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자' 한국의 바짓가랑이를 잡는 언론들

[뉴스가이드] <조선>과 <세계>의 '악용가능성론'은 위험하다

등록 2005.09.20 09:20수정 2005.09.21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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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이제야 손 맞잡은 6개국 대표단 2단계 제4차 6자회담 이레째인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이제야 손 맞잡은 6개국 대표단 2단계 제4차 6자회담 이레째인 19일 낮 댜오위타이에서 열린 전체회의에서 한반도 비핵화 원칙 등 6개항의 공동성명을 채택하고 회담을 성공리에 마친 6개국 대표들이 회담 직후 손을 맞잡고 이를 축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문제는 역시 경수로다. "적당한 시점에 논의한다"고 땜질한 경수로 제공 문제를 두고 벌써부터 국내 언론의 입장이 갈리고 있다.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그리고 <세계일보>는 "경수로 제공은 안된다"고 못 박고 나섰다. 논리는 두 가지다. 하나는 돈 문제.

<동아일보>는 우리가 왜 '독박'을 써야 하느냐고 따졌다. "한국은 에너지 지원도 하고, 200만kW의 전력도 공급하는 것은 물론이고,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경수로 비용까지 부담하게 돼있다"며 "전력을 주기로 한 이상 한국은 별도의 에너지 지원에서 빠지거나 최소한의 부담에 그쳐야 한다"는 게 <동아일보>의 주장이다.

전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은 아니다. 대북 전력지원을 제안했던 정부 스스로 신포 경수로 건설사업 '종료'를 대북 전력지원의 전제로 내세운 바 있다. 그래서 1조5천억 원이 드는 송전선로 건설비용을 신포 경수로 건설비용을 전용해 조달하겠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이러던 차에 적당한 시점에 경수로 제공 문제를 논의하기로 했으니 정부로서는 어떻게든 국민에게 설명을 해야 한다. 그것도 합리적으로…. 그렇지 않으면 또다시 '퍼주기 논란'이 벌어질 것은 불문가지다.

이와 관련해 <한국일보>는 눈길을 끄는 기사를 1면에 실었다. "경수로가 완공되면 전력 제공은 중단한다"는 정부 고위당국자의 말이 그것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오늘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와 "제한적 송전"을 거론했다. <한국일보>의 보도와 동일한 내용이다.

정부가 이런 방안을 추진한다면 경수로 건설기간 동안 대북 전력지원이 겹치는 현상을 놓고 부분적인 논란은 있겠지만 전면적인 퍼주기 논란으로까지 확대되는 현상은 막을 수 있다.


<동아일보>도 "무조건 안된다"가 아니라 "돈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이라고 단서를 단 만큼 접점은 찾을 수 있다.

<조선>과 <세계>, 6자회담 원점으로 돌리려 하나


a "200kw 제공 약속은 그것대로 챙기고 경수로는 경수로대로 받겠다는 북한식 셈법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일보> 20일자 사설.

"200kw 제공 약속은 그것대로 챙기고 경수로는 경수로대로 받겠다는 북한식 셈법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 <조선일보> 20일자 사설. ⓒ <조선일보> PDF

a "현실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대북 경수로 제공이 지금으로선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주장한 <세계일보>의 20일자 사설.

"현실적으로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대북 경수로 제공이 지금으로선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주장한 <세계일보>의 20일자 사설. ⓒ <세계일보> PDF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조선일보>는 "경수로에서도 핵무기 원료를 생산할 수 있으며, 따라서 대북 경수로 제공은 안된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감대"라고 주장했다. <세계일보> 또한 "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는 대북 경수로 제공이 지금으로선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했다.

경수로 제공은 비용의 문제 이전에 비핵화 원칙의 문제라는 게 두 신문의 공통된 지적이다. 따라서 이런 논리는 6자회담에서 도출된 공동성명의 근본을 뒤흔들 수밖에 없다. "적당한 시점에" 논의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며 오히려 "북한식 셈법을 포기하게 만들어야 한다"(<조선일보>)는 주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애초에 미국이 제기했고 <조선일보>와 <세계일보>가 되풀이 제기한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얼마나 현실적인 것인가?

전문가들은 이런 우려를 '이론상의 우려'로 치부하고 있다. 악용 가능성이 그토록 컸다면 왜 미국이 94년 제네바 합의 때 핵 동결 대가로 신포 경수로 제공을 약속했겠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꽤 설득력 있는 반문이지만 일단 접자.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믿지 못하는 북한과 미국의 태도를 감안하면 털끝만한 우려도 물고 늘어지는 행태를 뭐라 하기도 힘들다.

궁금한 점은 극도로 의심하고 우려하던 미국이 왜 경수로 제공 논의를 수용했는가 하는 점이다. 관련해서 <한겨레>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경수로 문제에 대해 완강한 태도를 고수하던 워싱턴의 자세가 누그러진 데는 북한이 경수로를 공동 관리에 맡기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 주효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겨레>가 전한 뒷이야기는 정동영 장관에 의해 확인됐다. 정장관은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국제공동관리"를 제안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논의가 여기까지 진행됐다면 <조선일보>와 <세계일보>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 나아가 6자회담 결과를 원점으로 돌리려는 시도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평화적 핵 이용 권리 보장'과 '핵무기 및 모든 핵 프로그램 포기'란 두 문구의 절충점으로 평가되는 '경수로 제공 논의'를 갈등의 발화점으로 삼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국내 언론이 이런 식으로 바짓가랑이를 잡으면 정부의 보폭은 좁아질 수밖에 없다. 중재자를 자처하는 정부가 국내의 부정적 여론에 포위돼 버린다면 11월로 예정된 5차 6자회담의 전망은 장담할 수 없게 된다.

옆집 바가지 새는 것 막기도 급한데...

돈 문제, 또 악용 가능성에 대한 우려보다 더 큰 문제, 즉 '적당한 시기'를 둘러싸고 벌써부터 북한과 미국의 힘겨루기가 시작된 상태다.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경수로 제공 논의 이전에 북한이 핵을 폐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고, 이에 맞서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오늘 아침 선(先) 핵 폐기는 절대 안된다고 잘라 말했다.

땜질하고 돌아서자마자 다시 누수가 발생하는 상황에서 중재자에게 풀은 커녕 오히려 쇠망치를 안기는 형국이 되면 곤란하다. 옆집 바가지 새는 것 막기도 급한데 자기 집 바가지마저 새버린다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는가?

<중앙일보> 김영희 대기자의 말마따나 이번 합의가 "핵 위기, 북한 문제, 한반도 문제 해결에 비켜갈 수 없는 첫걸음"이자 "동북아시아의 불안한 힘의 구도를 걱정하는 우리에게는 활용할 가치가 있는 자산"이라면 움켜잡아야 한다. 일단 자산을 확보한 다음에 부실 요소를 털어내면 될 일이다. 이게 경영의 ABC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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