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26회

등록 2005.07.21 07:57수정 2005.07.21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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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거처는 송대(宋代) 궁궐지인 용대(龍臺) 근처의 장원이었다. 이곳은 본래 단사가 준비해 둔 곳이었는데, 화북지방의 것과는 달리 화남지방의 장원처럼 연못과 숲이 잘 어우러진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단시일 내에 꾸밀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오랫동안 준비해 온 것임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주인 없이 비어있던 그곳은 이제 주인을 맞이하게 되었고, 언제나 조용하던 장원은 사람들의 발길이 오고가는 중에도 알 수 없는 엄밀한 기운이 일렁이기도 했다.


"후---우"

진기는 고르지 않았다. 이혼권 언무외의 권은 허명(虛名)이 아니었다. 그것은 외부적인 충격과 고통보다 내부를 뒤흔드는 암경으로 인해 더욱 큰 충격과 고통을 주고 있었다. 현심경의 심법은 내상을 치유하는데 도움이 큰 것이었지만 단시일 내에 회복할 수는 없었다.

그가 운공을 마치고 눈을 뜨자 송하령이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호흡은 여전히 거칠었고, 운공 중에도 간간이 신음소리가 흘러나왔기 때문이었다. 단사와 두칠 역시 근심스런 모습으로 보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그의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에 감탄하고 있었다. 언무외의 권을 맞았다면 아무리 고수라 하나 족히 보름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할 일이었다.

"유탐화의 행방은 찾았소?"

사라진 지 열흘이 지났다. 지난 기간 단사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하여 흔적을 찾고 조사했다. 단사는 고개를 숙였다.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유탐화는 죽거나, 상대에게 잡혀간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무사히 몸을 빼냈고 지금도 상대의 이목을 피해 피신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랜 만에 움직이는 조직은 삐꺽거리기 쉽다. 사람의 몸에서 쓰지 않았던 근육을 움직일 때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준비를 해왔다 하나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시기에 갖추어진 조직의 정보력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단사는 그것을 자신 탓으로 돌렸다.

"근거는?"


"청화원에서 주공이 기습받기 전에 유탐화가 먼저 기습을 받은 것으로 판단되었습니다. 기습한 인원은 주공을 기습했던 인원과 거의 같을 것이라 추정되는데, 실내에서 발견된 피는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적어도 다섯 명 이상의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또한 거처 밖 난간과 인공 야산에서도 여러 명이 치열하게 다툰 흔적이 있고, 그러한 흔적은 청화원 밖으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격전을 벌이며 빠져 나갔을 가능성이 많다는 말이었다. 유탐화의 무공수위는 담천의 자신이 판단해 보건데 절정고수라 하기 어렵다.

"그에게는 추혼귀견수 하공량이 있었소."

"하공량의 존재만으로 가능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상대는 기습하면서도 분명 하공량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그를 제압할만한 인물들을 대동했을 것입니다."

하공량의 존재는 절대 무시할 정도가 아니었다. 이혼권 언무탁이라도 한 수 접어주어야 하는 상대가 하공량이었다. 자신을 향한 기습에서도 이들이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당했을 것이다. 상대는 가장 방심하는 시각과 자신을 처리할만한 인물을 분명 투입했다. 아주 적절한 인물과 인원을 투입한 것이다.

"유탐화에게 남들이 모르는 비장의 구명지기(救命之器)는 있지 않았겠소? 그것이 하령의 굉천뢰 같은 암기나 무기이던, 아니면 아무도 모르는 호신위(護身衛)가 은밀하게 존재했던지 말이오."

"호신위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발자국이나 흔적으로 보아 유탐화와 동행하는 인원이 여덟 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유곡과 그의 아내, 사비(四妃) 중 주공께 죽은 아이 하나를 제외한 세 명, 그리고 하공량이라면 여섯 명 뿐인데, 두 명이 추가된 셈입니다."

담천의는 갑자기 자신이 너무 유탐화를 경시했다고 생각했다. 사내들은 그렇다. 유탐화가 몽화인 사실을 아는 것은 자신뿐이다. 유곡이 몽화라는 여자라 생각되는 순간 너무 나약한 존재로 생각했던 것이다. 유탐화는 누가 뭐라 해도 이 땅에서 가장 뛰어난 두뇌를 가진 인물이었다.

유탐화는 매우 조심스럽고 완벽한 성격이었다. 그가 자신에게 말할 정도로 위험을 느끼고 있었다면 그 어떠한 기습이라도 피할 수 있는 완벽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더구나 자신이 가장 믿고 있었던 사비 중 연교(蓮翹)의 배반을 알고 있었던 유탐화로서는 더욱 완벽한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 그가 그토록 어렵게 이곳을 벗어났음은 상대 역시 무서운 자들이라는 의미였다.

"청화원을 나간 뒤의 행적은…?"

"확실치 않습니다. 유곡이 고의로 몇 군데 방수들을 시켜 사방에 흔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찾기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강남 쪽으로 향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자신의 흔적을 없애며 달아나는 상대를 추적하기는 오히려 쉽다. 하지만 사방에 흔적을 만들어 놓았다면 문제다. 어느 하나 소홀할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 중 하나를 찾기 위해 많은 시간을 허비해야 하는 것이다. 그 허비하는 시간 동안 상대는 이미 완벽하게 추적자의 손을 벗어나게 되는 것이다.

"강남이라…?"

"조만간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단사가 고개를 숙이자 담천의의 시선이 단사에서 두칠로 넘어갔다.

"부탁드린 일은?"

이혼권 언무탁의 일을 말함이었다.

"언무탁은 호랑이요. 이빨과 발톱이 빠졌어도 늑대와 같지는 않소. 호랑이로서의 대접을 해주었소."

담천의는 두칠의 마음을 이해했다. 언무탁의 배분이나 명성으로 볼 때, 그가 가진 위명과 자존심으로 볼 때 그는 굴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지가 잘려나가는 고통 속에서도 그는 위엄을 버리지 않았을 것이다. 겉으로는 아무리 강한 척 하더라도 죽음 앞에서는 비굴해 지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두칠이 인정하고 그에 맞는 대접을 해주었다면 그는 어떠한 고통과 위협을 가하더라도 자신이 아는 것을 토해내지 않을 사람이 분명했다. 호랑이에 대한 대접은 깨끗한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다.

"하지만 주공께 일장을 맞고 쓰러진 계집으로부터 약간은 알아낼 수 있었소."

두칠은 의외로 신중했다.

"주공의 등에 난 장인은 조양궁(朝陽宮)의 조양장(朝陽掌)이오. 그녀는 조양궁 출신으로 조양장을 완벽하게 익힌 계집이오."

"조양궁…?"

조양궁에 대해서는 이미 조양(朝陽)의 계명성(啓明星:샛별, 금성)이라는 진진(晋珍)을 만난 적이 있었다. 섭장천의 외손녀로 조양궁의 소궁주였던 그녀는 담천의로 인하여 마음이 상한 뒤 다시 조양궁으로 돌아간 소녀였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조양궁이 자신을 노릴 이유는 전혀 없었다. 더구나 천지회 일에 조양궁이 끼어들 이유는 전혀 없었다.

"그녀는 조양궁 출신이지만 천지회에 일원이오. 헌데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알아냈소."

어디 출신이던 천지회에 비밀리에 가입하는 일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구파일방의 인물 중에서도 천지회에 가입한 인물도 간혹 발각되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모용정(慕容姃)이었소."

"모용가(慕容家)의 여식…?"

두칠은 담천의의 반문에 고개를 끄떡였다.

"모용씨는 이 중원에 오직 하나요. 그녀가 모용가의 출신인 것은 확실하오. 자세한 내용은 더 조사해 보아야 알겠지만 그녀는 현 모용가의 가주인 모용화궁(慕容和宮)의 딸일 가능성이 높소."

담천의는 갑자기 머리가 혼란해졌다. 모용가의 가주 딸이 왜 조양궁에서 자랐으며, 더구나 천지회에 가입한 것일까? 더구나 모용화궁의 딸이라면 자신이 알고 있는 모용수의 동생이나 누나가 된다는 말이 아닌가? 모용수와의 관계로 보아 아무리 자신을 노린 여자라 해도 마구 대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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