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09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7.15 17:05수정 2005.07.1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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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는 더 이상 성질을 참지 못하고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 댔다.

"야, 이 썩은 된장에 비벼먹을 가이삿기야! 당장 이 문을 열지 않으면 뛰어 올라가 네 놈을 성벽 아래로 집어던져 버리갔어!"


군관은 더 이상 대꾸도 하기 싫다는 표정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장판수는 병사들에게 성벽을 타고 오를 밧줄을 가져오라며 소리를 질러대었다. 최효일이 그런 장판수를 말렸다.

"여기서 이렇게 실랑이를 벌일 사이가 없소! 다른 대책을 강구해야 하오!"

최효일의 말인 즉 결국 이 병력이 성으로 들어갈 수 없다면 야전에서 몽고병과 싸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판수는 물론 차충량과 차예량도 뜻밖의 상황에 골머리를 앓을 수밖에 없었다.

"장초관은 두 번씩이나 야전에서 오랑캐들과 싸웠으니 어찌 방비를 해야 하는 지 알 것이 아니오?”

최효일이 일말의 기대감을 담아 묻자 무작정 흥분했던 장판수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제가 겪었던 두 번의 싸움은 이번과는 상황이 다릅네다. 광교산에서의 싸움은 적의 수가 많지 않았고 우리는 미리 좋은 위치를 잡아 둘로 나뉘어 무모하게 공격하는 적을 도리어 각기 격퇴할 수 있었습네다. 금화에서의 싸움은 적의 수가 많았고 뜻하지 않게 도주를 한 자들이 있어 결국 승리하지 못했지만 이 역시 좋은 위치에 진을 친 후 공격해 오는 적을 맞아 싸워 처음에 승기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이었습네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곳에 진을 칠 수도 없고 어중간한 시기와 장소에서 어떻게 나올지도 모르는 많은 수의 적을 기다리고 있는 겁네다."


옆에서 장판수의 얘기를 듣던 차충량과 차예량의 표정이 한결 더 어두워졌다. 이들뿐만이 아니라 밖에서 무작정 기다리던 병사들도 점차 동요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뭐야? 왜 성문을 안 여는 거지?"
"이거 산성만 믿고 여기까지 온 거 아닌가?"


이런 와중에서 사람들이 대책을 짜내지 못해 어쩔 줄 몰라 하자 차예량은 몸을 돌려 뒤쪽으로 뛰어가 병사들에게 병마사 서우신이 따라왔는지를 수소문했다.

"이 사람이라면 뒤쪽 어디엔가 있긴 있을 겁니다."

병사들은 상당히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답했고 차예량은 계화를 찾아가 자신과 함께 서우신에게 찾아가 볼 것을 권했다.

"제가 무슨 도움이 된다고 그러십니까?"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는 여인의 간청도 잘 먹혀들지 않겠느냐?"

차예량은 병사들과 떨어진 곳에서 서너 명의 병사들에게 호위를 받으며 맨바닥에 자리를 깔고 쉬고 있는 서우신을 찾아갔다.

"무슨 일인가?"
"성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습니다."
"......"

차예량의 앞 뒤 없는 말에 서우신은 그저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이 여인을 보시옵소서. 한 때 궁에서 일하던 처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오랑캐들이 들이닥칠지도 모르는 험악한 전장에 내밀어져 있습니다."
"그런 건 내가 시킨 일이 아니네!"

어이없는 서우신의 대답에 차예량은 울컥 화부터 치솟아 올랐고 그런 낌새를 눈치 챈 계화가 앞장서 급히 말했다.

"외람되오나 소녀가 한 말씀 올리겠나이다. 병마사 나으리께서는 지금까지도 불확실한 조정의 명을 어기느냐 마느냐를 가늠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제가 답을 드리자면 나으리는 이미 조정의 명을 어기고 있습니다."

서우신은 여전히 아무런 표정의 변화가 없었다.

"지금 조정은 아무런 답을 주지 못합니다. 지금 모든 것은 나으리의 판단에 따랐습니다."

서우신은 계화의 말에 약간 자존심이 상했는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말았다.

"계집이 뭘 안다고 주둥이를 나불거리는 것이냐? 발칙한고로......"

도리어 계화를 꾸짖는 서우신의 말에 기가 막힌 차예랑이 소리를 질러대었다.

"그럼 당신은 뭘 하기에 여기까지 따라와 자리를 깔고 앉아만 있단 말이오! 군량미조차 아까우니 썩 물러가시오!"

서우신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내가 여기 있는 건 내게 맡겨진 병사들이 여기 있기 때문일 따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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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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