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가야, 그 떡볶이 맛있나?"

<음식사냥 맛사냥 52> 쫄깃쫄깃 새콤달콤 아이들 간식 '떡볶이'

등록 2005.11.07 16:23수정 2005.11.08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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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추운 날엔 떡볶이를 먹자 ⓒ 이종찬

떡볶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아빠! 천 원만 주면 안 돼?"
"왜? 오늘 용돈은 아침에 줬잖아."
"저기, 그 아줌마 떡볶이 가게 문 열었던데?"
"자식. 그럼 떡볶이가 먹고 싶다고 말해야지. 천 원만 하면 돼?"
"그 아줌마가 빛나랑 나랑 단골이라고 천 원 주면 이 천원어치쯤 줘."

드디어 아이들이 즐겨 찾는 떡볶이의 계절이 돌아왔다. 떡볶이는 쫄깃쫄깃하면서도 혓바닥에 착착 감기는 새콤달콤한 맛이 그만이다. 떡볶이는 특별한 손재주나 여러 가지 재료가 없어도 누구나 집에서 쉬이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이 장점이다. 그래서 아이 어른 할 것없이 수많은 사람들이 떡볶이를 즐겨 먹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른들 술안주로도 괜찮고 아이들 간식으로도 좋은 떡볶이는 찬 바람이 부는 늦가을부터 봄기운이 살랑대는 초봄까지가 제철이라고 할 수 있다. 하긴, 요즈음에야 장터 골목에 가면 계절에 관계없이 떡볶이를 쉬이 사먹을 수 있다. 하지만 떡볶이는 땀이 삐질삐질 나는 여름철보다는 아무래도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 들 때 먹어야 제맛이 난다.

특히, 아침 저녁으로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 못지 않게 춥게 느껴지는 요즈음 같은 늦가을, 길거리에 늘어선 포장마차에 서서 동무들과 남의 흉도 적당히 보아가며 찍어먹는 떡볶이의 맛은 더욱 감칠맛이 난다. 찬바람에 얼얼한 입속을 순식간에 매콤하고도 달착지근하게 파고 드는 그 떡볶이의 맛은 어찌 보면 가난한 서민들의 눈물맛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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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의 가장 큰 재료 가래떡 ⓒ 이종찬

아무리 시대가 바뀌어도 떡볶이는 떡볶이다

요즈음 들어 떡볶이의 종류도 참 많아졌다. 예로부터 대부분 사람들이 즐겨 먹어왔던 떡볶이는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나는 고추장 떡볶이였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인스턴트 식품에 길들여진 아이들의 입맛에 맞춘 야채떡볶이, 치즈떡볶이는 물론 대학생들이 즐겨찾는 해물떡볶이, 불고기떡볶기, 부대떡볶기 등 별의별 희한한 이름을 가진 떡볶이가 즐비하다.

바야흐로 다양성이 존중되는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떡볶이도 이제 그저 옛 모습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화려한 변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다양성이 존중되고 시대가 변한다 해도 떡볶이는 떡볶이일 뿐이다. 즉, 겉치레만 조금씩 달라질 뿐 떡볶이 본래의 모습이나 맛이 뿌리째 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 떡볶이란 이름 앞에 아무리 다양한 수식어가 붙어도 떡볶이란 본래의 이름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만드는 방법이나 재료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다만, 21세기에 접어들면서 여러 계층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떡볶이에 들어가는 재료를 조금씩 달리하고, 떡볶이 앞에 수식어를 덧붙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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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후 간식 떡볶이 한 그릇 어때요? ⓒ 이종찬

"언가야, 그 떡볶이 맛있나?"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도 학교 앞 구멍가게에서 떡볶이를 팔았다. 하지만 꽁보리밥 도시락조차도 배부르게 먹지 못했던 그 가난한 시절에 떡볶이를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것은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나와 동무들은 학교를 마치면 떡볶이를 파는 구멍가게가 있는 옆 쪽은 아예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신작로 앞만 바라보며 그대로 내달렸다.

오후 3시쯤 학교를 마치고 나면 그렇지 않아도 배가 고픈데, 맛난 냄새가 코끝을 찌르는 구멍가게 쪽을 쳐다봤자 그 구멍가게 옆에 매인 똥개처럼 침만 질질 흘릴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 떡볶이를 사먹는 부잣집 형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언가(형)야, 그 떡볶이 맛있나?"하며 아무리 침을 삼켜도 "아나(자), 니도 하나 무라(먹어라)"는 소리 한번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근데, 그때 학교 구멍가게 앞에서 팔았던 그 떡볶이는 지금의 떡볶이가 아니었다. 그 떡볶이는 팥죽 같은 걸쭉한 국물에 어른 손가락 굵기 정도의 가래떡이 촘촘촘 박혀 있었다. 어쩌다 가뭄에 콩 나듯 어머니께서 집에서 만들어 주시던 그 떡볶이도 쌀알이 수없이 박혀있는 걸쭉한 팥죽에 가래떡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그랬다. 어릴 때 나는 바알간 고추장에 버무린 그 떡볶이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매콤하면서도 새콤달콤한 그 고추장 떡볶이를 처음 먹어본 것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던가 그랬다. 그때 동무들과 함께 마산 부림시장 한 귀퉁이에서 먹은 그 떡볶이는 정말 눈물나도록 맵고도 맛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무리 그때 기억을 곰곰이 떠올리며 떡볶이를 먹어도 그때 그 아련한 추억의 맛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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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는 뭐니뭐니 해도 고추장 떡볶이가 제맛이다 ⓒ 이종찬

"하여튼 저 먹순이들 땜에 내가 못 살아"

"뭐가 이렇게 많아?"
"오늘, 그 아줌마가 집에 일이 생겨서 빨리 들어가야 한다며 남아 있는 떡볶이를 몽땅 다 싸 줬어. 아빠도 나중에 막걸리 마실 때 이걸로 안주 해."
"자식. 아빤 달착지근한 거는 별로야. 그러니까 너희들이나 많이 먹어."
"너무 많아."
"그러면 남겨두었다가 내일 또 먹어."

큰딸 푸름이와 작은 딸 빛나는 떡볶이를 참 좋아했다. 특히 찬바람이 부는 요즈음 같은 때가 돌아오면 아예 그 아줌마네 떡볶이를 사서 저녁을 때웠다. 또 주말이 다가오면 김해 장유에 사는 저희 이모에게 전화를 걸어 "이모, 떡볶이가 먹고 싶어"라거나 저희들 외할머니에게 빌붙어 떡볶이를 만들어 달라고 졸라대기 일쑤였다.

하루는 백화점에 다니는 아내가 매장을 마칠 시간이 훨씬 더 남아 있는데도 불구하고 부랴부랴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의 손에는 무슨 반찬재료가 잔뜩 들려 있었다. 나는 갑자기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싶어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아내를 바라보았다. 누구 생일도 아니고, 대체 무슨 일이지?

"하여튼 저 먹순이들 땜에 내가 못 살아."
"아니, 왜?"
"떡볶이 해내라고 난리굿을 피우는데 난들 어떡해. 급히 매장을 옆 가게 언니에게 부탁하고 달려오는 수밖에."
"나한테 시키지?"
"떡볶이는 만들 줄 모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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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한 가을 저녁, 떡볶이가 놓인 밥상 ⓒ 이종찬

"우린 이제 누구랑 살아? 떡볶이 안 먹으면 되지"

그날, 아내는 주방에서 30여 분쯤 뚝딱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발가스럼한 떡볶이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김이 무럭무럭 피어오르는 떡볶이를 큰 유리접시에 가득 담아 상에 차려내더니, 푸름이와 빛나에게 "앞으로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오마이뉴스>에 맛 기사 쓰는 아빠한테 해달라 그래. 알았지?" 하면서 꿀밤 한 대씩을 보기 좋게 먹였다.

아내가 떡볶이를 만드는 방법은 아주 쉽고 간단했다. 그저 프라이팬에 가래떡을 넣고 물을 부어 끓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고추장과 물엿, 어묵, 삶은 계란 껍질 깐 것, 양배추, 양파, 대파, 피망 등을 넣고 주걱으로 몇 번 휘저었다. 그러자 이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맛깔스러운 떡볶이가 프라이팬에 가득 만들어졌다.

한 가지 독특한 점은 프라이팬에 가래떡을 올려 삶을 때 우윳빛처럼 허연 쌀뜨물을 가득 붓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어묵을 그냥 쓰지 않고 물에 살짝 데친 뒤 쓴다는 거였다. 아내표 떡볶이의 맛의 비결은 바로 그 쌀뜨물과 살짝 데친 어묵에 있었다. 내가 서둘러 백화점에 다시 나가는 아내에게 그렇게 귀띔하자 "역시" 하더니 "앞으로 잘 부탁해요"라는 말을 남긴 채 총총총 집을 빠져 나갔다.

"아빠! 이제부터 떡볶이가 먹고 싶으면 아빠한테 말하면 돼?"
"하여튼 요 녀석들 땜에 아빠도 못 살아."
"이제 큰일 났네?"
"왜?"
"엄마도 못살고, 아빠도 못 살면 우린 이제 누구랑 살아?"
"떡볶이 안 먹으면 되지."


아이들 좋아하는 떡볶이 요렇게 만드세요
라면사리에 케찹 약간 넣으면 더욱 맛깔나

▲ 떡볶이
ⓒ이종찬

재료/ 가래떡, 쌀뜨물, 어묵, 달걀, 양배추, 깻잎, 피망, 양파, 마늘, 대파, 고추장, 고춧가루, 물엿, 흑설탕, 소금.

1. 프라이팬에 올린 가래떡(10cm 크기로 미리 잘라 둔 것)이 물에 잠길 정도로 쌀뜨물을 부은 뒤 센불에서 끓인다.

2. 냄비에 물을 붓고 달걀을 넣어 굵은 소금을 뿌린 뒤 센불에서 포옥 삶아 미리 껍질을 벗겨둔다.

3. 양배추와 깻잎, 양파는 0.5cm 넓이로 채썰고, 피망은 반으로 갈라 씨를 빼낸 뒤 어슷썰기 한다. 이 때 대파도 어슷썰기하고 마늘은 다진다.

4. 프라이팬에 담긴 가래떡이 익어가기 시작하면 고추장과 물엿, 흑설탕을 푼 뒤 중간불에서 끓인다. 이때 국물이 너무 졸아들었다 싶으면 쌀뜨물을 조금 더 붓는다.

5. 양배추와 깻잎, 양파, 피망, 대파, 마늘을 넣고 끓이다가 어묵과 껍질 벗긴 달걀을 넣고 약한불에서 끓인다.

6. 다 끓었다 싶으면 고춧가루를 뿌린 뒤 소금을 뿌려 간을 맞추어 상에 차려낸다.

※맛 더하기/ 쫄깃한 떡볶이의 맛은 좋은 고추장에 있다. 떡볶이가 너무 맵거나 맛이 별로 없다고 느껴질 땐 케찹을 살짝 뿌리면 제맛이 난다. 이때 미리 삶아놓은 라면사리를 넣어도 아이들이 참 좋아한다. / 이종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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