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67회

등록 2005.09.20 08:03수정 2005.09.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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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완벽하게 포위망을 갖추었다. 저들은 빠져나갈 구멍이 없었다. 하지만 육능풍(陸凌馮)은 왠지 찜찜한 마음을 걷을 수 없었다. 그는 큰 머리통을 버릇처럼 흔들었다.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면 하는 행동이었다.

(어떻게 빠져 나왔던 것일까?)


보고에 의하면 천마곡은 천험의 절지로 호로병 모양으로 생겼다고 했다. 입구는 오직 하나였고 입구에는 철혈보 뿐 아니라 구파일방의 일부 인물들까지 파견되어 감시하고 있은 지 벌써 이 개월이 넘었다. 헌데 섭장천 일행이 천마곡을 빠져 나왔다는 정보를 입수했고, 그들을 쫓은 지 엿새째였다.

처음 매우 조심스럽게 그들을 추격한 것은 섭장천이 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섭장천이라면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육능풍 자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헌데 분명 섭장천과 같이 다니는 인물들임을 확인했음에도 섭장천은 없었다.

육능풍은 여전히 바람이 부는 산등성이 서서 밑에 보이는 낡은 사당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두 명의 젊은 사내가 서 있었는데 그들 역시 사당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육능풍이 고개를 다시 흔들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초산(草算)…! 저들이 천마곡을 빠져 나왔고, 행적을 알려준 것이 은영전주(隱影殿主)라 했지?"

벌써 같은 물음이 세 번째다.

"전주(殿主)로부터 직접 받은 정보입니다."


초산은 여전히 똑 같은 대답을 했다. 철혈보 은영전(隱影殿) 소속 사영(四影) 중의 한 명인 그에 대해 해맑은 얼굴에 왜소한 체격만 보고 사람들은 왕왕 그에 대한 평가를 잘못하곤 한다. 그러나 그와 몇 번 부닥쳐 좀 사람이라면 그 생각이 너무나 잘못 되었다고 느낀다. 해맑은 미소 뒤에 숨은 깊은 심기(心機)와 왜소한 체격 뒤에 감추어진 그의 손속에 당한 후에야 비로소 후회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초산은 내심 긴장하고 있었다. 육능풍의 입에서 같은 물음이 세 번씩 나왔다는 것은 뭔가 풀리지 않는 짙은 의혹이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하지만 은영전주로부터 직접 하달된 정보가 이상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은영전주는 철저하게 신분이 감추어져 있지만 육능풍은 철혈보 내의 서열이위의 중요인물이다. 그가 은영전주를 모를 리 없다.

더구나 은영전에서 취합한 정보는 철혈보의 서열 오위까지 여과하지 않고 보고가 되는 것이 상례였다. 은영전에 몸담고 있는 초산보다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이 육능풍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이상한 일이야… 너무 이상한 일이지 않은가?"

육능풍의 말에 초산과 독고상천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육능풍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무엇이 이상하시다는 말씀입니까?"

독고상천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항상 있는 일이지만 저렇게 뜬금없는 말을 해놓고 묻는 사람을 오히려 이상하게 만드는 인물이 육능풍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을 좋아하는 육능풍에게 매번 당하면서도 독고상천은 언제나 육능풍의 비위를 맞추어 주곤 했다. 육능풍이 고개를 돌려 독고상천과 초산을 번갈아 보았다.

"저들은 어떻게 천마곡을 빠져나왔지? 그렇게 감시가 허술한가?"

"천마곡의 입구로 나온 것은 아닙니다."

초산이 대답했다.

"그렇다면 천마곡 내 다른 통로가 있다는 말인가? 자네는 알고 있었나?"

"다른 통로가 있다는 확실한 정보는 들어 온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육능풍이 손을 저으며 초산의 말을 끊었다.

"천마곡 내에 본 보의 인원이라도 심어 둔 적이 있었는가?"

지금까지 그런 보고는 없었다. 만약 간세라도 심어두었다면 독고하운을 그곳으로 보낼 리 없지 않은가? 아무리 점으로 이루어진 조직이라도 은영전에 몸담고 있는 사영이라면 어느 문파에 방수가 있을 것이란 정도는 감으로 알게 된다. 더구나 육능풍이라면 누구보다 그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들은 바 없습니다."

초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육능풍의 말이 이어졌다.

"분명 저들이 유일한 길인 천마곡 입구로 나오지 않았다면 두 가지 가정 밖에 없지 않은가? 하나는 애초부터 저들은 천마곡으로 들어가지 않았거나, 아니면 다른 비밀통로가 있던가..... 그렇지 않나?"

"저들은 분명 천마곡 내에 있었습니다. 비밀통로가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렇지?"

육능풍이 단지 비밀통로 여부를 확인하려고 물은 것은 아닐 것이다. 이미 모든 정황이 천마곡 내에 비밀통로가 있을 것이란 확신을 주고 있었다. 천마곡으로 들어갔던 인물들이 나온 것은 저들만이 아니었다. 이미 여기에 있는 세 사람은 이틀 전에 벌어진 열락장 사건을 어제 오전에 보고받은 바 있었다.

"그렇다면 은영전주는 어떻게 저들이 천마곡을 빠져 나왔다는 사실을 그리 빨리 알 수 있었을까?"

"본보의 이목은 전 중원에 깔려 있습니다."

"좋으이… 그렇다면 열락장 사건을 일으킨 자들이 빠져 나왔다는 사실은 왜 알려주지 않았지? 몰랐던 건가, 아니면 고의로 그들에 대한 정보는 누락한 것인가?"

초산은 변명이라도 해야 했지만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아무리 철혈보의 이목이 중원에 깔려 있다고는 하나 백이면 백 모두를 발견해낼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육능풍이 지적한 사실에 대해서는 초산 역시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던 터였다.

"허면 그 자들만 빠져 나왔을 것이라고 단정 지을 수 있겠나? 지금 중원의 이목은 온통 천마곡으로 쏠려 있지 않은가? 이미 그곳으로 향한 무림인들도 꽤 많아. 헌데 그들은 천마곡을 유유히 빠져나와 중원을 활보하고 있단 말일세."

"…."

"더구나 섭장천은 없었지 않은가?"

"노조(老祖)께서는 그들이 무림인을 천마곡으로 유인해 놓고 주력을 빼돌려 빈집을 노릴 것이란 말씀이십니까?"

독고상천이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육능풍이 바라고 있는 물음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육능풍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은가? 허나 노부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점이 아니야… 초산 자네는 요사이 본 보의 정보가 자꾸 토막이 난 채로 입수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

"노조께서는…?"

"확신할 수 있는 일이 있는가? 본 보는 저들이 천마곡에서 나왔다는 은영전주의 정보에 따라 급하게 움직였지 않은가?"

"하운(河雲)이 저들의 손에 비참하게 죽음을 당했습니다."

독고상천의 입에서 살기가 묻어 나오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천마곡에 들어갔다가 시신으로 돌아 온 동생 독고하운을 말함이었다.

"물론 본 보의 규칙대로 철저하게 응징을 해야겠지. 그것을 말함이 아니네. 그렇다면 상천…!"

육능풍의 얼굴에서 언제나 여유롭게 보이던 장난기가 사라졌다. 그는 머리를 흔들거리면서 독고상천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유곡을 쫓던 무리들은 대체 누구지? 단순히 천지회 내부의 인물들이던가?"

육능풍의 시선이 초산과 독고상천을 번갈아 훑고 있었다. 독고상천에게 물었지만 초산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초산은 대답할 수 없었다. 아직 밝혀내지 못했고, 그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그 점 역시 기이한 일이었다. 철혈보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인물들이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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