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운전자를 기꺼이 용서한 사람

김기호씨, 당신은 이 각박한 시대 내가 만난 예수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등록 2005.06.14 17:16수정 2005.06.15 09:23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김기호(57)씨 병문안을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김기호씨는 우리 교회에 나온 지 1년이 채 안 된 분이십니다. 그것도 매 주일마다 나오는 것은 아니었고, 띄엄띄엄 안부가 궁금할 만하면 그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씨익' 웃으며 나타나곤 했지요.


주일 예배를 마치고 공동식사를 하게 되면 나는 일부러 김기호씨 앞에 앉아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그는 꼭 밥 두 그릇, 국 두 그릇을 먹는데 밥을 아주 달게 먹었습니다. 그의 몸은 거친 노동으로 단련되어 악수를 할 때 손으로 전해지는 악력이 묵직하게 느껴질 정도로 단단했습니다.

사는 거처가 분명치 않았고, 그 흔한 손전화도 없었습니다. 지난 5월 둘째 주일 아침, 예배를 인도하기 위해 강단에 올랐는데 오른쪽 맨 앞줄에 김기호씨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마터면 웃음이 터질 뻔했습니다. 김기호씨 머리 정수리에 네모난 거즈가 붙여져 있는데 그 표정이 매우 익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분명 머리를 다쳐서 거즈를 붙였을 텐데, 문득 내 유년 시절, 치기 어린 장난을 치다 머리통이 깨져 한동안 반창고를 붙이고 다녔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마치고, 전교인 공동식사를 하면서 김기호씨 앞자리에 앉았습니다. "어떻게 해서 머리를 다치셨냐?"고 물었더니 며칠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크게 다치지 않아서 사나흘 병원 신세를 지고 나왔다고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습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자동차에 슬쩍 부딪힌 줄만 알았습니다. 김기호씨는 여전히 밥 두 그릇 국 두 그릇을 잡숫고 일어나 다음 주일 또 뵙겠다는 말을 남기곤 이내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날 김기호씨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그가 공사판에 나가서 못 나왔나보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날 저녁 아내가 외출하고 돌아와서 시장 어귀에서 김기호씨를 만났는데 휠체어를 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 심상치 않아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a

ⓒ 박철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교우 몇 분과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김기호씨의 여동생이 와 있었습니다. 여동생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여동생으로부터 그간의 경위에 대한 자세한 전말을 듣게 되었지요. 대충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지난 5월 17일 저녁 8시경, 김기호씨가 부산진역 부근 큰 도로를 무단횡단 하다가 개인택시에 치어 길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택시기사는 차를 세운 뒤 창문을 열어 길바닥에 쓰러진 김기호씨를 확인하더니, 그냥 차를 몰고 내뺐다고 합니다. 아마 택시기사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S대학교 학생이 목격하곤 119를 불러 김기호씨를 병원으로 후송하였고, 뺑소니 차는 경찰에 신고해 운전기사를 붙잡을 수 있게 됐다고 동생은 말했습니다.

병원에 실려 온 김기호씨는 X-ray 진찰 결과,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고 자기가 무단횡단하다 발생한 사고이니, 그냥 자기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면 될 것 같아 며칠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다치지 않은 줄 알고 퇴원을 했는데 다리가 점점 붓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게 되어 마지못해 동생 집을 찾게 되었고, 오빠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고 동생의 추궁으로 사고의 모든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하여 M.R.I 정밀 진단을 했더니 전치 16주의 진단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릎 연골이 완전 박살나서 몇 차례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상이었습니다. 김기호씨의 동생 말에 의하면 뺑소니 택시기사가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 한 번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함께 병원을 방문한 일행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목격자인 S대 대학생의 신고가 없었다면 그냥 묻혀버릴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뺑소니 택시기사의 소행을 괘씸해 하면서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동생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기호씨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개야, 그러면 못 쓴다.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다. 내가 길을 건너면서 아무래도 미심쩍어 나무 작대기를 흔들면서 막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내 몸이 공중재비를 하면서 나가떨어진 거야. 그리고 정신을 잃었지.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살아났잖아. 택시 기사도 가정이 있는 사람 아니겠냐?

그 사람이 얼마나 다급하면 도망을 쳤겠냐? 요즘 세상에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데, 그 사람을 골탕 먹여야 하느니, 콩밥을 먹여야 하느니,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다행히 내가 다친 건 보험처리가 된다고 하니 치료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내가 경찰관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 잘 봐주라고.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남을 탓하지 마라."

"그래도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대학생이 차 번호를 외웠다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 사람이 뺑소니로 붙잡히고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 한 번도 병원에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안 하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정말 혼 좀 나야 돼요!"

"아예 그런 소리 마라. 세상에 별별 사람 다 있다. 그냥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네 혼자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말 하지 마라."


a 김기호 씨. 내가 "많이 아프시냐?"고 물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만 한다.

김기호 씨. 내가 "많이 아프시냐?"고 물으면 하나도 아프지 않다고만 한다. ⓒ 박철

김기호씨는 단호한 어조로 동생을 나무랐습니다. 얼마나 진지하고 간곡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지 옆에서 김기호씨의 말을 듣고 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 분에게는 한 줌의 가식도 없었습니다. 천성이 그런 분이셨습니다. 함께 병원을 방문한 모든 분이 김기호씨의 가식 없는 말과 표정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내가 김기호씨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김기호씨는 평소보다 더 세게 내 손을 잡았습니다. "목사님! 고맙습니다" 김기호씨는 교회를 나온 지 1년도 채 안 되는 분이지만 예수를 20∼30년 믿은 분보다 훨씬 신앙적입니다. 자기를 자동차로 치고 중상을 입히고 그냥 달아난 사람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다는 말하는 김기호씨. 그의 말대로 세상에는 김기호씨 같은 사람도 있네요.

오늘 김기호씨가 무릎에 고정했던 핀을 뽑는 날이라고 합니다. 상태가 좋으면 며칠 후 다시 수술을 하기로 했습니다. 그 분은 마음이 참으로 따뜻한 사람입니다. 그의 말 속에도 그의 표정에도 남을 배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각박한 시대, 내가 만난 예수님일지도 모르지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김기호씨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이 세상이 얼마나 밝고 좋겠습니까?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철 기자는 부산 샘터교회 원로목사. 부산 예수살기 대표이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하루가 지옥" 주차장에 갇힌 주택 2채, 아직도 '우째 이런일이'
  2. 2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체코 대통령, 윤 대통령 앞에서 "최종계약서 체결 전엔 확실한 게 없다"
  3. 3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억대 연봉이지만 번아웃 "죽을 것 같았다"... 그가 선택한 길
  4. 4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5. 5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맥주는 왜 유리잔에 마실까? 놀라운 이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