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74회

등록 2005.09.29 08:05수정 2005.09.29 0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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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오른 손은 어느새 검 자루를 쥐고 있어 언제라도 검을 발출할 수 있는 자세였다. 풍철한은 여전히 회의무복 사내를 무시한 채 운규룡에게 물었다.

"자네 역시 나를 막을 텐가?"


운규룡은 망설이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이내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오."

풍철한은 처음으로 나직하게 탄식을 불어냈다. 얼굴에는 실망스런 기색이 역력했다. 그것은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깨졌다는 것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앞으로 어디서 자네를 만나던 우리는 이제부터 모르는 사이가 되겠군."

절교의 통보였다. 사랑하는 남녀 간의 이별은 아프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고들 한다. 하지만 마음이 통하던 사내와 사내 간의 절교는 죽음과도 같은 절망감을 느낀다. 운규룡의 얼굴엔 괴로움이 역력하게 떠올랐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풍형이 소제를 이해하실 줄 믿소."

"이해는 내 마음을 상대에게 진솔하게 보여주었을 때만 가능한 일이네."


"휴우… 죄송하게 되었소. 당분간 풍형을 모셔 둘 수밖에 없는 소제의 심정을 헤아려 주시길 바라오."

그 말에 갑자기 풍철한이 대소를 터트렸다.

"하핫핫… 아직 자네는 내가 누군지 잊었나보군. 나는 풍철한이야."

이 중원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성품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그였다. 풍철한은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비록 이 순간 자신의 목숨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자신의 의지대로 밀고 나갈 사람이 그였다. 당장 죽는다 해도 누구에게 속박을 당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운규룡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지만 그의 내심은 후회스런 감정 대신 어쩔 수 없다는 확신이 자리 잡아 가고 있었다.

"또한 균대위 소속 개양대(開陽隊)의 대주이신 줄도 아오."

이제 목적은 분명해졌다. 운규룡은 철저하게 가려져 있던 자신의 신분까지 알고 있다. 그 때문에 자신을 잡아두려 한다. 하지만 중요한 의문점은 하나 더 있었다. 과연 자신과 등을 돌리면서까지 이러는 동기(動機)는 무엇일까?

풍철한은 운규룡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풍철한 자신은 분명 살천문에 내려진 초혼령을 집행하기 위해 왔다. 이미 그러한 사실까지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독접 호낭자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것일까? 그래서 이러는 것일까?

헌데 이곳에 있는 세 명의 인물들은 또 누군가? 회의무복의 사내야 자신과 감정이 있으니 같은 목적으로 이곳에 왔다고 하더라도 나머지 두 명은?

양주의 윤건문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같은 강남의 토호들 자제 간에는 다른 이들이 알지 못하는 끈끈한 유대관계가 있었다. 머지않은 미래에 강남의 상권을 주무를 그들은 일종의 경쟁자이자 협조해야 할 동업자와도 같은 관계였다.

특히 신경을 끄는 것은 아직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백결이란 사내였다. 도대체 저런 자가 있다는 사실을 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것일까? 저 자의 내력은 무엇일까? 저 자 역시 강남 토호의 자제일까? 그가 누군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하지만 아무리 운규룡의 얼굴을 보아도 특별한 점을 파악해 내기 어려웠다. 그 동안 운규룡도 세파에 시달리고 경험도 가졌다는 말도 되었다. 풍철한은 비릿한 미소를 베어 물었다.

"자네는 아직까지 너무나 서투르군."

풍철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자세를 풀고 오히려 의자에 등을 편안하게 기댔다. 아직까지 여유로운 말투였고, 다분히 상대를 무시하는 행동을 보여주고 있었다.

"……?"

"자네의 목적이 그러했다면 내가 여기에 오기 전 몇 가지 서투름을 보이지 말아야 했네. 더구나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은 자네의 중대한 실수네"

"몇 가지 서투름…?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

"몇 가지 서투름은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네. 우선은 자네가 직접 나를 찾아오지 않고 배로 불렀다는 것이 이상했지. 전에는 그런 적이 한번도 없었거든. 더구나 기이한 것은 항주에 들어오면서 나는 모습을 감추려고 애썼네. 헌데 신씨란 자는 내가 그곳에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찾아왔단 말이야."

"또 있소?"

"이 배 근처에 있는 화선에는 기녀들이 없더군."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분명 서투른 실수라 할 수 있었다.

"내가 무작정 이곳에 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것이 자네가 간과한 첫 번째 사실이네."

"그런다고 달라질 일은 아무 것도 없소. 아무리 고수라 해도 물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법이오."

"준비를 철저히 했겠군."

"균대위의 이대가 모두 몰려온다 해도 상관없소. 머리 잘린 뱀은 사람을 물지 못하는 법이오."

이대(二隊)의 수장(首將)이 자신들의 손에 있는 한 나머지 수하들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란 의미였고, 그것은 병법에 있어 기본이 되는 것이다.

"크큿…!"

풍철한이 기괴한 웃음을 터트렸다.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어처구니없다는 뜻인지 모르지만 듣는 이로서는 매우 기분 나쁜 웃음이었다.

"그것이 자네가 간과한 매우 중요한 두 번째 사실이라네. 균대위가 어떤 조직인지 자네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 말이네."

풍철한은 여유 있게 술병을 들어 자신의 잔에 술을 따랐다.

"독이 들어 있어서 그런지 술 맛이 더 좋은 것 같군."

말과 함께 술을 따르고 술병을 내려놓는 순간 풍철한의 소매 속에서 반자 길이의 죽통이 빠르게 튀어나오며 선실의 창문을 뚫고 밖으로 쏘아졌다.

파아악---!

이 자리에서 그 물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것은 곧 창을 뚫고 나가 허공에서 불꽃을 일으켰다. 일종의 신호.

"어리석은 짓…!"

회의무복 사내의 입에서 폭갈이 터지며 느닷없이 탁자 위로 올라서더니 풍철한의 턱을 노리며 발길질을 했다. 중독 된 풍철한으로서는 피하지 못하고 꼼짝없이 턱뼈가 날아가는 듯 보였다.

허나 풍철한이 움직이기 전에 조국명의 우수가 쭉 뻗어짐과 동시에 사내의 발을 부드럽게 휘감으며 원을 그렸다. 공력이 실리지 않은 자연스런 동작이었는데 그것은 사내의 공격을 해소시키며 오히려 사내 몸의 균형을 흐트러뜨리는 적절한 한 수였다.

"헛!"

사내는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빠르게 허공에서 한바퀴를 돌면서 탁자 위로 내려섬과 동시에 몸을 날리며 조국명과 풍철한을 향해 연속적으로 발길질을 해댔다. 조국명이 상체를 일으키면서 양팔을 기이한 각도로 꺾어 그의 발길질을 막았다

빠바박---

회의무복 사내의 발길질이 모두 조국명의 팔에 의해서 막히고, 오히려 조국명의 좌수가 발을 움켜쥐면서 우수로 상대의 종아리에 있는 승산혈(乘山穴)을 잡아채 갔다. 승산혈은 제압당하면 마비가 되면서 다리를 사용할 수 없게 되는 혈도다.

헌데 그 순간이었다. 처음 풍철한과 조국명을 갑판 위에서 안내하고 그들 좌우에 앉아 술시중을 들던 두 명의 여자가 조국명을 공격했다. 조국명 옆에 앉아있던 여자는 조국명의 등을 향해 장력을 날렸고, 풍철한과 조국명 사이에 앉아 있던 여자는 손바닥 정도 길이의 소도로 조국명의 우측 옆구리를 찔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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