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38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9.12 17:02수정 2005.09.12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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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새벽, 장판수는 노인이 마련해준 주먹밥을 정중히 받아들고서는 큰절을 올렸다.

“내래 어려서 아비를 잃고, 그 후에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제야 노인장을 만나 미흡하나마 눈을 틔우게 된 것 같아 송구스럽습네다.”
“허허허...... 하찮은 촌부에게서 뭘 배웠다고 그러나! 몸 성히 일을 마치게나.”
“노인장! 부디 할머니와 건강하게 계시옵소서. 일이 끝나면 꼭 다시 한 번 들리겠습네다!”


노인은 장판수의 등을 토닥여주며 장판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 길까지 배웅했다. 장판수는 마치 친할아버지와 헤어지는 양 연실 뒤를 돌아보며 아쉬움을 표했다.

심하게 앓고 난 뒤에 제대로 요양도 하지 못한 장판수였지만 그 발걸음만은 가볍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막연히 발걸음을 옮기던 때와는 달리 장판수는 하나의 목표가 서 있었다.

‘그 놈들이 무엇 때문에 그러한 일들을 꾸며 왔는지 알아내리라! 단순히 악심(惡心)을 품고 그런 일을 하지는 않았을 터!’

회령 땅에 발을 들여놓은 장판수는 험한 고개를 넘어서 풍산으로 들어섰다. 풍산 주위는 나무만 가득할 뿐 인적조차 드문 곳이었다. 그나마 밭을 끼고 인가가 늘어선 곳을 용케 찾아내어 주위를 두리번거리니 낯선 이의 행색에 관심을 보인 마을 사람 하나가 장판수에게 다가와 물었다.

“여기 사람은 아닌 듯 하이.”
“그렇습네다. 혹시 여기에 어떤 중이 살고 있지 않습네까?”
“중이라 했슴매? 여기는 절이 없꼬마. 누굴 찾아 왔는지 모르겠소만 저 짝 길로 산골에 가모 사냥꾼들이 있슴매. 거기 사람들 발이 넓으니 가서 물어보소.”


장판수는 감사함을 표하며 마을사람이 일러준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갔다. 산등성 중간의 좁은 평지에 작은 움집이 있고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장판수가 사람을 불렀으나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고, 이른 시각인데도 산골이다보니 일찍 해가 지기 시작했다.

‘허! 여기서 사람을 찾아봐야 하나 아니면 아까 그 마을로 내려가 하루 밤을 신세질까?’


장판수가 잠시 고민에 빠진 사이 숲 사이에서 슬며시 수풀이 움직였다. 이를 장판수가 느꼈을 때 화살 한대가 날아와 장판수의 발아래 꽂혔다. 장판수는 짧은 패도를 뽑아들고 소리쳤다.

“웬 놈이냐!”

장판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쳤지만 막상 숲 속에서 나온 세 명의 사내들은 장판수를 바라보며 태연히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이곳 사람이 아니구먼. 난 모피라도 훔치러온 좀 도둑인 줄 알았지. 여긴 무슨 일로 왔나?”

사내들에게 그다지 적의가 없음을 알아챈 장판수는 칼을 도로 집어넣은 후 통성명을 했다.

“난 장판수라고 합네다. 풍산에 있는 어떤 중을 찾아왔습네다.”

사내 중 한명의 눈이 잠시 번뜩였지만 장판수는 미처 이를 알아차리진 못했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지만 이왕 여기까지 온 거 손님대접은 해줘야하지 않겠소. 마침 덫에 걸린 토끼와 쏘아 잡은 꿩이 있으니 오늘밤은 여기서 묵어가시오.”

뜻밖의 호의에 장판수는 그 의도를 의심하기보다는 체면부터 차렸다.

“이거 뜻하지 않게 신세를 지게 되어서......”
“체면 차릴 거 없소. 아까 칼을 뽑아드는 품세를 보니 한 가닥 할 것 같은데 같이 술이나 들며 자리 값으로 무용담이나 들려주시오 허허허.”

장판수는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긴 했지만 사냥꾼들의 태도가 너무나 스스럼없어 보여 긴장을 풀고 그들의 호의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냥꾼들은 나뭇가지를 모아 불을 지피고 깃털도 뽑지 않은 꿩 두 마리를 꼬치로 꿰어 그슬리며 성급히 술잔을 돌렸다.

“함경도 술이 좀 독하오!”

깊은 산중에 언제 술을 준비해 두었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본래 술을 잘하지 못해 이를 기꺼워하지 않는 장판수였지만 사내들의 떠들썩한 말과 장판수의 말을 흥겹게 받아주는 분위기, 그리고 거침없이 오고가는 술잔을 상대하다보니 저도 모르게 술에 취해 화톳불을 베게 삼아 곤히 잠이 들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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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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