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34회

등록 2005.08.02 07:57수정 2005.08.0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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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렷한 한어(漢語)였다. 북방계통의 어투였지만 분명히 비적들이 아니었다. 비적들은 아주 단순해서 저런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다. 상대부는 빠르게 손을 뒤집으면서 쏘아오는 검날을 부드럽게 튕겨냈다. 하지만 급작스럽게 마차 바닥을 뚫고 치솟아 오르는 두 개의 창날에 신형을 허공에 뽑아 올리며 마차의 천정을 뚫고 솟구쳤다.

(예사 놈들이 아니다!)


그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호위장이 꼬꾸라지는 것과 자신에게 가해진 일련의 기습은 사실 눈 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더구나 손속의 빠름과 예리함은 그의 전신을 긴장시켰다. 그는 그런 와중에서도 일행 전체의 움직임을 파악하고자 허공에서 신형을 두 번이나 돌리면서 내려다보았다.

일방적인 도살이었다.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무술깨나 한다는 병사들을 데려왔지만 이건 애당초 견줄 수 없는 상대들이었다. 어느새 절반 이상 목숨을 잃은 것 같았다. 더구나 달탄에서 선별해 예물이라고 바친 공녀들은 그 손속의 기쾌함이나 정확함으로 미루어 보건데 어려서부터 체계적인 무공을 익힌 여자들임에 틀림없었다.

(도대체 아로태(阿魯台)… 이 작자는 애당초 우리를 죽이려고 작정했던 것인가?)

상대부의 얼굴에 달단(韃靼)의 태사(太師) 아로태(阿魯台)의 흉물스런 얼굴이 떠올랐다. 달탄의 최고 현자이자, 모사(謀士)로 이미 명 조정에서도 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상대부가 만나 본 자 중에 제일 먼저 죽여야 할 자가 바로 아로태였다. 주름살이 깊게 패인 얼굴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징그러운 웃음을 흘렸다.

"헛…!"


하지만 생각은 나중이었다. 허공에 마치 백색의 광휘를 뿜으며 폭죽처럼 터지는 검은 마른 체형의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인물의 손에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펼쳐지고 있었다. 동시에 뚫린 마차 위로 내려앉던 상대부를 향해 보통 창보다는 긴 촉을 가진 창촉은 마차를 아예 박살내며 상대부의 무릎께를 노리며 좌우에서 휩쓸어왔다.

공격하는 모습이 섬뜩할 정도다. 얕볼 수 있는 상대들이 아니다. 상대부는 다시 신형을 뒤집으면서 쌍수를 기이한 각도로 빠르게 펼쳐냈다.


촤르르----!

그의 소매에서 막강한 기류가 파도처럼 휩쓸어갔다. 그것은 마치 소림에서 가사(袈裟)의 소매로 해일 같은 경력을 일으킨다는 반선수(盤禪袖)와 같은 류의 무공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것은 잠시였다. 마차의 바닥을 뚫고 상대부를 공격했던 창을 든 두 사내의 얼굴에 경악스런 표정이 스치는가 싶더니 창대의 중간이 부러져 나갔다.

쇄---액----!

동시에 미세하면서도 귀를 역겹게 하는 음향과 함께 한 사내의 팔이 잘려져 나가고, 또 한사내의 두 발이 허벅지서부터 잘려져 나갔다. 같이 공격하던 검을 든 사내가 튕기듯 뒤로 주륵 물러나며 부르짖었다.

"은린비(銀鱗匕)…!"

사내는 한 순간에 들고 있는 검으로 수십 가지의 변화를 일으키며 수비에 급급했다. 마치 검을 사용할 줄 모르는 자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것처럼 보였다. 당황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햇빛에 반사된 빛줄기 같은 무언가가 사내의 사대요혈을 노리며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사내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었다.

치이이익----!

달구어진 쇠가 찬물에 처박히는 듯한 소리가 들리며 들고 있던 사내의 검이 중간에서 잘려나갔다.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상대부의 기병은 사내의 목줄기를 노리며 쏘아가는 듯싶었다. 사내의 몸이 뒤로 활처럼 휘었다. 그 때였다.

번쩍---슈우우우---!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 듯 했다. 한줄기 섬광(閃光)이 눈을 뜰 수 없게 만드는가 싶더니 상대부의 전신을 난자할 듯 폭죽처럼 불꽃을 터트렸다.

"무림오대기병(武林五大奇兵) 중 하나인 은린비를 일개 환관이 가지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군."

기이하게도 나직하고 듣기 편한 목소리였지만 정작 상대부에게는 고막을 찢을 듯한 충격을 주었다. 더구나 그 목소리는 상대부의 움직임을 제어하고 있어 상대부는 자신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심호흡과 함께 상대를 확인도 못하고 급히 신형을 돌리며 마차 뒤로 빠르게 튕겨 물러났다. 상대부는 진정한 고수가 나타났음을 깨달았다. 그의 전신을 향해 빛살 같은 수십 줄기의 검광이 파고들었다.

파파파파---팟!

물러나는 상대부의 발은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빨랐다. 발을 딛을 때마다 발꿈치에서 모래가 파헤쳐 올라 따라붙는 상대에게 마치 암기처럼 쏘아갔다. 그것은 임기응변이었지만 상대의 가공할 공격을 지연시키는 충분한 효과가 있었다.

"천관 최고 고수라더니 그 이름값을 하는군."

나타난 인물은 말과는 달리 상당히 차분하고, 잘생긴 문사 풍의 사내였다. 삼십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그 사내가 검을 잡고 있는 모습은 매우 어색해 보일 정도로 그는 무공과는 거리가 먼 인물처럼 보였다. 조금 전 펼쳐진 가공할 검광을 그가 펼쳤다고는 상대부도 믿을 수 없을 정도였다.

더구나 목소리는 전혀 거부감이 없이 그의 말을 믿게 만드는 묘한 구석이 있었다. 사내의 뒤에는 흑의를 입은 두 명의 인물이 그를 좌우로 호위하는 듯 서 있었다.

(저 놈은 물론 뒤에 있는 두 놈 역시 상대하기 벅찬 놈들이다.)

상대부는 심호흡을 하며 쌍수를 가슴께까지 올려 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소매 속에 감추어진 무림오대기병 중 하나인 은린비를 즉시라도 발출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은린비는 철혈보의 육능풍이 가진 일월쌍륜과 같은 반열에 올라있는 기병 중의 기병이었다. 용(龍)의 비늘(鱗)로 만들었다는 그것은 용린편(龍鱗鞭)이라고도 불리는 것으로 손톱 정도의 좁고 얇은 비늘이 일장 정도의 길이로 연결된 기병이었다. 매우 부드럽고 투명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진기를 주입하면 금석이라도 두부처럼 베어낼 수 있는 매우 날카로운 병기였다.

"웬 놈들이냐?"

비명소리는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었다. 상대부는 잠시 여유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의 위기를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하지만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당황스러웠다. 단지 자신의 한 몸을 빼내는 것은 어떠한 경우에서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자 그는 냉정한 마음을 가지려 노력했다.

"나는 백결(柏缺)이라 하오. 피치 못해 귀하를 공격하기는 했지만 이런 것이 다 세상사 아니겠소? 어차피 사신 일행은 북경을 떠나올 때부터 죽을 운명이었으니만큼 귀하 역시 조용히 죽어주는 것이 수고를 덜어주는 일이 아니겠소?"

백결(柏缺). 나타난 사내는 백결이라는 사내였다. 백련교 열명의 사형제 중 둘째로 타협과 화술의 귀재로 알려진 그다. 춘절 성화대전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것은 이 일을 준비하기 위함이었을까? 한 때 백가촌의 힘을 얻고자 그곳을 들른 적이 있다고 백가촌의 촌장인 공손벽(公孫蘗)이 신주귀안에게 말한 바도 있는 그 인물이었다.

"무슨 뜻이냐?"

"무슨 특별한 뜻이 있겠소? 본래 이 일행에는 귀하가 아닌 북경에 있는 연병문이 포함되어 있어야 당연한 일이 아니겠소? 헌데 그는 왜 빠졌을까? 그리고 왜 귀하를 굳이 끼어 넣었을까?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소?"

그의 말에 상대부의 뇌리에 언뜻 함태감과 연병문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그럴 리가 있을까? 그렇다면 이 사신 일행은 이미 죽을 운명이었단 말인가? 하면 자신은 왜 끼어 넣은 것일까? 자신 역시 죽기를 바라고 있단 말인가? 무슨 이유로? 갑작스럽게 여러 가지 의혹이 머리 속에서 먹구름 피어나듯 퍼지고 있었다. 이것은 충격이었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있었던가? 과연 함태감은 자신이 죽기 바라는 것일까?

아니었다. 차라리 함태감이 자신에게 죽으라면 자진해서 죽을 수도 있었다. 함태감은 자신에게 부친과도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의 자신을 만들어 준 사람이었다. 그런 함태감이 자신을 사지로 몰아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연병문…! 이 자식이 장난을 친 것인가?)

가능성이 있다면 연병문, 바로 그였다. 자신과 함께 함태감의 좌우양팔이라고 공공연하게 인정받았던 그가 항상 자신의 뒤에 서서 자신을 밀어낼 궁리만 하고 있었던 것일까? 상대의 입에서 연병문이 거론되었다는 점도 더욱 그의 생각을 확신하게 했다. 그의 머리 속이 매우 혼란스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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