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없는 촌놈. 아들 녀석.박철
그때였습니다. 다른 종업원이 수첩같이 생긴 계산서를 가지고 왔는데 우리 둘이서 먹은 것이 자그마치 8만원이 넘게 나왔습니다. 초대권이라서 분명히 돈을 안 받는다고 했는데 이상했습니다. 내가 넝쿨이 보고 "야, 아빠가 돈이 하나도 없는데, 너라도 잡히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하니 이 녀석이 약간 쪼그라든 듯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나도 촌놈이지만 이 녀석은 진짜 촌놈이거든요. 그깟 것 같고 기가 죽을 게 무에 있겠냐고 계산대 앞으로 다가섰습니다. 호기 있게 계산서를 내밀었지요.
"사장님, 아까 초대권 가지고 오셨지요?"
"네."
"그러면 됐습니다."
속으로 '휴~' 안심을 하고 나오는데 종업원이 따라 나오면서 하는 말이 "사장님, 아까 주스도 잡수셨어요? 주스 값은 계산하셔야 합니다"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주스 값만 2만5백 원이었습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스 값을 냈지요.
그런데 넝쿨이 녀석이 갑자기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돈이 없어서 저를 잡히겠다는 말에 겁을 집어먹고 줄행랑을 친 모양입니다. 지하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시동을 걸고 나서 한참만에 넝쿨이 녀석이 씩 웃으며 나타났습니다.
"아빠! 어떻게 됐어요?"
"야, 임마! 그래 아빠가 너 잡히고 갈까봐 도망갔다 이제 나타나야? 그건 그렇고 기왕 음식을 먹는 걸 배가 터지게 먹지, 그래 고걸 먹고 마냐?"
지금도 다른 건 다 좋았는데 주스 두 잔에 2만원을 내고 먹었다는 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내가 너무 쫀쫀해서 그런 것일까요? 20년을 시골에서 살던 촌놈이 도시에 와서 살다보니 여전히 촌티를 벗지 못하고 영락없는 촌놈행세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산은 아침에 시원한 빗줄기가 쏟아졌습니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기사를 스크랩했습니다.
스크랩 페이지로 이동 하시겠습니까?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