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여우가 섹스하는 게 이상하지 않나?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사회 일상의 성 정치학> 낸 여성주의자 정희진

등록 2005.11.15 17:28수정 2005.11.1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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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기서 여성주의자 정희진(38)에 대한 인칭대명사는 '그녀'가 아닌 '그'로 쓰겠다. '생물학적인 성(sex)'에 의한 표기야 당연히 '그녀'가 되겠지만 '사회적 성(젠더, gender)'의 개념에서 보면 가치중립적 의미의 '그'가 더 적당할 듯싶다.

물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남성'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칭대명사에 대한 의미 캐기는 이쯤에서 접고, 다만 '정희진이 말하는 여성주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는 '상징적' 표현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각설하고, 그가 책을 냈다. 저자를 포함, 아무도 맘에 들어 하지 않는 제목,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펴냄)이다. 책 제목을 놓고 '도전은 아무나 하나?' '너만 도전 하냐?' '너무 도전적이다, 하나도 도전적이지 않다' 등등의 반응에서부터 '페미니즘이라는 말도 무서운데, 거기다 도전이라는 말까지 붙이면 사람들이 더 싫어하지 않을까?'하는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페미니즘의 도전>이라는 제목의 의미가, "페미니즘이 한국사회에 도전하는 것"이라며, '도전하다'의 주어가 정희진이 아니라 페미니즘이라고 누차 강조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은 '국가대표 페미니스트'가 아니며, 이 책을 포함 자신이 쓰는 모든 글들은 여성주의 선배, 동료들의 투쟁과 노력에 빚지고 있다고 했다.

애초 서울 신촌에 있는 서강대 캠퍼스에서 낙엽 떨어지는 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깔고 하려던 그와의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인터뷰는 갑자기 쌀쌀해진 11월 9일의 날씨가 시샘해서 결국 부근 찻집으로 옮겨 소음 속에서 세 시간 넘게 이루어졌다.

여성주의는 협상적 말하기

정희진은 얼마 전 친구에게 예전에 가정폭력에 관한 책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 - 가정폭력과 여성인권>(또하나의문화)을 낼 때,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의 반밖에 쓰지 못했노라고,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노라고 고백했다.

그런데 친구의 반응은 '정희진도 못 쓰는 얘기가 있느냐', '지금까지의 이야기도 부담스러운데, 얼마나 더 떠들어야 직성이 풀리느냐'는 반응을 보이더란다.

정희진이 살짝 충격을 받았음은 당연지사. 평소 여성주의를 잘 이해하던 친구가 그런 지겹다(?)는 반응을 보였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그래서 정희진은 "하물며 '보통' 사람들은?"하고는 절망했다고.

그러나 정희진은 기지촌 여성운동가 김연자가 쓴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 분 전까지 악을 쓰다>(삼인 펴냄)를 읽고 나서, 자기도 자신의 말에 지겨워하던 바로 그 친구가 되어있음을 발견했다. 저자의 치열한 삶에 충격 받은 나머지 순간적으로 모든 발화행위는 '협상적 말하기'라는 사실을 잊고 저자가 맘껏 자기 이야기를 다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친구가 정희진에게 했던 '타자화(他者化)'를, 정희진도 이 책의 지은이에게 했던 것이다.

"여성주의는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편안할 수는 없습니다. 다른 렌즈를 착용했을 때 눈의 이물감은 어쩔 수 없지요. 여성주의 뿐만이 아닙니다. 기존의 지배규범, '상식'에 도전하는 모든 새로운 언어는 다 그렇다고 봅니다. 그러나 여성주의는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지지해줍니다. 다른 의미의 쾌락을 선사하지요"

'눈이 아름답다'는 말에 담긴 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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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여성주의 시각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정희진은 자기 수업에서 있었던 일화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첫 강의 시간, 교수나 학생 모두 상대방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남학생이 갑자기 "선생님, 눈이 아름다우십니다!"라고 하더란다. 이에 정희진은 "고맙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라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상식적인 말. 그러나 이어지는 그의 말은 당사자인 그 학생이나 이 글의 독자들의 의표를 찌를 만하다.

"네 말은 성희롱은 아니지만, 성별화(gendered)된 용어다. 너는 지금 나를 '선생'이 아니라 '여자'로 봤다. 내가 남자 선생이라면 '강의를 잘 한다', '실력이 있다' 이렇게 말하지, '눈이 아름답다'라고 말했겠니?"

예상치 못한 지적(전복!)을 경험한 남학생이 "제 진심은 그런 게 아니고, 여성이라는 의식은 눈곱만큼도 하지 않았고… 그저 느낀 대로 한 말"이라며 진정성을 믿어달라고 하자, 정희진은 한번 더 의표를 찌른다.

"바로 그게 문제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가치 기준이 남성의 처지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이 점이 바로 남성에게 여성주의가 필요한 이유다. '의식화'로는 부족하다. 무의식을 의식화해야 한다."

정희진은, 흔히 페미니즘 하면 '남자들과 싸우려고만 하는 많이 배운 여자들의 과격한 주장'쯤으로 치부하는 사회의 편견에 맞서 여성의 눈으로 인간과 세계를 다시 해석하고, 여성의 목소리로 세상을 재구성해보자고 말한다. <페미니즘의 도전>, 패러다임 전환이 될 만한 책이다.

남자는 질그릇, 여자는 본차이나!

"한국사회에는 여러 개의 현실이 있습니다. 여성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성적 소수자, 장애인, 학력이 '낮은' 사람 등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현실을 보게 되죠. 여성의 시각으로 한국사회를 보면 분명 다르게 보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모든 여성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지요. 이 책도 '서울 출신의 30대 비장애인 이성애자' 여성의 시선일 뿐입니다."

정희진은 이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 그동안 논란이 됐던 여러 쟁점과 사건들을 여성의 시각에서 독특하게 재해석한다. 사회운동, 진보, 군 가산제, 퍼킹 유에스에이(fucking USA), 스와핑, 성 판매 여성들의 시위, 위안부 누드 사건에서 박근혜 패러디까지…….

"이제까지 여성은 인식 주체가 아니었습니다. 단지 말해지는 대상, 남자 갈비뼈 한 조각 정도였지요. 그러나 남성의 세계관과 경험만을 보편적인 인간의 역사로 만들려는 것은 남성에게도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남성의 삶이 인간 경험의 일부이듯,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의 경험도 인간 역사의 일부라는 것이 제 주장의 핵심입니다."

이 책의 재미있는 삽화 두 가지.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실제 있었던 일인데, 5학년 남자 어린이가 별 악의 없이, 또래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하느님이 나는 진흙으로 직접 만드시고, 여자는 내 갈비뼈로 만든 거 알아?" 그러자 두 명의 여자 아이들 말이 걸작이다. "그래, 네 말이 맞아, 근데 누가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니?", "어, 그러니? 그럼, 너는 질그릇이고 나는 본 차이나(Bone China)네!"

그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자 어린이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여자 아이들의 재치 있는 대응대로,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성주의는 그러한 '다른 목소리'가 세상을 풍요롭게 만들고, 여성도 남성도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그는 또, 가부장제 사회의 관습대로 남자는 늑대고 여자는 여우라면, 늑대는 늑대끼리, 여우는 여우끼리 사랑하고 섹스 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하고 질문한다. 늑대랑 여우랑 섹스를 하다니! 이야말로 하느님의 섭리를 어긴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파괴하는, 너무나 '변태'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늑대'와 '여우'가 만나 가정을 꾸리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며, 늑대와 여우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토끼'라고 부른다. 한술 더 떠서 늑대, 여우, 토끼가 함께 살면 '비둘기 가족'이다 ! 인간이 인간이기 이전에, 남성(늑대)과 여성(여우)이어야 하는 현실이 문제라는 것이다.

정희진은 "여성이 피해 받고 있다" 식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남자들과 싸워서 그들을 물리치고 세상을 되찾자고 부르짖지도 않는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기존의 인식 체계를 상대화하고, 다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고 마음을 열고 머리를 열어놓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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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권우성

'차별'이 되면 안 되는 '차이'는 누가 정하나?

정희진은 흔히 이야기되는, "차이가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 식의 사고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제가 문제라는 것이다.

정희진은 누구인가

정희진은 스스로를 ‘비정규직 노동자’라고 소개하는 여성학자다. 내내 운동권이었던 그는 6년 만에 겨우(?) 대학을 졸업하고 여성운동단체에서 상근자로 일하다가 서른 살 넘어 대학원에 진학했다.

대학, 노동조합, 정부기관, 시민단체 등에서 인권, 평화, 폭력, 사회운동, 상담 심리, 지구화, 탈식민주의 등 다양한 주제를 여성주의 시각에서 강의한다. 복학생들과 사이가 좋다는 그는 지금은 국가안보와 젠더를 주제로 여성학 박사논문을 쓰고 있다.

그는 한겨레신문에 ‘정희진의 책읽기’, ‘야, 한국사회’ 코너에 고정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따뜻하면서도 치열한 그의 글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인간관계의 심리학과 정치학에 관심이 많은 그는 <저는 오늘 꽃을 받았어요-가정폭력과 여성인권>을 비롯, <한국여성인권운동사>와 <성폭력을 다시 쓴다-객관성, 여성운동, 인권> 등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럼 그 '차이'는 누가 정하나요? 바로 그게 문젭니다. '차이'의 기준을 결정하는 건 대개 남성, 비장애인, 백인 등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죠. 안경 쓴 사람을 장애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휠체어를 탄 사람은 장애인이라고 하지요. 장애인임과 아님은 누가 정하는 것입니까? 이제까지는 남성과 여성의 몸의 차이를 남성이 규정해왔지요. 여성의 출산 능력이 남성의 눈에서 차이로 정의되어 왔기 때문에, '모성 보호'라고 하는 겁니다. 모성이 왜 보호 대상인가요? 모성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남성이 정한 기준을 정상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가부장제지요"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별,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고 지적하는 정희진은, 중심과 주변의 이분법 속에서 자신을 당연한 주류 혹은 주변과 동일시하지 말고 자기 내부의 타자성을 찾아내어 다른 사회적 약자들과 소통, 연대하자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남성과 여성 각자 여성주의를 어떻게 받아들이면 되느냐고 물었더니, "남성은 자신의 경험이 세상 전부가 아니며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부터, 여성은 자기 상황이 개인적 피해나 억압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꿈꿀 수 있는 지적 자원이자 상상력의 근거라고 달리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요?"하고 말한다.

남성의 삶과 기존의 언어는 일치하지만 여성의 경험과 기존 언어는 불일치하기 때문에, 여성주의는 늘 '딜레마'와 싸우는 것이라고 말하는 정희진은 여전히 할 말이 많다. 정희진이 지금까지 해온 발언들은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페미니즘의 도전 - 한국 사회 일상의 성정치학, 개정판

정희진 지음,
교양인,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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