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11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7.19 17:02수정 2005.07.19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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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곳곳에 궁수를 배치해 놓은 장판수는 병사들과 함께 몸을 숨기며 몽고병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장판수의 생각은 몽고병이 기병을 앞세워 정찰과 함께 진지를 혼란에 빠트리기 전에 요격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그 생각은 여지없이 엇나가 버리고 말았다.

"이런!"


나무조차 듬성해 길이 넓어진 곳에 방패에 갑주까지 걸친 몽고병이 방진을 이루며 전진해 오고 있었다. 저러한 태세라면 듬성듬성 숨어 있는 궁수들이 활을 쏜다고 해도 제대로 통하지 않으리란 건 자명한 일이었다.

"진으로 돌아가자! 저것은 포수들을 모아 상대해야 한다!"

장판수는 바람같이 달려가 창과 칼을 잘 쓰는 병사들을 뽑아 늘여 세운 후 포수들을 모았다. 그때 최효일이 달려와 다짜고짜 소리를 질렀다.

"화약이 왜 없다는 것이오! 화약을 있는 대로 내어 놓으시오!"

앞 뒤 영문을 모른 장판수는 조선군을 압박하며 다가오는 몽고군의 방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것들의 기를 꺾어 놓으려면 포수들이 필요하고 그들도 약간의 화약밖에 없습네다. 갑자기 화부터 낼 것이 아니라 병기를 관장하는 군관을 찾아보는 것이 순서가 아닙네까?"

장판수의 차근차근한 설명에 최효일은 얼굴을 붉히며 장판수에게 사과했다.


"미안하오. 내가 너무 성급했소. 하지만 진중에 이렇게 화약이 없어서야 어찌 싸우겠소?"
"나도 그렇고 모두 이제야 그걸 알았다는 것이 부끄러울 따름입네다."

그 때 총소리가 산발적으로 울리며 다가오던 몽고병의 대오가 그 자리에서 멈추어 섰다. 누군가 몽고병이 사정거리에 다가오기 전에 총을 쏘았고 이를 따라 다른 포수들도 사격을 해대었던 것이었다.

"어떤 놈이야!"

장판수가 칼을 뽑아들고 나서섰지만 포수들은 벌을 두려워하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 즈음 몽고병들은 사격에 놀란 듯, 서서히 뒤로 물러나 조선군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후였다.

"모두 총구를 내 앞으로 들라우!"

화승총은 격발하기 전 총강의 압력을 위해 총구를 종이나 천으로 막아 놓는데, 이미 격발했다면 이러한 종이나 천이 붙어 있을 리 만무했다. 순식간에 일곱 명의 포수가 지적되었고 그들은 군령에 의해 엄벌을 받게 될 터였다. 그러나 포수들을 지휘하던 군관 하나가 장판수에게 반발했다.

"이보시오! 장초관이 총에 대해 알면 얼마나 안다고 우리더러 이래라 저래라 하시오! 겨우 초관 주제에!"

장판수는 칼을 집어넣은 후 그 군관의 멱살을 잡았다.

"이보라우! 기래서 지금 한 짓이 잘했다는 기야?"
"어찌 되었건 장초관은 장초관 나름대로 신분에 맞게 행동하시오! 상황이 급박하야 명을 따라 주었더니 이거 심하지 않소?"
"좋아!"

장판수는 화승총 하나를 포수에게서 빼앗아 군관에게 들려주며 소리쳤다.

"내래 아까 오랑캐들이 있던 곳까지 가 서 있을 테니 한번 쏘아서 맞춰 보라우!"

그 말 한마디에 군관은 표정이 굳어지고 말았다. 그 거리는 화승총의 사격이 닫지 않는 거리임이 너무나 뻔했다.

"큰소리치는 것을 보니 할 수 있갔지? 나를 맞추면 이 일은 없던 걸로 하갔어! 누구든지 자신 있으면 나서라우!"

군관과 포수들이 머리를 숙이며 아무 말이 없자 장판수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기래, 난 하찮은 초관에 지나지 않아! 지휘할 장수들은 진중에 없어! 기래서 오랑캐들과 싸울 뜻이 없으면 고향으로 돌아가라는 말까지 한 거 아니네! 지금은 어찌되었건 눈앞의 적을 무찔러야 해! 불만이 있으면 오랑캐들을 무찌른 후에 말하라우!"

장판수는 침을 힘껏 뱉은 후에 군관에게 명을 따르지 않은 죄로 일곱명의 포수들에게 10여대의 태형을 가할 것을 명했다. 군관은 순순히 장판수의 명을 따랐고 이 일로 인해 해이해졌던 군기는 바로 잡혀 한층 엄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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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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