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
다음날 아침 부리나케 교우 몇 분과 병원으로 달려갔더니 김기호씨의 여동생이 와 있었습니다. 여동생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여동생으로부터 그간의 경위에 대한 자세한 전말을 듣게 되었지요. 대충 경위는 이러했습니다.
지난 5월 17일 저녁 8시경, 김기호씨가 부산진역 부근 큰 도로를 무단횡단 하다가 개인택시에 치어 길바닥에 나가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택시기사는 차를 세운 뒤 창문을 열어 길바닥에 쓰러진 김기호씨를 확인하더니, 그냥 차를 몰고 내뺐다고 합니다. 아마 택시기사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는 줄 알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광경을 S대학교 학생이 목격하곤 119를 불러 김기호씨를 병원으로 후송하였고, 뺑소니 차는 경찰에 신고해 운전기사를 붙잡을 수 있게 됐다고 동생은 말했습니다.
병원에 실려 온 김기호씨는 X-ray 진찰 결과, 전치 2주의 진단이 나왔고 자기가 무단횡단하다 발생한 사고이니, 그냥 자기 선에서 조용히 처리하면 될 것 같아 며칠 병원에서 지내다가 퇴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이 다치지 않은 줄 알고 퇴원을 했는데 다리가 점점 붓고 도저히 걸을 수가 없게 되어 마지못해 동생 집을 찾게 되었고, 오빠가 다리를 심하게 저는 모습을 보고 동생의 추궁으로 사고의 모든 전모가 밝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다시 병원에 입원하여 M.R.I 정밀 진단을 했더니 전치 16주의 진단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무릎 연골이 완전 박살나서 몇 차례 수술이 필요할 정도의 중상이었습니다. 김기호씨의 동생 말에 의하면 뺑소니 택시기사가 사고가 발생한 지 보름이 지났는데 한 번도 병원에 나타나지 않았다면서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함께 병원을 방문한 일행들도 같은 마음이었습니다.
목격자인 S대 대학생의 신고가 없었다면 그냥 묻혀버릴 사건이었습니다. 모두가 뺑소니 택시기사의 소행을 괘씸해 하면서 성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동생이야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김기호씨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개야, 그러면 못 쓴다.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다. 내가 길을 건너면서 아무래도 미심쩍어 나무 작대기를 흔들면서 막 길을 건너는데 갑자기 내 몸이 공중재비를 하면서 나가떨어진 거야. 그리고 정신을 잃었지. 처음에는 죽는 줄 알았어. 그래도 살아났잖아. 택시 기사도 가정이 있는 사람 아니겠냐?
그 사람이 얼마나 다급하면 도망을 쳤겠냐? 요즘 세상에 얼마나 먹고 살기 힘든데, 그 사람을 골탕 먹여야 하느니, 콩밥을 먹여야 하느니, 제발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다행히 내가 다친 건 보험처리가 된다고 하니 치료비는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 내가 경찰관한테도 그렇게 말했다, 그 사람 잘 봐주라고. 다 내가 잘못해서 생긴 일이니 남을 탓하지 마라."
"그래도 사람을 치고 도망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대학생이 차 번호를 외웠다가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어요. 그 사람이 뺑소니로 붙잡히고 사고가 난 지 보름이 지났는데 한 번도 병원에 찾아와서 잘못했다고 안 하는 걸 보면 나쁜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은 정말 혼 좀 나야 돼요!"
"아예 그런 소리 마라. 세상에 별별 사람 다 있다. 그냥 세상에 그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해. 그것도 네 혼자만 생각하고 다른 사람한테도 말 하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