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28

의주에 부는 바람

등록 2005.08.25 17:02수정 2005.08.25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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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주에 부는 바람

“장초관은 어디로 가실 작정이오?”


장판수, 차충량, 차예량 형제, 최효일 그리고 계화와 그들을 따르는 수십 명의 장정들은 갈림길에서 멈추어 서서 각자의 행보를 의논했다.

“가실 곳이 없으면 우리를 따라 의주로 가는 것이 어떠하오?”

차충량이 조심스럽게 장판수와 최효일에게 제안했다. 최효일은 의주에 식솔이 있는 터라 적극 찬성했지만 장판수는 결심이 서지 않았다.

“의주에서 뭘 할 수 있겠소?”

장판수는 쓸쓸한 웃음을 지으며 반문했지만 차충량은 이미 계획이 서있었다.


“이대로 물러설 작정이오? 의주부윤 임경업 장군은 용맹과 지략이 있고 우리와 능히 뜻을 같이할 위인이오. 또 황일호라는 이는 전 의주부윤으로서 큰 기상을 가지고 있으니 능히 우리가 바라는 바를 이루어 낼 수 있소.”

“바라는 바가 있다니 그것은 또 무엇이오?”


장판수는 맥 빠진 소리로 응답했지만 차충량은 힘을 주어 말했다.

“대 명국과 연계하여 오랑캐들을 몰아내는 일이 아니겠소!”

명나라라는 말에 장판수는 속으로 강한 거부감이 들었다. 어릴 적 장판수의 아버지를 죽인 이들은 조선이 믿어 의심치 않았던 명나라 병사들이었다. 하지만 최효일은 그 말에 흥분하며 맞장구를 쳤다.

“바로 그 것이오! 어떻게든 연계해 아래위로 오랑캐들을 치면 될 일이 아니오!”

최효일은 마치 새로운 희망이라도 본 듯 양 장판수의 옷소매를 잡고 소리쳤다.

“장초관, 꼭 같이 갑시다! 그곳에는 장초관 같은 이가 필요하오!”

장판수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고 옆에 있던 계화는 불안한 눈초리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차예량은 그런 계화를 지켜보다가 조심스레 말했다.

“보아하니 낭자도 갈 곳이 마땅치 않은 모양인데 의주로 갑시다. 원래 우리형제가 의주에서 장사로 한몫 잡았던 이들이라 낭자가 발붙일 수 있는 곳은 많소.”

차충량이 아우를 놀려대었다.

“이 녀석 그러고 보니 계화낭자에게 마음이 있는 게로구나.”

그 말에 차예량의 얼굴은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계화는 장판수 쪽을 쳐다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막상 장판수는 그때까지도 의주로 갈 결심이 서지 않아 남들이 무슨 말을 하는 지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의주로 가서 명나라와 연계한다는 거 있지 않습네까? 조정에서 용납하겠소?”

최효일은 ‘저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하는 말을 얕게 중얼거린 후 큰 소리를 쳤다.

“아, 우리가 조정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는 것입니까! 경과가 좋으면 조정에서도 당연히 우리 일을 인정해 줄것이외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의주는 이 최효일이나 차가(家) 형제분들이 꽉 잡고 있는 곳이니 뭘 해도 조정에서 금세 알 턱이나 있겠소!”

“물론 일을 급히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오. 장구한 계획을 세워 장사로 자금을 모으고 명과 연계할 터이니 아니 될 일은 아니외다.”

차충량의 진중한 말에 장판수는 마침내 마음이 움직여 고개를 끄덕였다.

“의주로 가겠습네다. 허나 그 전에 내래 알아볼 일이 있으니 나중에 가겠습네다.”
“알아볼 일이라니? 우리가 도울 수 있는 일이면 말하시오.”

장판수는 이를 악다물었다가 푼 뒤 힘주어 말했다.

“남한산성에 있던 중놈과 포수놈이 대체 어떤 놈들인지 뒤를 캐볼 작정입네다. 그 놈들이 데리고 있던 자의 입에서 이상하게도 내 친구 이름이 나왔으니 말이오.”

남한산성에서 힘겨운 대결을 벌였던 군관 자림의 칼잡이가 한 말은 장판수의 귓가에 아직도 생생했다.

‘윤계남이도 혹시 자네가 죽였나?’

장판수는 저도 모르게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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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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