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44

가야 하는 길, 와야 하는 곳

등록 2005.09.26 17:45수정 2005.09.26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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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치면 안 된다!"

나머지 두 명의 사냥꾼들은 나무사이를 달려가기 쉽게 창을 내 던지고 짧은 칼을 뽑아들고서는 장판수를 뒤쫓았다. 장판수는 맞서 싸워 볼만하다고 여겼지만 허벅지에 입은 상처에서 피가 계속 솟구쳐 흐르는 것이 한편으로는 신경이 쓰였다.


'일단 몸을 숨기고 볼 일이다.'

장판수가 쫓기는 그때, 의주에서는 새벽부터 최효일과 전 의주부윤이었던 황일호가 나루터에서 사람들을 바삐 재촉하며 물건을 싣고 있었다. 물건들은 거의 다 인삼이었고 이는 임경업의 지시로 그간 몰래 모아놓은 재물이었다.

"이는 조선을 되살릴 피와 살이 될 걸세."

황일호는 굳은 표정의 최효일이 못 미더운지 그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였다. 그래도 긴장한 최효일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의주에서의 잠상(潛商 : 법령으로 금하는 물건을 몰래 사고파는 장사)는 그 지역에서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었지만 때가 때인 만큼 이를 주시하는 눈길들이 많았다. 청은 조선과 명과의 통교를 의심하고 있었고 명은 조선과의 통교를 어떤 식으로든지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청의 눈치를 봐야하는 조선으로서는 조정에서 허락하지 않은 일체의 통상을 금지하고 있었고 이런 이유로 조, 청, 명 삼국의 첩자들이 의주 근방에 신분을 위장한 채로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형국이었다.


"짐을 다 실었습니다."

최효일은 황일호에게 깊이 머리를 조아리며 무사히 다녀올 것을 다짐했다.


"장대인이 믿을만한 사람이긴 하나 전적으로 신뢰하진 말게 중국인들이야 이익만을 쫓아가는 이들이니 터무니없는 요구를 할지 모르네. 그때는 잘 처신하게나."

"염려 놓으십시오."

최효일은 배에 올라 나루터에 남은 황일호를 바라보았고 그 순간 다시는 조선 땅을 밟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내가 너무 긴장했나.'

최효일은 정신을 바로잡기 위해 뱃머리에 앉아 차디찬 강물을 두 손 가득히 떠서 목덜미부터 이마까지 죽 훑어 내렸다. 그 순간 새벽안개가 옅게 끼인 강줄기 저편 너머로 희미하게 무엇인가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서둘러야 한다! 방향을 보니 청국의 선박이 틀림없다!"

일행의 말에 최효일은 입술이 바짝 타들어갔다. 짐을 우선시하다 보니 몇몇 이들이 호신용 칼을 지니고 있을 뿐 긴 창이나 화살 따위는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최효일이 탄 배의 뒤를 쫓는 배는 느리지만 조금씩 그 간격을 좁혀 나가고 있었다. 배에 탄 이들은 청국어와 한어(漢語)로 번갈아 가며 소리를 질렀다.

"배를 세우라는 소립네다."

중국어에 능통한 상인이 뱃전에 한가롭게 몸을 기대며 긴장한 최효일에게 슬쩍 일러주었다.

"거 남의 일처럼 얘기하는구먼."

최효일의 말에 상인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며 웃음까지 지었다.

"그냥 쫓아오도록 놔두면 됩네다. 강기슭에서 은전 한 푼만 쥐어주면 '쎄쎄'하고 돌아갈 놈들입죠."

상인은 이런 일을 수사 겪어본 양 태연했지만 최효일은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감돌았다.

'어찌 되었건 지금은 명과의 통교를 저어하는 청나라 놈들이 아닌가! 뒤탈이 없었으면 좋으련만….'

상인의 장담대로 강기슭까지 쫓아온 청의 군관은 은전 두어 푼을 받아 쥐고 배를 돌렸지만 최효일은 강 너머 의주를 바라보며 속으로 하늘에 간절히 기원했다.

'제발 이 일을 무사히 마치고 가족들에게 돌아오도록 해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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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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