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39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9.13 17:01수정 2005.09.13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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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내가 본 여진어로 된 두루마리에 사람들의 이름이 있었다 이 말이냐?"

차충량은 차예량과 함께 계화의 말을 듣고서는 어처구니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게다가 두루마리에 있는 '이종'이라는 이름은...... 저도 나중에 알았지만 지금 주상 전하의 함자입니다."
"쉿!"

차예량이 주의를 주었고 계화는 움찔거리며 입을 다물었다.

"그 두루마리에 있는 이름들을 기억하는가?"

계화는 기억을 더듬으며 속삭이는 목소리로 이름을 열거했다.

"최명길, 김자점, 이귀, 김류......"


차충량은 한층 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차예량을 쳐다보았다. 이미 계화에게서 이야기를 들은 바 있는 차예량은 그저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청의 군대를 이 땅에 끌어 들인단 말인가? 최명길 같은 이는 청과 싸우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나! 이건 허황된 말일세!"


"그 두루마리는 하나의 맹세를 담은 연판장입니다. 두루마리가 없어져 세세한 내용을 다 알리지 못하는 게 한이 되지만 제가 기억하는 데까지 얘기해 드리겠습니다."

계화가 전하는 바로는 그들이 함경도 풍산에 모여 반정을 위한 회합을 가졌다고 했고 결의를 다지기 위해 여진어로 된 연판장을 써 놓았다는 말이었다.

"왜 하필 여진어인가?"
"첫째 이유는 여진어를 해독할 자가 많지 않아 만약의 경우 반역을 꾀했다는 물증으로 누군가 이를 입수하였다고 해도 알 수 없다는 것이고 둘째 이유는 그 자리에 지금은 청의 황제인 홍타이지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뭐라!"

차충량은 껄껄 웃기까지 하며 말도 안 된다고 손까지 휙휙 내저었지만 옆에서 차예량이 계화의 말을 거들었다.

"계화의 말은 두루마리를 본 그대로 전하는 것입니다. 계화는 어려서 일찍이 한 노인에게 여진어를 깨친 바가 있는데 그 노인이 이 일과 깊은 관계가 있었던 듯합니다."

"그래도 이건 너무나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일세! 실제로 그런 회합이 있었다고 하지! 대체 그들이 무슨 이득을 얻을 수 있었겠나? 선대 광해군은 청과 적대 관계를 가지려 하지 않았지만 반정이 일어난 후에는 명과 가까이 하려 했고 그로 인해 두 번의 전란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반정으로 조선을 주름잡고 홍타이지와도 교분을 쌓았다는 그들이 무엇 때문에 청과 분란을 일으켜 그 군대를 끌어들인 후 치욕을 당한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 할 수 없다는 차충량의 태도에 다시 한 번 차예량이 끼어들었다.

"그건 형님이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뭐야?"
"그들이 반정으로 정권을 잡았지만 백성들이 그들을 믿고 따랐습니까? 온전히 자신들만의 세상을 위해 나라를 집어삼킨 겁니다. 그것도 알고 보면 오랑캐의 힘을 빌어서 말입니다! 청의 침략을 막는다고 백성들을 부역에 시달리게 했으며 이제는 백성들을 심양에까지 끌려가게 하고서는 알아서 몸값을 갚아 나오라고 합니다. 웬만한 집안이 그 일로 인해 망하지 않은 곳이 없어 이젠 조정에서 뭘 하던 간에 항거할 힘조차 없습니다. 어차피 상대가 되지 않을 싸움을 대의명분을 핑계로 벌인 이유가 여기 있는 것입니다!"

차예량은 여전히 머리를 흔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말이 되지 않을 뿐더러 과연 그렇다면 어찌해야 하는 겐가? 조정과 청이 한통속이 되어 백성들을 우롱했다면 우리로서는 별 수 없는 일 아닌가?"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뒤늦게 깨달았지만 곁으로는 조정의 말을 듣는 척하며 힘을 모으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황당한 말을 믿고 움직이는 자들이 있다고?"

차충량은 인상을 찌푸리며 끝끝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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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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