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띠를 두른 일명 '럭셔리 초밥'입니다.이효연
올 여름은 홍콩에서 처음 맞는 여름이었습니다.
푹푹 찌는 더위는 물론이고 숨이 막힐 듯 높은 습도 때문에 집에서 불을 이용해 요리를 한다는 것은 정말 힘겨웠습니다. 그렇다고 매일같이 나가서 외식을 할 수도 없기에 한동안은 백화점 식품 코너에서 테이크 아웃을 해서 식사를 해결했습니다. 그럴 때면 입맛을 살려줄 수 있는 새콤 달콤한 초밥이 적격이었지요.
갖가지 초밥이 섞여 있는 70불(약 9천원)짜리 모듬세트 한 팩이면 남편과 저, 그리고 딸아이 세 식구가 먹기에 딱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일본식 초밥 포장이 참으로 얄궂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참치 초밥 2개, 연어 초밥 2개, 장어 초밥 2개, 이렇게 한 가지 재료의 초밥이 달랑 2개씩만 들어 있으니 말입니다. 아니 두 개씩이라도 차라리 좋습니다. 남편과 둘이서 사이좋게 하나씩 나누어 먹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생새우, 장어, 성게알, 연어알 등이 올려지고 오이로 띠를 두른 럭셔리 초밥은 달랑 하나씩밖에 안 들어 있어서 젓가락 쥔 손을 참으로 무안하고 난감하게 만듭니다. 대개 일식집에서 나오는 초밥도 그렇지요.
일본 요리하면 맛보다는 눈으로 먼저 즐긴다는 요리 아닙니까? 눈으로 보면 볼수록 몹시나 먹음직스러워 보여, 생각 같아서는 단숨에 입에 넣어버리고 싶지만, 마주 앉은 사람을 생각하면 양보를 하는 것이 미덕이란 생각에 망설이게 되는 거지요.
부부 사이에도 마찬가지지요. 내 입이 즐겁기보다는 남편이, 혹은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양보를 하다 보면 결국 늘 나중에 남는 것은 그 문제의 '럭셔리 초밥'들입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가장 비싼 재료의 맛있는 초밥들이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는 겁니다.
"어! 맛있는 연어알 초밥을 남겼네. 얼른 먹어."
"아니야. 나 알 종류 별로 안 좋아하는 걸, 자기가 먹어요."
"알을 안 좋아한다구? 거짓말 하지 마. 명란젓은 그렇게 좋아하면서..."
이런 실랑이를 몇 번씩이나 하고 난 후에야 접시가 비워지는 일은 올 여름 초밥을 사다 먹을 때 마다 늘상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문득 든 생각은, '오이띠 두른 럭셔리 초밥'도 사실 알고 보면 별 게 아니란 것이었습니다. 사실 연어알이나 장어같은 비싼 재료가 아니더라도 일단 오이로 띠를 둘러 놓으면 모양새가 좋아 보여서 어떤 재료를 올려도 맛있어 보이게 마련이거든요.
그렇다면 집에서 직접 한 번 만들어서 푸짐하게 먹어보자는 생각에서 '오이 참치 초밥'을 만들어 봤는데 재료비도 저렴하게 들고 맛도 괜찮았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겨우 초밥 한 덩이 두고 '아내 먼저 남편 먼저 '하는 남보기 낯간지러운 양보를 더 이상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얼마 전 백화점 세일에서 사다 둔 참치 캔과 냉장고 속에 있던 오이 한 개를 가지고 '띠 두른 오이 참치 초밥'을 만들어 봤습니다. 재료비는 천 원 남짓 나왔던 것 같습니다.
오이띠 두른 참치 초밥
재료
A.
오이 1개
참치캔 1개
양파 1/4개(곱게 다져서)
다진 오이피클 혹은 피망 (2큰술)
소금, 후추 약간
마요네즈 2큰술
식촛물(소금 1/2 작은술+식초 2큰술+ 설탕 1큰술)
B.
밥 2공기
식초 1큰술
소금 약간
설탕 1큰술
참기름 1작은술
1. 오이를 필러로 얇게 저며낸 후 소금, 설탕, 식초에 재워둡니다. 아주 얇게 벗겨 내야 나중에 띠를 두를 때 착착 잘 달라 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