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역사소설> 흐르는 강 138

대원군 집정기 무장개화세력의 봉기, 그리고 다시 쓰는 조선의 역사!

등록 2005.11.14 08:21수정 2005.11.14 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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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부터 이경까지 내리던 비는 이제 잦아들었다. 아직 검은 구름이 머물고 빗기운이 완연했으나 행보에는 무리가 없어 보였다. 아침 일찍부터 도승지 김병지와 좌우승지, 좌우부승지 등이 차례로 입시 알현했다. 주상이 군복을 갖추어 입고 좌마(座馬)에 오르자 선전관이 출발할 것을 계품하였다.

“출발하라.”


이제 17세의 어린 왕이 자못 위의를 갖추어 명을 내렸다. 본시 영특한 인상이기는 하나 오늘은 일부러 목소리를 깔고 가슴을 한껏 편 티가 역력했다. 선전관이 초요기를 세 줄로 세우고 행고를 치게 하자 기마와 무예별감으로 둘러싸인 긴 행렬이 서서히 움직였다. 기마 무예별감들의 행렬이 끝나는 지점에 남여에 올라 뒤를 따르고 있는 대원군의 안색이 돌처럼 굳어 있었다.

‘어찌된 일인가? 지난 4년간 이런 일은 없었는데.....내게 아무런 기별도 없이 갑작스런 행궁이라니? 왕의 행행에 얼마나 많은 금전이 소요되는지 모르는 터도 아닐 터이고, 더구나 애초부터 나 혼자 나가기로 되어 있던 수조(水操)이었건만 이토록 뜬금없이 행차를 결행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대원군의 머릿속이 복잡하게 움직였다. 이번 행차의 저의를 짚어보느라 행렬이 선화문을 나서 돈화문을 지나가기까지 표정이 굳어 있었다.

‘서....설마?’

대원군의 이마에 주름이 깊게 패며 미간이 찌그러들었다.


‘이 아이가 친정(親政)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렷다? 주상의 나이 이제 겨우 열 일곱. 스물도 되지 않아 내 섭정을 거두게 하려 할 리는 없을 터. 그렇다면 어떤 무리가 그 아이의 속을 충동질하고 있단 말인데......?’

곰곰 되짚으며 생각에 잠기던 대원군의 눈이 매섭게 가늘어졌다.


‘중전? 그 아이밖에 없어. 주상이 중전과 가까워지면서 예전 같지 않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어. 대비나 안동 김문이나 왕권이 튼실해져서 득 될 게 없는 이들 아닌가. 결국 왕권이 강화되어 얻음이 있는 무리라고는 민씨 척족들뿐일지니. 만약 그렇다면......’

징소리가 두 번 울리며 대취타가 울리는 소리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행렬이 벌써 숭례문을 지나고 있던 것이었다. 이 구경거리를 놓칠세라 거리를 가득 메운 백성들의 웅성거림이 대단했건만 이제까지는 그 소리조차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숭례문을 나서자 행렬은 가속을 얻어 어느새 노량진 주교(舟橋) 북쪽 언덕에 이르렀다. 병조판서 김병주가 꿇어 앉아 주필(駐蹕)을 계청하자 곧 취타 소리가 멎었다. 잔잔히 부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주사영(舟師營)에서 포를 쏘아 맞이하고 천아성을 불며 기를 끄덕였다. 장졸들이 고함을 세 번 지르며 영접하자 징소리마저 그쳤다.

수조를 위해 각 영에서 모인 장졸들, 왕의 수행행렬, 그리고 그 행렬과 수조를 구경하기 위해 모인 수만 명의 백성들로 노량 일대가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전거리를 옮겨온 양 흥청거렸다. 왕의 행렬이 있음은 겨우 오늘 아침에야 알았을 터인데도 소문은 불길보다도 빨랐으리라.

구경꾼의 무리 중에 거동이 예사롭지 않은 자들이 보였다. 얼굴에 흉터가 나 있는 자가 중갓을 쓰고는 양 소매 사이에 손을 넣은 채 조용히 행렬의 도착을 지켜봤다. 행렬에 별 다른 감흥이 없어 보이면서 한시도 눈을 떼는 법이 없었다.

흉터 난 사내가 지그시 오른 편 저 만치에 있는 사내를 쳐다보았다. 오른 편의 사내가 눈을 마주치자 고개를 살짝 끄덕했다. 비장한 표정이었다. 흉터 난 사내가 왼쪽을 바라보았을 때도 저편에서 똑 같은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는 사람의 무리를 뚫고 세 사내가 조금씩 왕과 중신들이 자리 잡은 곳을 향해 나아갔다. 이 때 한 무리의 사내들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이래선 아니 되겠다. 뻐꾸기가 그려준 용모파기만으론 대체 놈을 분별할 수가 없어. 흉터에 덥썩부리라니 그냥 눈치로 잡는 게 빠를 성 싶다.”

잠깐 꺼내 본 인물그림을 접어 다시 품에 넣으며 대장간 복 서방이 말했다. 천돌이와 세 명의 젊은이들이 뒤에 따라붙어 서 있었다.

“천돌아, 1대에겐 확실히 기별이 된 것이지?”

“그러믄입쇼. 외곽은 저희가, 근접 호위는 그 쪽에서 맞기로 하였습니다요.”

“그래 그렇다면 절대로 우린 노친네(대원군) 쪽으로 가까이가지 마라. 자칫 우리끼리 오인하는 일이 생길라.”

“예, 알겠습니다요.”

천돌이가 대표로 대답했다. 백호대끼리의 오인을 막기 위해 짚신 매듭으로 신표를 만들기는 했지만 워낙 인파가 밀려있는 곳이라 상호간 식별이 쉽지 않음을 천돌이도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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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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