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76회

등록 2005.10.04 07:57수정 2005.10.04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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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8 장 오리무중(五里霧中)

조국명은 별화선에서의 일이 이렇듯 빨리 이루어졌는지 알았다. 자신들이 이끄는 이대(二隊)뿐 아니라 오위(五衛)가 합세하고 초혼령주가 직접 온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운대공자가 철저히 준비했더라도 모든 것이 무용지물이 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담천의의 모습은 달라져 있었다. 신검산장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그는 사려가 깊은 가운데 소극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그는 매우 결단력 있고, 냉정하게 보였다. 더구나 이 선실 안에서 아무리 돌발적이고 당황스러운 상황이 닥친 와중이었다고는 하나 아무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독접을 제압한 것은 무공수위가 추측불가의 경지에 올랐음을 의미했다. 진정한 초혼령주가 되어가고 있었다.

"요광대(搖光隊)의 대주 조국명이 영주를 뵈오."

조국명이 한쪽 무릎을 꺾으며 외쳤다. 소속과 직책을 밝힌 것은 이미 자신의 선택을 받아들여 달라는 의미다. 그러자 담천의를 바라보던 풍철한 역시 한쪽 무릎을 꿇었다.

"개양대(開陽隊)의 대주 풍철한이 영주를 뵈오."

담천의의 손은 여전히 독접의 뒷덜미를 잡고 있었다. 독접의 몸은 축 늘어져 있었는데 그렇다고 정신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순식간에 당한 일이라 얼이 빠진 것 같았다.


"나는 이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소."

담천의는 선실 안의 인물들을 보면서 말했다. 헌데 갑자기 감사하게 생각한다니…? 뜻밖의 말에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담천의가 다시 말을 이었다.


"두 분을 처음 모시는 자리에서 풍대주께 선물을 드릴 수 있으니 말이오."

농 만은 아니었다. 모든 시선이 그의 손에 잡혀있는 흑접을 향했다. 조금 전 풍철한과 흑접이 나누었던 잠자리 기술 운운했던 소리를 상기시키는 말이었다.

"영주…!"

풍철한이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자 담천의가 씨익 웃었다.

"머리 잘린 뱀은 사람을 물지 못하는 법이지만 독아(毒牙)를 빼낸 독사는 오히려 가지고 놀기 좋은 법이오."

이미 담천의는 이 안에서 일어났던 일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에게 있어서도 이대의 대주가 빠진 균대위는 반쪽이 될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대를 급박하게 소집하는 모험을 한 것이고, 다행히 그들은 명령에 따라주었다. 다만 항주에 두 사람이 도착했음을 알고서도 그는 약속된 시간까지 두 사람을 지켜보고자 했던 것이다.

담천의가 이 선실 안의 인물들에게 감사한다고 했던 말은 절대 틀린 말은 아니었다. 서먹한 관계를 풀게 해주는 아주 자연스런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이다. 풍철한의 얼굴에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당황스런 기색이 떠올랐다.

"…!"

하지만 풍철한의 당황스러움과는 달리 운규룡은 당황하다 못해 절망적인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그가 본래 목적했던 그 상황과는 정반대로 변해 버렸다. 그것은 윤건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그 두 사람은 백결이란 사내를 초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 두 사람이 믿을 수 있는 인물은 오직 그 뿐이었다.

"소문에만 듣던 초혼령주를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백결이라 하오."

백결은 정중하게 포권을 취하며 예의를 차렸다. 운규룡이나 윤건문과는 달리 그는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을 보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전혀 위축됨이 없는 당당한 모습이었다.

"담천의요."

"영주께 한 가지 부탁을 해도 되겠소?"

"살려 달라는 것이오?"

단도직입적인 말이었다. 이미 상대의 목숨이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아무리 궁지에 몰려도 무림인에게는 모욕적인 말이었다. 허나 백결은 고개를 끄떡이며 가볍게 미소를 떠올렸다.

"물론 그것이오."

아주 떳떳했다. 목숨을 구걸하면서도 저리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인물은 흔치 않다. 담천의는 백결이란 인물에 대해 흥미를 느꼈다.

"귀하의 대답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소."

"무엇이오?"

"왜 두 분을 잡아두려 했소? 그리고 당신들은 어떤 조직에 몸담고 있소?"

질문은 달리하였지만 풍철한이 조금 전 말했던 의문과 같은 맥락이었다. 쉽게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인물들이 모였다는 것은 목적이 하나라는 의미이고, 하나의 조직 속에 몸을 담고 있다는 의미도 되었다.

더구나 이 별화선 주위로 배치되어 있던 무림인들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순히 부호의 호위무사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제법 무공의 틀이 잡혀 있었고, 개중에는 일류고수라 할만한 인물들도 섞여 있었던 것이다.

"궁금하신 것이 그 두 가지요?"

"일단은."

"목숨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간단한 질문이구려. 그것만 대답하면 살려주시겠소?"

백결의 태도는 여전했다. 무엇을 믿고 저러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담천의는 대답을 하지 않고 백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백결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마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허공에서 불꽃이 이는 듯했다.

"흡족한 대답이라면…!"

"좋소. 우리는 천지회에 몸담고 있소. 천지회는 균대위가 부활하는 것을 바라지 않소. 이제 대답이 되었소?"

담천의는 백결이 백련교 열명의 사형제 중 둘째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담천의 뿐 아니라 그가 천지회에 가입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이 중원에서도 손으로 꼽을 정도. 도대체 이 무슨 영문인가? 정말 뜻밖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운규룡과 윤건문의 얼굴에 말하지 않아야 할 소리를 했다는 표정이 떠올라 있는 것을 보면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담천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정으로 이들이 천지회에 몸담고 있는 자들이라면 균대위가 부활하는 것을 극구 저지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백결의 말에는 허점이 없었다.

"또 모용화천인가?"

담천의가 자기 자신에게 말하듯 중얼거렸다. 운규룡과 윤건문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 변화는 담천의의 말이 맞다는 의미도 있었지만 이들이 천지회 소속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 대답하는 인물은 없었다.

백결은 아직 미진하다고 생각했다. 협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상황을 파악하고 적절한 대안을 내놓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대안을 내놓는 시기였다. 시기를 놓치면 더 좋은 대안을 내놓는다 하더라도 거래를 성사시키기 어렵다.

"나에게는 영주와 관련된 두 가지 중요한 정보가 있소. 그 정보를 들으신 후 결정하시면 어떻겠소?"

사실 흡족한 대답 여부를 떠나 묻는 질문에 대답을 한 것인 만큼 약속은 이행한 셈이다. 더구나 담천의는 굳이 이들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필요한 것은 정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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