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27회

등록 2005.07.22 07:55수정 2005.07.22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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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지금 어디에 있소?"

"이곳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기이하게도 그녀는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죽어 있는 것도 아닌 상태요."


"그게 무슨 말이오?"

두칠은 담천의의 반문에 고개를 저었다. 그가 묻는 의도를 모르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공과 사는 반드시 구분해야 했다. 아무리 담천의가 모용수와 관계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는 엄연하게 담천의의 몸에, 아니 초혼령주의 몸에 상처를 입힌 계집일 뿐이었다.

"그녀는 중요한 말을 하는 순간에 혼절했소. 그러지만 않았다면 이번 영주를 노린 자들이 누구인지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 그녀는 무언가에 의해 제약을 받은 듯 중요한 말을 하려는 순간에 눈을 뒤집으면서 혼절한 것이오. 사흘 뒤에 깨어나기는 했지만 그녀는 자신의 기억을 잃은 것인지 미친 것인지 알 수가 없는 상태요."

어떠한 고통을 가한 것일까? 두칠은 아주 충실하게 담천의의 명을 수행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혼권 언무탁의 사지를 잘라가면서 그녀에게 죽음보다 더 극한 공포를 맛보게 해주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공포를 이기지 못하고 묻는 대로 대답을 했을 것이다.

"…?"


"그녀는 깨어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잠든 것도 아닌 몽롱한 상태로 겨우 떠먹이는 죽 정도나 받아먹는 상태요."

"정말 모용가의 여식이 맞는 것이오?"


"그녀의 말이었으니 분명할 것이오. 다만 그녀는 정실의 몸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 첩실이나 시녀의 몸에서 태어난 자식일 가능성이 높소. 그녀는 태어나자마자 얼마 안 되어 조양궁에 보내졌고, 그곳에서 자랐소. 그 연유를 알아보고는 있지만 오래된 일이라 쉽지 않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모용가는 씨가 귀했다. 가문의 인원은 가문의 성쇠와도 직결되는 일이었지만 모용가는 자신들의 성을 가진 혈족을 별로 늘이지 못했다. 그래서 모용가의 남자에게는 매우 관대한 것이 가법이었다. 첩실이던, 시녀의 배에서 나온 자식이건 아들이라면 모두 정실의 아들이 되었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기이한 일이군,"

담천의는 눈을 지그시 감고는 생각에 잠겼다. 확실히 일반적인 일은 아니다. 두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이번 유탐화와 주공을 기습했던 자들은 분명 천지회의 인물들이었소. 단순히 내부 알력으로 기인한 것이라 생각하기엔 미심쩍은 부분이 꽤 드러나고 있소."

"단순하게 미심쩍은 것이 아니라 깊숙이 개입되어 있는 것으로 보여요. 다만 천지회의 어느 인물이 이 일을 주동하고 있느냐는 것이죠."

옆에서 두칠의 말을 듣고 있던 단사가 끼어들었다. 확실히 천지회에서 깊숙이 개입하고 있었다. 이윽고 담천의가 눈을 떴다. 이미 유곡이 남긴 천이란 글자로 내심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더구나 단사로부터 그 동안 여러 가지 보고를 받은 바 있었다.

"어차피 초혼령은 예정대로 열흘 뒤 발동하오."

초혼령의 발동. 이제 다시 초혼령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것인가? 헌데 누구에게 초혼령이 떨어진다는 것일까?

"아직 영주께서는 거동을 할 수 없는 상태요. 열흘 뒤에 초혼령을 내리게 되면 이십여 일 뒤에는 반드시 나서야 하시는데 어려운 일이오."

"가능하오. 나는 지난 열흘 동안 많이 좋아졌고, 앞으로 이십여 일이면 최소한 칠팔 할 정도는 회복될 거요. 그리고…."

"…!"

"규칙은 가진 자가 바꿀 수 있는 것이오. 나는 초혼령을 과거의 규칙대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오. 열흘이란 기간도, 천고문이란 번거로운 절차도 취하지 않을 것이오. 그 날 내리고 그 날 처리할 수도 있고, 기한을 주고 따르라고 할 수도 있소."

규칙은 지키고자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 규칙을 만든 자는 당연히 그 규칙을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은 가진 자의 특권이다, 당하는 쪽에서는 왜 규칙을 바꾸었느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그 규칙이 실행되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한다.

"과거에 초혼령은 명분이 있었소. 황실을 보호한다는 명분 말이오. 그로 인해 다른 제약을 받지 않았소. 하지만 지금은 이미 해금이 된 상태요. 더구나 나에게는 과거의 부친처럼 황실로부터 부여된 명분을 가지고 있지 않소."

과거와 달리 이제 초혼령은, 그리고 그것을 뒷받침하는 균대위는 그저 사조직일 뿐이었다. 그것이 과거의 초혼령과 지금의 초혼령이 다른 명백한 점이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담천의가 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일정한 한계를 그어놓고 그 안에서 원칙을 지키려 충실했던 사고가 이제는 알을 깨고 부화하듯이 그 틀을 깨며 자유로워지고 있었다. 그 때였다. 밖에서 백렴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선위(天璇衛)의 위장 백렴이오."

굳이 천선위의 위장임을 밝히는 인사는 이례적인 일이다. 담천의는 분명 백렴이 누군가 같이 왔음을 알았다.

"들어오시오."

백렴은 예상과 달리 혼자 들어왔다. 그는 담천의 곁으로 다가가 나직이 말했다.

"밖에 괴의가 찾아 오셨소이다."

"갈대인 말이오?"

백렴은 고개를 끄떡였다. 괴의 갈유가 어떻게 이곳을 알고 찾아 온 것일까? 담천의는 의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이곳은 아직 외부에서는 모른다. 앞으로도 역시 그럴 것이다. 헌데 갈유가 이곳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 갈대인이 알 수 있었소?"

"…!"

담천의의 질문에 백렴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신검산장에 있던 괴의 갈유가 정확하게 담천의를 찾아왔음은 균대위 내부의 누군가가 그를 데려왔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흘렸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다고 괴의 갈유가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담천의는 갈유에 대해서는 매우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많은 도움을 준 분이었다. 더구나 그의 아들 갈인규에 대해서는 동생처럼 생각하고 있는 터였다.

헌데 백렴의 표정이나 단사의 표정으로 보면 뭔가 짐작을 하고 있는 듯 했다. 그렇다고 자신의 상처를 돌보기 위해 갈유를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제 시작되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 외인을 끌어들이는 것은 피해야 할 몇 가지 가운데 하나였다. 그들의 표정으로 보아 담천의에게 말하기 곤란한 기색이 보이자 담천의는 더 이상 추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어차피 갈유를 만나보면 알게 될 터였다. 다만 초혼령이 발동되는 시기에 맞춰 갈유가 찾아 온 것은 그의 심사를 복잡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초혼령은 갈유와 밀접한 관계에 있는 인물에게 떨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더 이상의 생각을 접고 고개를 끄떡였다.

"모시시오."

일단 만나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사실 지금 시점에서 담천의에게 가장 필요한 사람이기도 했다. 단 한 가지를 제외하고는 말이다.
(제57장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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