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도 세대차이가 있나요?

아날로그형인간의 디지털분투기55 - 아날로그스럽지만 디지털 다운 삶을 산다는 것

등록 2005.07.22 06:55수정 2005.07.22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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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닷없이 울린 휴대폰 전화벨 소리


얼마 전 한창 바쁜 아침 나절, 휴대폰 벨소리가 울렸다. 하루에도 워낙 쓸데없는 스팸전화가 많이 걸려오기 때문에 어느덧 나름대로 휴대폰 액정화면에 060으로 시작되거나 기타 메모리 되어 있는 전화번호가 아닌 수상한(?) 직감이 드는 전화번호가 뜨면 아예 받지 않는데 익숙해 있는데도, 그날 따라 별 생각없이 전화를 받았다.

"네, 김정은입니다"
"예, 여기는 OO 보험인데요."

순간적으로 "아차, 잘못 받았구나" 싶었지만 통화 상대방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니 일단 받은 전화는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듣고 끝내야겠다 생각하고 통화를 이어갔다.

"예, 무슨 일로 전화하셨나요?"
"저, 김정은님이 지금 OO라는 사이트에 회원가입이 되어 있는데 아마 자제분이 어머니 주민등록번호로 가입했나 봐요. 그런 일이 종종 많거든요."
"그 사이트라면 내가 회원가입해서 이용하는 곳인데 어떻게 그 사실을 아십니까?"

그러자 상대방은 깜짝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을 더듬기 시작했다.


"네? 직접~ 가입하셨다구요. 아, 예~. 그런 분이 없으신데 놀랍네요. 저희 보험회사는 회원가입 되어 있는 분에게 무료로 보험가입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뭐 그 이후의 통화 내용은 이곳에 적지 않아도 대부분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통화를 끝낸 후 얼마 동안 그 보험가입 안내원의 발언내용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남아있었다. 아마 분명 그 보험 안내원이 가지고 있는 리스트에는 사이트 회원가입시 흘릴 수밖에 없는 내 주민등록번호와 휴대폰번호가 함께 등재되어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아날로그다운 생뚱맞은 고정관념

요즘 청소년들이 부모들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인터넷 상의 각종 성인사이트를 이용하는 사례가 빈번한데, 주민등록번호상으로 봤을 때 먹을 만큼 먹은 나이인 사람이 아이들이 자주 이용하는 사이트에 회원가입을 할 리가 없다고 안내원은 확신한 것 같다.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접근한 것인지 아니면 아예 상담원 교육 과정에서 나이 많은 사람은 이런 식으로 통화하라고 교육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스스로 필요에 의해 가입하는 사이트 회원가입까지 세대차가 난다는 그런 발상 자체가 요즘 같은 디지털 세상에 지극히 아날로그다운 생뚱맞은 고정관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사이트 성격에 따라 주로 이용하는 연령대가 존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이번 통화 중에 언급되었던 문제의 그 사이트도 보통 불법파일 공유 등 저작권 문제로 자주 오르내리는 P2P(peer to peer, 개인 대 개인의 파일 공유 기술 및 행위) 프로그램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냅스터나 소리바다처럼 P2P프로그램을 별도로 PC에 설치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회원가입을 한 회원들에게 동영상 파일이나 음악 파일 등을 다운로드 받을 수 있게 한 웹 계정 사이트이다.

파일 다운 속도가 유료 회원과 무료 회원이 매우 차이가 나지만 가끔 국내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외국 CF물이나 해외 TV 프로그램 캡처 동영상을 찾을 수 있어 가끔 이용하는 편이다. 사이트의 성격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불법영화나 음악파일을 무료로 다운로드 하기 위한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이가 많은 사람은 으레 이곳을 이용하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 아닐까?

디지털 격차 발생은 기술보다 고정관념의 문제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컴퓨터와 친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든 어르신들이 전적으로 컴맹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생각의 오류이다. 이러한 가정 아래 컴퓨터에 능숙한 70대 노인분이라면 필요에 따라 보고 싶은 영상물이나 놓친 방송프로그램 동영상을 다운해서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왜 하지 못할까?

흔히 우리 사회의 디지털 격차를 얘기할 때 우선 언급되는 것은 컴퓨터 등의 디지털 기기를 잘 다루는 자와 못 다루는 자의 기술적인 문제이다. 물론 이러한 차이는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컴퓨터 다루는 법을 교육하는 수많은 사회 교육 프로그램이 우리 주위에 존재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 격차를 느끼는데 있어서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작 기술보다는 우리 주위에 만연한 근거 없는 고정관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어떻게 컴퓨터를 이용하는가는 순전히 세대차가 아닌 취향의 차이이다. 자신에게 맞지 않더라도 일반적인 현상에 맞춰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아날로그 시대와는 달리 디지털시대는 자신의 취향에 따라 한곳을 집중하는 마니아적 성향과 친하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아무리 나이가 어려도 컴퓨터게임을 싫어하면 게임을 안하는 것이고 아무리 나이가 많은 사람이라도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면 충분히 게임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컴퓨터 게임이나 동영상 다운 받기는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고, 중년 아줌마나 아저씨는 전혀 하지 않으리라는 류의 생각들이 모이면 각자의 고정관념이란 성벽 속에 갖혀 세대간의 인식의 벽은 점점 높아가고 감정의 골은 깊어가기 마련이다.

아날로그형 인간을 불편하게 짓누르는 것은 어쩌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못 다루고에 있는 것보다는 어느 틈엔가 이상하게 고정화 되어버린 디지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고의 편협성 탓이 아닐까? 따라서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고 조금만 열린 생각을 한다면 생각 자체만으로도 아날로그형 인간들의 디지털 살이는 좀 더 편할 수 있으리라 본다.

기존의 인간적인 정서는 가지고 있되 불합리한 고정관념은 버린 열린 자세로 디지털 사회에 나름대로 잘 적응해서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아날로그스럽지만 아날로그답지 않고 디지털답지만 디지털스럽지 않은 아날로그형 인간들의 디지털 세상살이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 55번째 이야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아날로그형 인간의 디지털분투기 55번째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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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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