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정통무협 단장기 285회

등록 2005.10.17 08:34수정 2005.10.1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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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0 장 이별(離別)

남자와 여자는 같은 인간이라도 생각이나 행동이 너무나 다르다. 사내는 대개 하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많은 다른 것을 돌보려 하지 않는다. 주위의 다른 이들이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섭섭해 하는 것은 애써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생각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무시한다. 그리고는 그 목적을 이루고 나면 모든 이들이 자신을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여자는 다르다. 여자는 목적이 있어도 주위에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는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다른 것을 희생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자들에게 있어 목적은 목적이고, 그 과정 속에서 있는 많은 부분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내는 여자를 이해하기 어렵고, 여자는 사내를 이해하기 어렵다. 단지 이해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정말 들르시지 않을 건가요?'
'아직 흉수도 찾지 못했는데 무슨 면목이 있어 들르겠소?'
'그래도 동생 분은….'
'어차피 십수 년을 돌보아 주지 못한 동생이오.'
'어떻게 사는 지는 보셔야….'
'이미 피에 잠긴 담가장을 떠날 때부터 원수를 갚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겠다고 결심했었소. 그 아이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일거요.'
'휴우… 동생은 당신이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을 거예요. 아니면 소식이라도 주시던가….'

소주(蘇州) 담가장이 있는 곳이다. 담천의는 송하령의 설득에도 자신의 본가를 들르지 않았다. 담가장 위에 묻힌 부모의 무덤도 찾아가지 않았다. 달려가면 반 시진 내에 도착할 담가장이지만 그는 애써 외면했다.

피에 잠긴 담가장의 모습은 아직 그의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핏물을 뒤집어 쓴 채 눈이 감기지 않은 부모님의 시신은 불쑥불쑥 그를 깊은 잠에서 깨어나게 했다. 어차피 가주(家主)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한 지금에 와서 본가에 갈 면목이 없는 것이다.

그 역시 부모님의 원수를 갚는다면 아마 떳떳하게 본가에 갈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돌보지 못한 동생에게 떳떳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소주를 떠나 금릉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는 강남에 와서 반드시 들러야 할 곳이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었다. 자신이 무공을 익히던 그 초옥, 그리고 자신을 키워주고 무공을 익히게 했던 바로 중년의 금포인… 자신의 사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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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찾을 수 없다는 보고입니다."


좌후범(佐厚範)은 자신의 실수하지 않았음을 강조했다.

"전연부가 말한 삼합파(三合派) 근처에는 움막 같은 것도, 약초 캐는 노인은커녕 아예 사냥꾼조차 볼 수 없었다는 전언입니다."

"움막의 흔적조차 없었단 말인가?"

"물론입니다. 삼합파는 인적이 매우 드문 곳입니다. 더구나 전연부가 말한 곳은 물살이 빨라 혼자 노를 젓는 작은 배로는 들어갈 수가 없는 곳이고, 최소한 두 명 정도가 노를 저어야만 접근이 가능한 곳이라 합니다."

연병문의 입술이 바싹 말라가고 있었다. 그렇다면 분명 전연부가 거짓 보고를 한 셈이다.

"샅샅이 찾아보았는가?"

"이틀 동안 삼합파 전체를 뒤졌지만 아무런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좌후범의 태도는 자신에 차 있었다. 자칫하면 자신의 목줄이 날아갈 판이었다. 다행스럽게 보고는 전과 다름없이 자신의 예상과 같았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탁자 위에는 보내 온 전서(傳書)가 놓여져 있었다.

"으음…."

연병문의 입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렀다. 좌후범의 태도가 확신해 차 있는 반면에 연병문의 얼굴에는 의혹과 근심이 짙어지고 있었다.

"헌데 어떻게 전연부가 그 사건의 내막을 본 사람처럼 말할 수 있었을까?"

문제는 그것이었다. 전연부가 했던 말들은 그러한 사건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으면 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조사한 결과 분명 전연부는 거짓 보고를 했다. 초옥도 없었고, 약초 캐는 노인 따위도 없었다.

이것이 더 큰 문제였다. 약초 캐는 노인이 있었다면 입을 막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약초 캐는 노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전연부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누가 말해주었을까? 그리고 왜 전연부는 그 누군가를 말하지 않고 아예 존재하지도 않는 약초 캐는 노인을 들먹이며 말했을까?

(분명 무언가 있다!)

연병문은 등골을 타고 오르는 서늘한 기운을 느꼈다. 본능적으로 위험이 감지되고 있었다.

"그들은?"

전연부와 조궁을 말함이다.

"아직 정해진 숙소에서 조용히 쉬고 있습니다.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기 때문에 빠져 나갈 수 없습니다."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좌후범의 태도였다. 연병문은 잠시 눈을 감고 생각을 정리했다.

(누굴까? 누가 전연부에게 말을 해주었을까? 더구나 전연부는 무슨 의도로 그러한 말을 내게 흘렸던 것일까? 더구나 상대부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짓말을 했을까? 존재하지도 않는 약초 캐는 노인에게 치료까지 받고 떠났다는….)

의혹이 꼬리를 이었다. 분명 전연부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한 것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의도적이 아니었다면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사흘 동안 그들이 만난 인물들은?"

"함태감께서 어제 불러 갔다 온 일 외에는 만난 사람이 없습니다."

"함태감께서…?"

연병문은 입맛을 다셨다. 함태감이 불러서 갔다 왔다면 상대부의 일까지 보고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허위 보고라면 도망갈 궁리를 했을 것이고 다른 움직임을 보였어야 당연했다. 하지만 조용히 쉬고 있다니… 전연부는 무슨 꿍꿍이를 가진 것일까?

(전연부는 정말 뭔가 알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그에게 정보를 준 누군가가 그들 배후에 있어 내 존재를 확인하려 하는 것일까?)

마치 창기의 음부에서 피어나는 음습한 냄새가 맡아지는 듯했다. 어둠 속에 있던 무언가가 자신의 목줄을 노리고 달려드는 듯한 답답함이 느껴졌다. 노련한 전연부가 허위 보고를 해놓고 아직 도망가지 않고 있다는 것은 뭔가 믿는 구석이 있어서다.

(함태감인가?)

의혹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병문을 괴롭혔다. 확인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무래도 함태감께 다녀와야겠어."

"그들은…."

연병문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의 서탁으로 가 이것저것 서류를 집어 들었다. 무언가 보고할 거리가 필요했다. 이 일은 슬쩍 지나가는 식으로 물어보면 될 것이었다.

"잠시 내버려 둬. 철저하게 감시만 하고… 함태감께 다녀 온 뒤에 결정하기로 하지."

당장이라도 허위 보고했다는 명목으로 일단 잡아 들여 치도곤을 치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누가 그들에게 정보를 주었는지 반드시 알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먼저 움직이면 당할 수 있었다. 자신이 모르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내야 했다.

그래야 대처할 수 있다. 최악의 상황이라도 최소한 자신의 몸을 빼낼 수 있다. 그는 서둘러 서류를 챙기고는 거처를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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