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17

참혹한 결전

등록 2005.07.29 17:04수정 2005.07.2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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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할 삿기들!”

땅에 박힌 기둥에 꽁꽁 묶인 채 보초 두 명의 감시를 받으며 바닥에 두발을 뻗고 있는 장판수는 묶인 손이 답답하게 여겨질 때마다 버릇이 된 욕을 뱉어 내었다.


“아따 그 사람 지치지도 않나, 그냥 좀 쳐 자슈!”

보초 한명이 이죽거리며 퉁을 던지자 장판수는 기다렸다는 듯 맞받아쳤다.

“이보라우. 자네 같으면 이렇게 불편한 자세에서 잠이 오갔어? 가뜩이나 잡혀 있는 것도 분통이 터질 지경인데!”
“마음대로 지껄이게 두라고. 어차피 내일이면 죽을 지도 모르는 인간인데.”

또 다른 보초가 장판수의 약을 올리며 동료의 말을 끊자 장판수는 멀찍이 마른 침을 짜내어 ‘캬악!’ 내 뱉었다. 그 사이에 누군가 그들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와 몽둥이를 치켜들더니 보초의 머리를 갈겨대었다.

“뭐야!”


나머지 한명의 보초도 머리에 몽둥이를 맞고 쓰러졌는데 단숨에 쓰러지지 않고 신음소리가 배어나오려 하자 무자비한 몽둥이질이 계속 머리 쪽에 쏟아졌다. 보초를 모두 제압한 수수께끼의 사나이는 장판수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읊조렸다.

“에구에구 이게 뭔가 내 생각이 맞았구나. 장 초관이 묶여있네!”


수수께끼의 사나이는 바로 시루떡이었다. 장판수를 풀어준 시루떡은 그간의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나라님이 오랑캐에 무릎 꿇은 뒤로 성안의 병사들은 모조리 흩어졌소다. 하지만 수어사 나으리는 도성으로 돌아가면서도 성을 지킬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남겨놓았소. 이내 못난 몸도 그 중에 한사람이었지 않겠소이까.”

시루떡은 평소 그 답지 않게 그간의 일을 차분한 어조로 구슬프게 읊어 나갔다.

“그런데 사흘 전 도적들이 우리를 속여 약이 든 술을 먹이고서는 성을 장악해 버렸지 뭡니까. 저 같은 경우야 겨우 몸을 빼어내어 수풀에 몸을 숨겨 잡혀있진 않았으나 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우. 오늘 놈들에게 잡혀서 성벽아래 매달렸던 이가 장 초관님인걸 알아보고서 목숨 걸고 구한 것이오.”

“기런 사정이 있었구먼.”

장판수는 가늘게 한숨을 쉬며 자신의 몸을 매만지며 움직여 보았다. 오랫동안 묶여 있었던 터라 온몸이 뻐근했지만 움직이는 데는 지장이 없어 보였다.

“이놈들이래 무슨 일로 이러는지 몰라도 단단히 혼찌검을 내어 놓아야 갔어.”

장판수는 우선 쓰러진 보초의 몸에서 무기를 챙겨 두었다. 그때 멀찍이서 가느다란 발자국 소리가 장판수의 귓가에 들여왔다.

“이거 재미없게 되었구만! 이쪽으로 뛰자우!”

장판수와 시루떡은 발소리가 난 반대쪽으로 뛰어가 몸을 숨겼다. 횃불도 없이 몰려온 이들은 서 너 명이었는데 그들은 말을 하지 않고 손짓으로 서로의 행동을 지시했다.

‘좀 이상하구먼.’

그들은 장판수가 묶여있던 곳에 쓰러진 보초들을 보고선 잠시 이리저리 망설이다가 다른 곳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기런데 아무리 약을 쳐 먹고 자빠져 있어도 기렇지, 어떻게 도적 몇 놈에게 성이 장악당할 수 있네?”

“말도 마십시오. 성안에 도적과 한패인 놈들이 있어 손도 쓰지 못했습니다. 그나저나 어딘가에 사람들이 개돼지 마냥 묶여 갇혀 있을 것인데 걱정입니다.”

순간 장판수가 시루떡의 입을 막았고 이번에는 횃불을 든 십 여 명의 사람들이 뛰어 들어와 소리를 질렀다.

“이런 멍청한 놈들! 대체 묶여 있는 놈 하나 못 당하고 어떻게 된 게야! 멀리 가지 않고 이 주위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하니 샅샅이 뒤져라!”

시루떡은 곧 들킬 것을 염려해 몸을 움찔거렸고 장판수는 시루떡에게 속삭였다.

“넌 여기서 꼼짝 말고 있거라.”

장판수는 칼을 든 채 벌떡 일어나 뛰어나가며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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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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