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52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전쟁' 끝나"

[인터뷰] <한국전쟁> 낸 서울대 박태균 교수

등록 2005.07.27 08:02수정 2005.07.27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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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한국전쟁>의 저자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한국전쟁>의 저자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7월 27일. 이 날이 어떤 날인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이 날은 '끝나지 않은 전쟁, 끝나야 할 전쟁'인 한국전쟁이 잠시 멈춘 '정전협정일'이다. 분단된 남과 북의 적대적 대치상황이 끝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인정해주는 날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정전협정일'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는 데는 인색하다. 이 날의 시발이 된 6월 25일에는 그래도 언론들이 예전처럼 특정한 의도를 갖고 호들갑을 떨지는 않지만 크고 작은 뉴스들을 다뤄 사람들의 기억을 자극한다.


해서 <한국전쟁>(책과함께 펴냄)의 저자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와의 이 인터뷰는 의도적으로 '정전협정일'에 맞췄다.

그동안 나온 한국전쟁에 관한 책들 대부분 외국학자들이거나 국내의 정치학자나 사회학자들이 썼는데 비해 이 책은 역사학자가 쓴 최초의 '한국전쟁사'라는 의의를 갖고 있기에 필자와의 인터뷰는 예정된 것이었지만 의도적으로 한 달(이 책의 발행일은 6월 25일)이나 묵혔던 것이다.

2년 하고도 17일이나 지속된 정전 협상

"한국전쟁은 정전협정의 과정이었다고 해도 틀리지 않습니다. 전선이 남쪽의 낙동강과 북쪽의 압록강을 오가는 데는 불과 9개월 밖에 걸리지 않았고, 1951년 봄 전선은 38선 근처로 되돌아옵니다. 그러나 전쟁은 쉬이 끝나지 않고, 전선은 38선 부근에서 무려 2년간 머물렀습니다. 정전협정을 위한 협상 때문이었죠."

언젠가부터 정확한 용어인 '정전' 대신 보다 호전적인 뉘앙스를 담은 '휴전'으로 잘못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하면서 박태균 교수는 이 같은 상황에서 전쟁이 2년간이나 더 지속된 것은 당시 "양쪽 모두 패배를 맛본 터라 전선을 치고 올라가거나 내려오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되지 못했다"며 "양쪽에 남은 것은 어떻게 하면 상대방에게 더 피해를 많이 입히면서 명예롭게 전쟁을 끝내는가였다"고 했다.


"2년 17일 동안 계속된 정전회담 의사록. 미군의 키보다 높다"는 사진설명을 달고 책 속에 게재된 자료 사진이 정전협상 과정이 얼마나 길고 힘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 정전협정이 처음 열렸던 개성의 내봉장(사진 왼쪽)과 미군의 키보다 높은 정전협상의 의사록(오른쪽).

정전협정이 처음 열렸던 개성의 내봉장(사진 왼쪽)과 미군의 키보다 높은 정전협상의 의사록(오른쪽). ⓒ 책과함께

그러나 그때 '잠시 멈춘' 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다시 계속 할 것인지, 영원히 멈출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한 채 안개 속에 있다.


정전협정 문제가 아직도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정전협정을 만든 세력들이 아직도 살아있고, 이들이 이 체제를 고수하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설명했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규모를 줄이면서도 세력균형을 유지할 수 있는 묘책이 없을까 고민하다 한반도에 핵무기를 배치하면 된다고 봤죠. 그래서 핵무기 배치의 걸림돌인 정전협정 13조 (ㄹ)항(군비 증강 통제 조항)을 파기했죠."

따라서 '정전협정'에서 전쟁 방지의 의미는 없어졌다며 박 교수는 정전협정을 바꾸기 위해서는 3가지의 전제조건이 있다고 했다.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남북간의 화해분위기가 그 첫째이고, 주변국가들 사이에서 일고 있는 '중국위협론'을 확대 해석하지 말 것이 그 두 번째요, 북한의 민주주의와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이 그 세 번째라고 했다.

그러면서 박 교수는 만능해결사처럼 투영되는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에는 비관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유는 한국만 빼고 나머지 5개국이 "6자회담을 즐기고 있지 않느냐"고 했다.

신탁통치 제안 누가 했나

한국전쟁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학생들과의 강의의 성과물인 이 책에서 그는 해방정국과 관련하여 몇 가지 새로운 주장을 내놓았다. 대표적인 것이 모스크바 3상 결정에 대한 국내 정치세력들의 태도이다.

신탁통치를 주장한 나라가 우리가 알고 있는 소련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었다고 박 교수는 주장했다. 이같은 주장의 근거로 박 교수는 얄타회담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이 스탈린에게 신탁통치를 제안했던 사실과 미국이 제출한 ‘모스크바 3상회의 한국문제에 대한 미국측 안’을 제시했다.

이 안에는 "미·영·중·소 4개국이 신탁통치체제의 최고행정관이 되어 유엔헌장 제79호에 규정한 기본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는 것을 포함한 구체적인 신탁통치안을 담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신탁통치를 실시하고자 했던 것은 한국이 자치를 할 수 있는 준비가 안됐고, 또 한국이 독립하면 일본과 경제 단절을 하게 될 터인데, 그럴 경우 한국은 스스로 생존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신탁통치안이 전해지자 처음에는 국내의 모든 세력이 반대하다 3상 결정의 내용이 자세히 알려지면서 이내 좌익세력과 민족주의 좌파들이 '모스크바 3상 결정에 대한 총체적 지지'를 표명하기에 이른다. 이는 눈앞의 권력에 대한 욕심과 사대주의적 태도에서 나온 결과라고 박 교수는 분석했다.

"미국이 전쟁을 유도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자 1주일 만에 군내를 파견하고, 또 전쟁 발발에 대한 사전 정보를 갖고 있었음에도 적절히 대처하지 않은 미국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는 또 세계체제론적 관점에서 한국현대사를 바라보며 한국사 내부의 힘을 무시하는, 수정주의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커밍스의 '남침유도설'을 폐기하기엔 아직 이르다고 했다.

한국전쟁은 세계사에서 매우 중요한 전쟁

"한국전쟁은 우리가 생각하거나 교육받은 것과 달리 엄연히 누구도 이기지 못한 '실패한 전쟁'입니다. '한국전쟁'을 제대로 보려면 기존의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편견을 걷어내야 합니다."

박태균 교수는 그래서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전쟁은 세계사를 다시 쓰게 할 정도로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전쟁이었다고 평가했다.

1947년까지 유지되던 얄타체제가 마샬플랜 같은 것이 시행되면서 냉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데 비록 외부의 냉전이 한반도의 내면으로 들어와 일어난 충돌이 바로 한국전쟁이지만 이는 세계 냉전의 신호탄을 쏘아 올리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 전쟁을 계기로 세계는 무기 개발에 대한 무한경쟁에 돌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냉전의 대리전 양상을 띤 한국전쟁은 국제협상만으로 풀 수 없는 그 특수성 때문에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는데, 우린 언제까지 권력이 이야기하는 대로, 이데올로기가 기득한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까?"

그러면서 박 교수는 한국전쟁에서 누구도 승리하지 못했지만 누구도 패배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아이러니 속에서 유일한 승자는 일본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일본이 한국전쟁에서 얻은 혜택은 한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얻은 혜택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일본은 자의보다 타의에 의해 전쟁특수를 챙겼겠지만, 자위대를 출범시키며 재무장의 기회를 얻었고, 샌프란시스코강화조약을 통해 2차 대전에 대한 면죄부를 얻고자 했습니다."

맥아더는 문제가 많은 사람

"노병은 죽지 않고 다만 사라질 뿐이다"는 말로 유명한 한국전쟁의 영웅(?) 맥아더가 요즘 한국땅에서 수난을 겪고 있다. 독자들도 알다시피 인천의 자유공원에 세워진 그의 동상을 두고 철거냐 보존이냐를 주장하는 진보와 보수 세력이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그래서 박태균 교수에게 맥아더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 군국주의를 패망시키는 등 긍정적인 면이 있긴 하지만 대체로 맥아더는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입니다. 독립운동 세력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에 협조한 사람들에게 정권을 맡겼고, 일본 전범 세력들을 용서했고, 천황제를 유지시켰고, 일본의 전쟁 책임에 면죄부를 준 사람입니다."

맥아더에 대한 그의 비판은 "한국전쟁 때 38선을 넘는 결정을 너무 쉽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전선을 만주까지 확대하자고 주장하는 등 매우 호전적인 인물로, 군사적으로 훌륭할지는 모르지만 인권과 평화공존이라는 21세기 가치에는 적합하지 않는 인물"이라고까지 이어졌다.

그렇지만 박 교수는 개인적 견해임을 전제로 동상은 철거해 없애는 것보다는 이전하더라도 남겨두어 역사적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일본총독부 건물도 같은 맥락에서 이전 보존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3월 백수를 넘겨 백한 살에 사망한 '냉전의 설계자' 조지 케넌에 대한 한국 언론의 시각에 대해서도 비판했다.

"조지 케넌에 대한 우리 신문들의 평가는 대체로 냉전론자로 미국의 군사주의를 강화한 사람으로 보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중소갈등을 예견하는가 하면 전쟁 중에 38선 이북으로 가는 것을 반대한 인물입니다. 그는 군사적 대결보다 경제적 심리적 봉쇄를 주장하였고, 소련의 붕괴에 대해서도 냉전의 승리가 아니라고 했죠. 돈을 그렇게 많이 쓰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말이 되느냐고 비판했습니다."

'김종필'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싶다!

a <한국전쟁>의 저자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한국전쟁>의 저자 서울대 국제대학원 박태균 교수. ⓒ 오마이뉴스 권우성

이번 책에서 회고록이나 자서전 같은 기록을 많이 참고하지 못해 아쉽다고 말하는 그는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박정희 밑에서 평생 2인자로 지낸 '살아있는 한국현대사'인 김종필씨에 대해 깊이 탐구해보고 싶다고 했다. 여건이 되는대로 그는 김씨와의 인터뷰 작업부터 하고 싶다는 의향을 내비쳤다.

영화 <태극기를 휘날리며> 때문에 이 책 출간을 더 재촉했다며 그는 이 영화가 국민들에게 한국전쟁을 알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내며 기대 이상의 몫을 한만큼 이 영화가 잘못 알린 것을 비롯 한국전쟁에 대한 우리의 잘못된 인식을 바로잡는 일은 역사가의 몫이 아니겠느냐고 했다.

박태균 교수는 '애초 미국이 접촉하고 있었던 세력이 있었지만 정작 쿠데타는 다른 세력이 일으키는 바람에 미국은 몹시 당황했다'는 5·16에 대한 가설을 갖고 있다며, 그래서 '5·16'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지금 올 가을 출간을 목표로 1950년대 초 미국은 왜 이승만을 제거하려 했는지, 4·19와 5·16에 대한 미국의 개입 여부 등과 같은 한미관계에 대한 책 집필에 열 올리고 있다. 그의 다음책도 기대된다.

하의도 농민운동사

김학윤 지음,
책과함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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