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못 마셔? 독약이라도 들었남"

[금강산 기행 2] 트윈은 뭐고 더블은 뭐지?

등록 2005.09.15 08:41수정 2005.09.15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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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박 3일 동안 우리 부부가 묵게 될 숙소는 패밀리비치호텔. 이제 막 준공한 새 건물이었고 그 앞으로 금강산과 고성항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단 둘이 여행을 떠나 온 것도 처음이었지만 호텔 투숙 역시 처음이었다. 신혼여행 때도 콘도에서 보냈다. 가깝게 지내는 친구의 방 두 개짜리 콘도 사용권을 이용했고 운전기사를 자청했던 그 친구와 함께 신혼여행을 다녔었다.

사실 이번 금강산 여행길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오마이뉴스>에서 광복 60주년기념 '우리 가족과 8·15'라는 주제의 기사 공모에 뽑히지 않았다면 애초에 꿈도 꾸지 못했을 여행길이었다.

우리 숙소에는 침대가 두 개 놓여져 있었다. 아내는 예약을 잘못했다고 말했다. 숙소를 잡을 때 더블 침대를 쓸 것인가, 트윈 침대를 쓸 것인가를 선택해서 예약해야 하는데 침대를 사용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더블'과 '트윈'의 개념을 잘 몰라 대충 예약을 했던 것이었다.

두 개의 침대에 이불도 두 개씩 베개는 한 침대에 무려 4개씩이나 되었다. 적게 벌어 적게 먹고 사는 우리 부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낭비'였다. 무엇 때문에 부부가 묵는 방 안에 두 개의 침대가 필요하고 한 침대에 두 채의 이불과 4개의 베개가 필요한지 아리송했다.

맥주에 독약이라도 들었나?


방 안에는 대형 텔레비전과 냉장고도 있었다. 냉장고 안에는 마주앙과 캔맥주 그리고 갖가지 탄산음료와 생수가 들어 있었다. 본래 탄산음료를 입에 대지 않는 나는 목도 컬컬하고 하여 캔 맥주를 꺼내 마시려 하는데 냉장고 위에 올려진 안내문을 읽던 아내가 제동을 걸었다.

"어? 그거 마시면 안돼!"
"왜? 여기에 독약이라도 들었남."


안내문에는 두 개의 생수는 무료인데 나머지는 숙소를 나갈 때 돈을 지불해야 한다고 써 있었다.

"캔 맥주는 마셔도 되겠네, 가격 차이도 없고…."
"근디 캔맥주 세 개 몽땅 4불이라는 뜻이 아니구먼."

이번에는 내가 제동을 걸었다. 냉장고 품목에 3개의 캔 맥주가 4달러라고 써 있다고 했는데 자세히 보니 그게 아니었다. 4달러라는 것이 3개 몽땅 4달러가 아니라 개당 4달러, 한 개에 우리 돈으로 4400원이나 됐던 것이었다. 아내는 다시 캔 맥주를 냉장고에 넣으려고 했다.

"그냥 마셔, 이것도 다 통일 비용으로 쓰일 테지."

우리는 2박 3일 동안 두 개의 캔 맥주를 마시면서 우리가 마치 북측 사람이 되어 남측에 온 것 같은 묘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북쪽에선 전력난 식량난으로 고생하는데...

숙소에 짐을 풀고 다시 버스를 탔다. 다른 버스들은 다 떠났는데 우리 버스만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50대 중반쯤 돼 보이는 아줌마 둘이 해찰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두 사람은 남측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지간히 속을 썩였다. 한두 번도 아니고 언제나 약속 시간을 어겨 다른 사람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a 금강산 휴게소 온정각, 금강산이 구름에 덮여 있다.

금강산 휴게소 온정각, 금강산이 구름에 덮여 있다. ⓒ 송성영

저녁 식사는 금강산이 보이는 온정각에서 하기로 했다. 식당 안은 코가 맹맹할 정도로 써늘했다. 쌀쌀한 저녁 날씨에도 불구하고 에어컨을 틀어 놓았던 것이다. 전력난으로 고생하는 북측과는 전혀 상관없이 에어컨은 팡팡 돌아가고 있었다. 관광조장 말로는 금강산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시설들은 현대 측에서 따로 자가 발전기를 돌려쓰고 있다고 한다.

식사는 뷔페식이었다. 아내는 배가 무척 고팠던 모양이다. 한 접시를 먹고 나서 다시 한 접시를 더 가져왔다. 집에서 출발할 때 주먹밥을 싸 가지고 와 양양인가 어딘가에 자리한 '3·8선 휴게소'에서 점심을 대충 때웠기 때문이었다.

다들 긴장이 풀렸는지 식당 안의 표정들이 한결 여유가 있어 보였다. 그 여유 있는 표정으로 남측에서 그러했듯이 음식조차 여유 있게 남기고 있었다. 아내 역시 두 접시째를 다 먹지 못하고 몇 숟가락 정도를 남겼다.

"음식은 남기지 말자구."
"배불러 도저히 못 먹겠는데."
"그럼 조금만 퍼오지, 북측 사람들은 전력난에 식량난으로 고생덜 하구 있는디."
"아참 그렇지."

아내는 금강산에서의 첫날 저녁 식사 이후로 돌아오는 날까지 밥 한 톨도 남기지 않았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들 기념품 가게인지 면세점인지로 들어갔다. 나 또한 아내의 손에 이끌려 백화점처럼 물건들이 많은 어디론가 들어갔다. 물건들은 호텔 안의 캔 맥주만큼이나 비쌌다. 아내는 여기 저기 둘러보면서 선뜻 손을 대지 못했다. 나는 아내를 두고 먼저 밖으로 나왔다.

온정각 휴게소에는 김일성 주석이나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배지를 단 북측 사람들을 볼 수 없었고 금강산조차 어둠에 묻혀 보이지 않았다. 온정각은 남측 어느 백화점을 옮겨 놓은 듯했다. 온통 자본으로 넘쳐 나고 있었다. 요란한 음악소리와 휘황찬란한 불빛, 분수대까지 있었고 화사하게 치장한 관광 마차까지 보였다. 모든 게 화려했지만 마차 끄는 말은 달랐다. 저녁은 먹었는지, 살집이 별로 없어 보이는 말이 무척 고달파 보였다.

그림책과 담배 한 보루

담배 한 개비를 다 피우고 한참을 지나서 아내는 쇼핑을 마치고 돌아왔다.

a 40여분 쇼핑 끝에 아내가 구입한 북측에서 발행한 '금강산 전설 그림책'

40여분 쇼핑 끝에 아내가 구입한 북측에서 발행한 '금강산 전설 그림책' ⓒ 송성영

"뭘 샀는디?"
"애들 그림책."
"그림책?"

그림쟁이 아내는 40여분 동안 쇼핑을 하고 결국 가격이 가장 싼, 3달러짜리 '금강 선녀 전설 그림책' 한 권을 사왔다. 금강산 선녀 전설을 동화처럼 풀어 쓴 북측에서 발행한 그림책이었다. 그림들이 낯설었다. 낯설었지만 기교를 부리지 않아 어딘지 모르게 정감이 묻어났다. 그림 그리기를 유난히 좋아하는 우리 집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것이었다.

아이들은 난생 처음으로 우리 부부와 2박 3일을 떨어져 생활하고 있었다. 우리가 금강산에 다녀오는 동안 작은 아이 인상의 친구, 김영신네 집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우리는 영신이에게 줄 북한 그림책을 한 권 더 샀다. 거기다가 15달러짜리 북측의 '려과 담배 금강산'을 한 보루 더 산 것이 2박 3일 동안 쇼핑물의 전부였다. 우리는 쇼핑하러 온 것이 아니고 금강산과 금강산에서 기대 사는 북측 사람들을 만나러 온 것이었다.

숙소인 금강산 패밀리비치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현대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우리 옆을 지나치며 습관적으로 '카~악'하며 가래침을 모으자 뒤따라오던 젊은 여자가 등을 탁 치며 말했다.

"아이구, 참내, 아버지 여기다 침 뱉으면 벌금 물어요, 벌금, 아까 안 들었어요?"

우리와 함께 버스를 타고 온 부녀였다. 그녀는 칠순은 훨씬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의 막내딸쯤으로 여겨졌다. 늙은 아버지를 나무라고 있었지만 보기가 참 좋았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몇몇이 숙소 앞에서 시끌벅적 노래방 갈 궁리를 하고 있었지만 우리는 신혼부부처럼 방 안으로 들어왔다. 4개인가 5개인가 남측 방송이 잡히는 텔레비전에서는 한창 9시 뉴스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방 안에 놓여진 두 개의 침대에 대해 '토론'을 했다.

"트윈은 분명 쌍둥이라는 뜻이잖어, 그리고 더블은 두 개라는 뜻이니께, 둘 다 두 개의 침대라는 뜻이 아닌겨?"
"좀 다를 걸, 트윈은 쌍둥이처럼 따로 따로 있는 것이고 더블은 두 개를 붙여 놓은 것이 아닐까?"
"에이, 그냥 침대 두 개짜리 방, 침대 두 개를 붙인 방, 뭐 이런 식으로 하믄 될 것을 영어를 써서 복잡하게 만들구 지랄들여."

말은 그렇게 했지만 분명 침대 방은 근사했다. 우리는 호텔 문화에 익숙지 않은 북한 주민들처럼 침대 두 개가 따로 떨어져 있는 방이 '트윈'인지 '더블'인지에 대해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트윈'이든 '더블'이든 간에 더 이상 상관하지 않기로 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다시 그 얘기를 꺼내 침대 문화를 잘 아는 누군가에게 물어보자고 했다.

나는 아내가 겁내하는 냉장고를 용감하게 열었다. 거기서 가장 비싼 10달러짜리 '마주앙' 한 병을 꺼냈다.

"그거 만원이 넘는데 그걸 왜 열고 그래."
"까짓 거, 지가 비싸면 얼마나 비싸, 그냥 마시자구."
"우리가 남측 사람인지 북측 사람인지 갑자기 헷갈리네."

그런데 방안 구석구석 아무리 찾아 봐도 코르크 따개가 없었다. 결국 전화기 영 번을 돌려 안내실을 통해 코르크 따개를 구했지만 이놈의 코르크 마개가 도무지 열리지 않았다. 비틀고 잡아 댕겨 보기를 십여 차례, 결국 코르크 마개가 만신창이 되어서야 겨우 마주앙 한잔을 마실 수 있었다.

금강산 관광의 첫날 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자본의 힘 앞에서 무력해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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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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