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상 대신 차려준다 하면 손가락질 받았지예"

<음식사냥 맛사냥 45>올 추석 차례 준비는 '제수상'으로

등록 2005.09.12 15:04수정 2005.09.12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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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짐하게 잘 차려진 대가족상
푸짐하게 잘 차려진 대가족상이종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추석이 코 앞에 다가왔다. 해마다 이맘때면 우리 나라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추석날 조상님께 올릴 차례상 준비로 눈코뜰새 없이 바빠진다. 하지만 오랜 내수경기 침체 때문인지 재래시장이나 백화점에 가보아도 제수음식이 턱없이 비싸기만 하고 때깔 또한 마음에 쏘옥 들지 않는다.

그렇다고 가족과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참석하여 지켜보는 추석 차례상에 값싸고 형편 없어 보이는 그런 음식을 올렸다가는 추석날 아침부터 타박을 맞기 일쑤다. 고기가 신통찮다느니, 고사리 나물이 살이 통통하게 찌고 큰 것을 보니 수입품 같다느니, 대추와 밤이 올해 딴 게 아니라 한 해 묵은 것 같다느니 등.


참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것이 차례상 음식이다. 오죽 말이 많고 탈이 많았으면 예로부터 '남의 집 제삿상에 밤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라'는 그런 말까지 전해내려오겠는가 말이다. 게다가 요즈음 시장에 나가보면 조상님께 정성을 다해 올려야 하는 각종 제수용품에까지 외래품을 국산품으로 버젓이 속여 파는 일부 얌체상인들까지 판을 친다.

특히 맞벌이를 하는 부부, 해마다 차례를 지내야 하는 큰집 부부일수록 추석 차례상을 준비하기가 더욱 버겁다. 매일 아이들 끼니 챙기랴, 직장생활하랴, 퇴근하고 나면 추석 차례상 준비하랴, 몸은 잘 따라주지 않고 마음만 한없이 바쁘다. 이럴 때 누군가 나 대신 시장을 봐주고, 나 대신 차례상을 정성스레 준비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수상과 도시락 전문업체 마산 '장원도시락'
제수상과 도시락 전문업체 마산 '장원도시락'이종찬
"저희 장원도시락은 1970년 마산과 경남일대에서는 최초로 전문도시락업체로 창업했지예. 저는 10여 년 전에 이 업체를 인수하여 각종 행사와 학교에 단체급식을 하고 있습니다. 사실, 제수상을 하려고 마음 먹은 것은 오래되었지만 실제로 시작한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어예. 그 당시만 하더라도 이 지역 사람들은 제수상을 대신 차려준다고 하면 손가락질을 할 정도였으니까예."

지난 9일(금) 오후 4시에 찾은 제수상과 도시락의 명가 '장원도시락'(경남 마산시 신포동 2가 54번지). 35년 전통을 자랑하는 이 집 대표 김근석(53)씨는 "장원도시락 하면 마산 창원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면서, 요즈음 툭 하면 학교 도시락 때문에 여러 가지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지만 장원도시락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런 사고가 난 적이 없다고 말한다.

마산 시내 중심가 신포동 아파트 상가에 있는 이 집은 특히 마산 어시장과 부림시장이 코 앞에 있어, 매일 새벽마다 시장에 처음 나오는 싱싱한 생선과 채소를 구입, 각종 제수상과 도시락을 만든다. 위생관리 또한 엄격하다. 생산물배상책임보험(동양화재 1억보상보험)에 든 것은 물론 매월 1회 자가품질검사시험(동진분석기술연구소)과 식중독 및 전염병 예방 방역(크린코리아)을 실시한다.


100여 평 남짓한 넓직한 도시락 공장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모자와 가운을 입은 조리사들이 추석을 맞아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오고 있는 각종 제수상에 올릴 음식 만들기에 바쁘다. 이 공장 조리사들은 아침에는 주로 창원과 마산 등지에 있는 학교에 들어갈 단체 급식을 만들고, 오후가 되면 대부분의 시간을 제수상에 올릴 음식을 만든단다.


대가족상이나 정성상이나 생선과 음식 몇 가지가 빠진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
대가족상이나 정성상이나 생선과 음식 몇 가지가 빠진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다이종찬
"요즈음 시장에 차례용 음식을 사러 나가면 30만 원쯤 들고 가더라도 별로 살 게 없어요. 게다가 각종 제수용 음식들도 중간 도매상을 몇 번 거치기 때문에 가격만 택도 없이(턱없이) 비싸지예. 저희들은 이른 새벽에 열리는 경매시장에 나가 제수용 음식과 도시락에 필요한 여러 가지 생선들과 채소들을 구입하지예."


'장원도시락' 김근석 대표는 "차례상에 필요한 생선과 채소 등을 도매로 구입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시장에 나가서 사는 것보다 훨씬 싱싱하고 저렴하다"고 말한다. 이어 "요즈음 마산과 창원에도 맞벌이 부부가 점점 늘어나서 그런지 평소에도 기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수상 주문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귀띔한다.

이 집에서 만들고 있는 제수상(차례상, 묘사상)은 모두 세 가지다. 20명 정도의 대가족들이 차례를 지낸 뒤 푸짐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대가족상(30만원)과 15명 정도의 가족들이 오손도손 나눠먹을 수 있는 정성상(25만원), 그리고 10명 정도의 가족들이 소박하게 나눠 먹을 수 있는 알뜰상(20만원)이 그것.

모두 33가지의 음식이 올라가는 대가족상은 민어 1마리, 문어 1마리, 도미 1마리, 조기 3마리, 닭 1마리에서부터 시금치 600g, 고사리 600g, 도라지 600g, 콩나물 600g, 무나물 600g, 각종 부침개와 동태전 800g, 육원전 800g, 가자미전 5마리, 두부적 800g, 산적 800g 등이다. 그리고 탕국 5리터와 삼탕(소탕/어탕/육탕) 각 1그릇, 대추, 깐밤 7개, 감(곶감) 9개, 배 5개, 사과 5개, 계절 과일 1종, 약과 1팩, 유과, 시루떡 1.5kg, 인절미 1.5kg, 문어꽃발, 명태포 1마리가 올려지며, 양초 2자루와 향 1통, 전지 2장이 곁들여진다.

김 대표는 "제수상(차례상)에 올릴 멧밥은 집에서 직접 해야 하며, 계절에 따라 제수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조금씩은 바뀔 수밖에 없다"고 되뇐다. 김 대표는 "제수상을 미리 신청하면 제사를 지낼 당일 새벽에 재료를 준비하여 그날 오후에 즉시 배달된다"며, 경남이 아닌 다른 지역은 시간 관계 때문에 배달이 어렵다고 덧붙인다.

모두 30가지의 음식으로 차려지는 정성상은 대가족상에 올라가는 민어 1마리와 인절미, 문어꽃발이 빠지며, 각종 나물과 부침개 종류도 15명 정도가 나눠먹을 정도로 조금씩 줄어든다. 그리고 알뜰상은 26가지 음식으로 차려지는데, 알뜰상에 오른 문어와 도미 등이 빠지며, 각종 부침개와 나물의 양도 10명 분으로 줄어든다.

하지만 언뜻 보기에는 알뜰상도 정성상이나 대가족상과 엇비슷하다. 다만, 생선 몇 가지와 부침개, 나물 몇 가지가 빠지는 것뿐 제수상 위에 오른 음식에는 큰 변화가 없다. 왜냐하면 알뜰상이라 해도 제수상에 오르는 음식의 양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가족들과 나눠먹는 음식의 양이 조금씩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밖에 쌀밥과 시레기국, 조기구이, 쇠고기 장조림, 장어 양념구이, 김무침, 무말랭이, 멸치볶음, 김치, 풋고추, 된장이 들어있는 '장원도시락 특선'(5000원)도 먹음직스럽다. 게다가 35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유부초밥(3000원)이나 김밥(3000원), 충무김밥(3000원) 등도 가족들이나 친구들 여러 명과 함께 들놀이를 나갈 때 간편하게 싸가기에 그만이다.

"사실, 간단한 기제사 같은 경우는 20만 원짜리 알뜰상이면 충분합니다. 알뜰상이라 하더라도 제사를 지낼 때 반드시 있어야 할 음식은 빼놓지 않고 다 올리거든예. 하지만 추석이나 설날 같은 큰 명절에는 일가 친척들이 다 모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대가족상이 좋고, 묘사를 지낼 때는 대가족상과 엇비슷한 정성상이 그만이지예."

중추절, 가위, 한가위, 가배절 등으로 불리워지는 추석. 올 추석에는 번거롭게 시장에 나가 차례용 음식을 일일이 사서 집에서 힘들게 조리하지 말고 빈틈없이 잘 차려진 정성상이나 대가족상을 주문해서 차례를 지내보는 것은 어떨까.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속담이 이처럼 누군가 바쁜 일손을 거들어줄 때 해당되는 말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의 신문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민의 신문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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