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09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07.21 16:53수정 2005.07.21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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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총!"

아직도 엎드린 채 사격자세를 풀지 못한 사수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동이를 쳐다봤다. 그도 그럴 것이 애초 열 발을 구령에 맞춰 쏘게 되어 있는데 아직도 몇 발의 총환이 그대로 남아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말 안 들려요? 그리해서는 백날을 쏘아봐야 소용이 없단 말입니닷! 거총!"

동이가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긴장한 사수들이 보총을 거치대에 얹고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 조련관임에도 이제 갓 스물이나 될까한 어린 나이인 탓에 저격병 연수자들에게 경어를 쓰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상관은 상관인지라 모두가 어려워했다.

"탄착 확~인"

보총 거치가 끝나자마자 잽싸게 옆에 있던 병사가 백기를 흔들며 외쳤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다들 꼴을 보니 아까운 총환만 낭비했습니다."

동이가 짐짓 무시하는 분위기를 만들며 백기를 흔드는 병사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미 오십 보, 백 보, 백오십 보 거리 표적의 좌우에 엄폐에 있던 병졸들이 달려들어 탄착군에 표시를 해가며 확인하고 있었다.

"세 발 관중이오!"
"네 발 관중이오!"
"두 발 관중이오!"

열 개의 사로마다 제 각각 적중한 총환의 개수를 읊어댔지만 지금까지 외친 여섯 번의 구령에 호응하는 표적은 없었다.

나름대로 각 부대에서 총질에 능하다는 이들 스물을 추려 들어온 터라 단 20일 만에 백오십 보 거리에서 열에 아홉은 표적을 적중하는 완성도를 갖춘 이들이었는데 동이가 요구하는 연속 사격에서는 호흡이 많이 흔들리고 자세가 풀어졌다.

"열 발 중 아홉을 통과할 때까지 오늘 점심을 굶습니다."

입이 한 자는 나왔지만 아무도 무어라 대꾸하지 못했다.

"여러분의 소임은 몰래 숨어 적이 알아채기 이전에 총환을 날리는 것입니다. 어쩌면 지난날의 습련만으로도 여러분은 훌륭히 소임을 완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잖습니까! 적장을 없앤 후 자기 위치가 노출되었을 땐, 그 땐 어찌할 겁니까? 추격대에 쫓겨 그냥 죽을 겁니까?"

역시 저격병들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조련관 동이가 마두산에서 살아 돌아올 수 있었던 게 바로 이런 기술 때문임을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누차 말씀드렸지요? 조급해하지 말라고. 그저 서 있는 표적입니다. 숨을 고르고 마음을 편안히 한 후 격발하세요. 가급적 서두르지 말고 최소한의 동작으로 총환을 뽑아 노리쇠에 얹으세요. 이때 총구가 흔들리거나 개머리판이 움직여서도 안 됩니다. 그저 팔 아랫관절 밑으로 손목과 손가락만 움직여 장전하세요. 자 이렇게 노리쇠를 밀면서 동시에 가늠자와 가늠쇠에 눈을 맞추어줍니다. 그래야 맥을 끊지 않고 물 흐르듯 방포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보총을 쥐고 설명하던 동이가 아예 총환을 챙겨 사대에 엎드렸다.

"잘 보세요. 장전과 조준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며 방아쇠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당겨 흔들림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총환 한 발을 미리 장전한 동이가 엎드린 상태에서 총을 조준했다.

"이동 표적을 연이어 내리라 하세요."

동이가 옆의 병졸에게 명했다. 병졸이 노란 기를 들어 우에서 좌로 몇 번을 털어 흔들었다.

오십 보, 백 보, 백 이십 보에 고정되어 있는 표적이 아니라 이번엔 오른 쪽 위에서 왼쪽 아래로 도르래를 달아 끌어 내리는 이동 표적이었다.

[촤르르르…….]

먼저 오십 보 앞의 표적이 내려왔다.

[탕]

망설임 없이 동이가 방포했다. 잠시 어깨가 들썩하고 동이의 오른 손이 왼손목 탄입대를 더듬는가 싶더니 이내 철커덕 소리와 2탄의 발사음이 들렸다.

[탕]

먼 거리였지만 백 보 표적에서 풀썩 먼지 비슷한 흔적이 날리는 것이 보였다. 구경하던 저격병 모두가 입에 침을 바르고 광경을 지켜봤다.

[탕]

백 오십 보 표적이 움직이고 또 총소리가 들렸다.

다시 오십 보 표적이 이동했다. 사람이 잽싸게 달릴 때 정도의 빠른 속도였다.

[탕]

표적이 좌우 간격 삼십 보 가량을 줄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 다시 총성이 울렸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라 표적의 흔들림을 관측할 수 있었다.

"아……."

저격병들 사이에서 작게 탄성이 일었다. 동이의 동작은 요란하지 않았다. 엎드린 가슴 아래로는 미동도 없었으며 오른 팔과 손목이 조금씩 움직였을 뿐 가쁘게 총환을 장전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연신 총환을 날렸다.

드디어 열 발의 사격이 끝났다. 다시 백기가 힘차게 펄럭이고 표적에서 대기하던 병졸들이 뛰어나와 탄착군을 확인했다.

"만발이오!"

오십 보 거리 표적에 선 자가 기를 올리며 소리 질렀다.

"우와!"

[짝짝짝-]

구경하던 저격병들과 사대에서 돕던 병졸들 모두가 함성을 지르며 손뼉을 쳤다.

"여러분이 이 섬을 나설 때는 모두 이렇게 변해있을 것입니다. 서 있는 표적은 물론이요, 빠르게 이동하는 표적이라도 바람의 세기와 표적의 이동속도를 예측하여 정확히 맞출 수 있는 상태, 그 경지가 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이 섬을 빠져 나가지 못할 것입니다. 모레부터는 횃불 아래의 적을 조준하고 맞출 수 있는 기량을 닦을 것이니 내일까지는 연속 사격을 연마해 놓으세요. 명심하세요, 이 총환 하나를 만들어 내기 위해 들인 공과 땀을. 결코 허투로 낭비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옛!"

스무 명이 저격병들이 어느 때보다 우렁차게 목청껏 대답했다.

"우선 총열 위에 바둑돌을 얹은 채 떨어뜨리지 말고 장전과 조준을 마칠 수 있는 습련을 거친 후 실제 사격을 해 봅니다. 자, 실시!"

"실시!"

구호를 외친 저격병들이 흩어져 제각각 자리를 잡고 장전/격발 연습을 했다. 철커덕거리는 노리쇠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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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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