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락을 홀태에 끼워 당기자 기우뚱

[가을걷이 5]홀태에 벼를 훑다

등록 2005.10.20 21:38수정 2005.10.20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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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홀태로 벼를 훑었던 그때가 그립다.

홀태로 벼를 훑었던 그때가 그립다. ⓒ 김규환

산골짜기 논은 돌에 벼를 때려 탈곡을 하지만 조금 골짜기에서 아랫녘으로 내려온 비까리와 감남쟁이 논은 그네라고 하는 홀태를 지고 간다. 때론 그네를 고정한 틀을 떼어놓고 쇠만 가져가 앉아서 훑을 때도 있었다. 무게가 가벼워 한 사람이 지고 다니기에 벅찰 일이 없다.


참빗 모양이 아니라 여자들이 쓰는 커다란 빗같이 생긴 쇠 빗을 나무틀에 고정한 형태다. 빗살은 벼이삭을 잡아당기는 순간 자연스럽게 모아주도록 평평하기보다 약간은 바깥쪽으로 둥그렇게 굽어있다.

웬만한 거리라면 다발을 묶어 서너 마지기 수확량을 온 가족이 동원되어 좁은 들길을 따라 며칠이고 수백 번 여자들은 머리에 이고 남자들은 지게에 지고 왔지만 그 시절 재래종 일반벼는 길이가 사람 키에 못지않고 무게도 보통이 아니었다.

그 수고를 덜기 위해 평일인 오늘은 아버지와 나, 엄마만 논으로 홀태를 지고 갔다. 벼만 훑어오고 짚은 단단히 묶어 가지런히 모아두고 한가한 겨울날을 골라 며칠간 오가면 되었다. 집에 가져와봐야 보리를 갈아야 하므로 언제 탈곡을 할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a 벼를 낫으로 베어 닷새는 말려야 하는데 꼭 한번 뒤집어줘야 했으니 일이 더 많았다.

벼를 낫으로 베어 닷새는 말려야 하는데 꼭 한번 뒤집어줘야 했으니 일이 더 많았다. ⓒ 김규환

산골짜기 다락논에 비견할 바 아닌 엄청난 양이기에 뒤집어서 말린 볏단을 묶는다. 나는 뛰듯 두 다발씩을 어깨에 메고 가까운 곳부터 옮겼다. 논에서 논으로 옮기는데도 아버지는 지게를 써서 먼 쪽부터 져다 나른다.

싸늘하지만 몇 번 옮기고 나니 이마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찰벼라 까끄라기가 목덜미를 타고 기어들어간다. 옷을 벗어 보랏빛 가시를 빼느라 잠시 쉴 뿐 오전 내내 벼를 한곳에 모아나갔다. 논바닥엔 벌써 벼 밑동에서 파란 싹이 돋았다. 그 사이로 독새기 풀이 이끼처럼 자라고 논두렁엔 각시풀이 너울댄다.


덕석(멍석)이 깔린 홀태 주위로 낟가리가 높게 쌓였다. 태가 올려진 그네는 물꼬 주변에서 돌 한 무더기를 가져와 다리를 단단히 고정하고 뒤쪽엔 버팀목이 하나 지탱하고 있다.

a 홀태는 돌이나 개상, 탯돌 다음이었다.

홀태는 돌이나 개상, 탯돌 다음이었다. ⓒ 김규환

볏단을 몇 개 풀었다.


"아부지, 한번 훑어보끄라우?"
"니까짓 것이 뭔 심이 있다고."
"아녀라우, 작년에 엄니랑 같이 해본께 잘 되든디…."
"야 이놈아 잔소리 말고 한 깍지씩 뗘 주기나 혀."

홀태가 하나였던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일이 우선인지라 아버지 말씀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서너 움큼씩 벼이삭을 홀쳐 묶은 한 단을 열댓 번 쯤 나눠서 떼어 준다. 그네 앞에 있던 어머니는 짝이 건네준 벼를 받아 널찍하게 고루 펴고 한 발을 앞쪽으로 내딛고 날에 끼운다.

헝클어진 머릿결처럼 흐트러진 벼를 한번 흔들어주고 건너편으로 가지런히 던지자 벼 모가지가 딱 걸렸다. 뒷발로 지탱하여 힘껏 몸 쪽으로 당겨준다. 순간 힘을 줘 세차게 잡아채자 발밑으로 "후두둑!"

연거푸 당겼다가 더 꼭 쥐고 넘겨서는 또 당기니 벼가 쏟아졌다. 한 번 두 번 거듭함에 따라 바닥으로 떨어지는 낱알 개수가 차차 줄어든다. 서너 번째부터는 동시동작으로 모았다가 다시 쭉 펴서 뒤집어가지고 훑어낸다. 몸을 구부렸다 펴기를 반복하였다.

a 이 각시풀로 여동생 댕기를 따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이 각시풀로 여동생 댕기를 따주면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 김규환

짚이 쌓이자 거들던 나는 두어 줌을 어머니가 들기 편하게 떼어놓고 얼른 몸을 움직여 짚단을 묶어서 멀찌감치 던져 놓고 돌아왔다. 다시 지루한 동작을 계속해야 한다. 아버지는 마저 볏단을 모아놓고 어머니와 교대를 한다. 이젠 어머니가 조수가 되었다. 나는 짚단을 묶는 처지로 떨어졌다.

이른 새참을 먹을 때 나는 어떻게든 한번이라도 해보려고 벼르고 있었다. 키가 작은 탓에 어른들이 하던 대로 펴서 넣었다. 버티는 힘이 없고 힘 조절을 못한 탓인가. 홀태 날에 낀 채로 사정없이 당기는 바람에 그네가 내 앞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야, 안 돼야. 글다 다친당께. 명년부터 해."
"딱 한번만 해보고라우."
"서둘러야 헌다. 후딱 와서 밥이나 묵어."

a 메벼와 찰벼가 만나 똘벼가 생겼다. 까끄라기가 있는 걸로 보아 찰벼에 가깝다.

메벼와 찰벼가 만나 똘벼가 생겼다. 까끄라기가 있는 걸로 보아 찰벼에 가깝다. ⓒ 김규환

갈퀴로 검불과 나락을 분리하여 한쪽으로 밀쳐놓았다. 홀태로 훑은 벼는 모가지만 떨어졌을 뿐 이삭귀와 벼가 함께 붙어 있었다. 짧아진 해가 아쉽다. 여섯시를 넘긴 시각 힘은 떨어지고 1차 거둔 벼를 아버지만 먼저 지고 집으로 떠났다.

힘도 떨어지고 집중력도 없어져 건성으로 한 깍지를 떼어 드렸다.

"아이가~째까씩 뗘줘야제."
"인자 집에 가믄 안 되끄라우?"
"그려 녈 해야쓰겄다. 우리도 인차 집에 가자."

어머니와 나는 하던 일을 마저 하고 뒤따라갔다. 다시 가마니를 지고 오셔야 하는 아버지 대신 쇠죽을 쑤고 갈치 세 토막을 구워 맛있는 저녁밥을 먹었다.

a 벼 밑동에 며칠만 지나면 이렇게 다시 쏙쏙 솟아나니 어릴 적 나는 비닐을 씌우면 한번 더 수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벼 밑동에 며칠만 지나면 이렇게 다시 쏙쏙 솟아나니 어릴 적 나는 비닐을 씌우면 한번 더 수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욕심을 부리기도 했다. ⓒ 김규환

덧붙이는 글 | 귀향하여 산채원을 만들면 이 방식대로 벼를 수확할 생각입니다.

덧붙이는 글 귀향하여 산채원을 만들면 이 방식대로 벼를 수확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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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환은 서울생활을 접고 빨치산의 고장-화순에서 '백아산의 메아리'를 들으며 살고 있습니다. 6, 70년대 고향 이야기와 삶의 뿌리를 캐는 글을 쓰다가 2006년 귀향하고 말았지요. 200가지 산나물을 깊은 산속에 자연 그대로 심어 산나물 천지 <산채원>을 만들고 있답니다.도시 이웃과 나누려 합니다. cafe.daum.net/sanchaewon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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