도에 인적이 드물어질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심양으로 끌려갔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있었으며 그 말은 여러 사람들의 증언으로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듣자하니 몽고인들의 땅에 큰 기근이 자주 들어 이참에 그 놈들이 조선 땅으로 옮겨 살 것이라는 흉흉한 풍문도 나돌고 있소이다.”


최효일의 말은 말 그대로 풍문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진실 그 이상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졌다. 가끔씩 짧은 휴식만을 가지고 행군을 계속한 조선군은 마침내 몽고군보다 먼저 남한산성 가까이까지 다가갈 수 있었다.

“척후병이 돌아왔습니다!”


척후병이 몽고병들이 쉴 새 없이 남한산성으로 진군하고 있으며 반나절이 채 안 되어 도착할 것이라고 전하였다. 장판수와 차충량은 병사들을 독촉해 남한산성 앞으로 몰고 간 뒤 남쪽 성문으로 달려가 소리를 질렀다.

“어서 성문을 열시오! 곧 몽고병들이 몰려오오!”

장판수의 소리에 성벽위로 누군가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가 금세 사라졌다. 금방이라도 열릴 듯한 성문은 도무지 열리지 않았고 장판수는 또다시 소리쳤다.

“성문을 여시오!”

이번에는 아예 쳐다보는 이도 없어 장판수는 병사들에게 ‘성문을 여시오!’란 말을 되풀이 하도록 지시했다. 열 차례나 병사들의 함성이 되풀이 되었음에도 성안은 조용하기만 했다. 이에 병사들은 자연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거 무슨 조화인가?”
“혹시 오랑캐놈들이 성을 빼앗은 게 아닌가?”

병사들의 웅성거림은 곧 모두의 마음가짐에 불안감을 가져왔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와 욕설이 터져 나왔다. 최효일은 흐트러진 군기를 바로잡기 위해 소리를 질렀다.

“모두 조용히 하라! 곧 성문은 열릴 것이니라!”

한 참 뒤에야 꿩 깃털 전립에 전포를 깔끔하게 갖추어 입은 군관이 성벽위로 병사들과 모습을 드러내어 느긋하게 말했다.

“무슨 일들인가?”
“몽고병들이 몰려오고 있습네다! 속히 성문을 여시오!”
“그대들이 누구기에 성문을 열라 말라 하는가?”

장판수는 약간은 이죽거리는 것 같은 군관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분을 삭이고 차근차근히 말했다.

“저희는 남 병사 휘하의 병사들입네다! 몽고병들이 이리로 몰려오고 있다기에 급히 이리로 왔습네다!”

군관은 성벽위에서 너털웃음을 흘려보내었다.

“이미 전쟁이 끝나 성안에 병사고 물자고 제대로 남아있지 않는 판국인데 그 자들이 와서 뭘 얻겠다는 것인가? 또한 그게 뭐가 대수란 말인가?”

장판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났지만 이를 억누르고 소리쳤다.

“수어사 나으리는 어디 있습네까? 수어사 나으리를 불러주시면 절 알 것입네다!”

장판수가 얼굴을 붉히며 소리치자 군관은 입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

“수어사고 뭐고 간에 웬만한 벼슬아치들은 모조리 한양으로 가고 이젠 내가 이 성을 지키고 있다네. 자네들이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함부로 성문을 열어줄 수는 없으니 거기서 진을 치던 밥을 지어 먹던 알아서 하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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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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