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왕(王) 돈가스'를 좋아하는 이유

먹는 사람의 마음까지 넉넉하게 만들어 줍니다

등록 2005.11.16 21:11수정 2005.11.17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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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접시가 모자랄 정도로 큼지막한 왕돈가스

접시가 모자랄 정도로 큼지막한 왕돈가스 ⓒ 이효연

어제 시장에 갔다가 딸아이가 하도 '통까츄(돈가스), 통까츄' 노래를 부르는 바람에 엉겁결에 돼지고기 안심 몇 장을 장바구니에 넣게 되었습니다. 반찬 투정을 하다가도 돈가스 몇 점만 있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워내는 딸아이 때문에 튀김요리를 즐겨 하지 않지만 가끔은 집에서 돈가스를 튀겨 먹게 되네요.


그런데 솔직히 어제는 딸아이의 성화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추억의 왕돈가스'를 만들어 보자는 생각이 더 컸습니다. 홍콩에서도 일식집에 가면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 돈가스 메뉴입니다만, 자그마하고 도톰한 돈가스를 손가락 길이로 잘라 소스에 찍어먹는 일본식 돈가스는 사실 별로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솔직히 저는 쟁반만한 크기에 소스도 듬뿍 뿌려져 나오는 왕돈가스를 좋아합니다. 고기의 질과 맛으로 따지자면 일식 돈가스와 왕돈가스 중 어느 것이 우위일지 모르겠지만 바깥에서 외식을 할 때면 반드시 '본전' 생각을 하는 저로서는 일단 눈에 큼직하게 들어오는 요리에 한 표를 더 주게 되더군요.

홍콩에 오기 직전까지도 잘 갔던 식당 가운데 3500원이면 쟁반만한 크기의 돈가스에 칼국수까지 덤으로 줘서 먹다 먹다 지쳐 나오는 곳이 있었습니다. 뛰어난 맛은 아니었지만 엄청난 두께의 돈가스며 언제나 만원인 가게 앞에 줄을 서서 기다려 먹는 재미도 쏠쏠해서 주말에 출출할 때면 남편과 같이 가곤 했었죠.

곁들여서 나오는 희멀건 인스턴트 크림 스프도 이 돈가스와 같이 먹으면 그렇게 맛날 수가 없었습니다. 더불어서 남산 올라가는 길 중턱에 자리한, 택시 기사분들이 많이 찾는 돈가스 식당이나 성북동에 과기고 옆에 자리한 유명한 돈가스 식당도 자주 찾는 곳이었고요.

이런 왕돈가스를 만드는 식당의 메뉴란 돈가스, 함박스테이크, 생선가스, ○○○○정식 등 기껏해야 서너 가지가 전부입니다. 하지만 저는 메뉴 가짓수가 적어서 불편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마음이 넉넉해짐을 느낍니다.


외제차를 타고 온 사장님이나 팍팍한 근무시간 중 잠시 짬을 내서 점심 식사를 하러 온 노란 제복의 택시 기사나 양식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나 아닌 사람이나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똑같은 가격의 똑같은 돈가스를 '썰어가며'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곳이니까요.

일류 호텔의 고급 스프에 입맛이 길들여진 사람도 이 왕돈가스를 먹을 때 만큼은 멀건 인스턴트 크림 스프 접시에 코를 들이대고 바닥이 보이도록 맛있게 먹습니다. 반을 자른 돈가스 고기에서 도톰한 속살이 안 보여도, 커다란 접시에 같이 담겨 나온 깍두기 국물이 돈가스를 적셔도 아무도 불평불만이 없습니다.


나이프와 포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그냥 '푹' 포크에 찍어 입으로 한 입 두 입 베어 먹어도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는 편안함이 있어 더 맛있는 왕돈가스였습니다.

깨를 갈아 넣은 소스에 찍어 먹는 도톰한 두께의 고급 일식집 돈가스, 그 똑 부러지는 맛과 모양새에 비하면 고기의 품질도 떨어지고 곁들이 야채며 스프도 허술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음식의 천국'이라는 홍콩에서 살면서도 아직 그 '왕돈가스'는 본 적이 없고 그래서 더욱 그리워지는 것을 보면 무언가 매력이 있긴 있나 봅니다. 도대체 그 '왕돈가스'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오늘은 집에서 왕돈가스를 만들어보았습니다. 찬장 속 커다란 접시를 찾느라 고기를 재울 때부터 마음이 바빴습니다.

<재료>

돈가스용 돼지고기(살코기) 3-4장
달걀 1개, 빵가루 3컵, 소금, 후추, 카레가루 약간, 튀김 기름 넉넉히, 토마토케첩 1컵, 우유 1/2컵, 물 1/2컵, 설탕 3큰술, 식초 1큰술, 하이라이스 분말 3큰술

a 고기를 충분히 두들겨서 얄팍하면서 커다란 크기로 만들어 주세요.

고기를 충분히 두들겨서 얄팍하면서 커다란 크기로 만들어 주세요. ⓒ 이효연

1. 칼등이나 고기 방망이로 두드려서 고기를 얇고 넓게 펴준 다음 소금, 후추, 카레가루, 맛술 등에 재워둡니다.

칼등으로 두드리고 손으로 쭉쭉 잡아 늘이면서 크게 만들어요.

a 빵가루를 충분히 준비해서 꼭꼭 눌러가며 옷을 입혀주세요.

빵가루를 충분히 준비해서 꼭꼭 눌러가며 옷을 입혀주세요. ⓒ 이효연

2. 달걀과 빵가루를 각각 다른 그릇에 준비해 두고,

a 달걀은 흰 자와 노른 자가 고르게 섞이도록 잘 풀어주세요

달걀은 흰 자와 노른 자가 고르게 섞이도록 잘 풀어주세요 ⓒ 이효연

3. 고기에 달걀 물을 입힌 다음,

a 빵가루를 입히면서 꼭꼭 눌러주면 고기의 크기가 더 커집니다.

빵가루를 입히면서 꼭꼭 눌러주면 고기의 크기가 더 커집니다. ⓒ 이효연

4. 빵가루를 꼭꼭 눌러가며 입혀줍니다.

a 튀기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쳐 두면 일이 수월해집니다.

튀기기 전 모든 준비를 마쳐 두면 일이 수월해집니다. ⓒ 이효연

5. 빵가루 입힌 고기를 접시에 가지런히 덜어 놓고 튀김 기름을 불에 올립니다.

a 오븐이 있다면 기름을 적게 먹는 튀김을 만들 수 있어요.

오븐이 있다면 기름을 적게 먹는 튀김을 만들 수 있어요. ⓒ 이효연

6. 오븐이 있을 경우 기름을 적게 들이면서 돈가스를 만들 수 있어요.

팬 바닥에 기름을 잘 펴 바른 후, 고기 표면(1개당)에 기름(샐러드유나 올리브유)을 1큰술 정도 발라줍니다.

180도에서 25분 정도 구워주다가 뒤집어서 200도에서 10분 정도 구워내면 노릇노릇 바삭바삭한 돈가스가 만들어집니다.

a 기름이 충분히 뜨거워졌을 때 돈가스를 튀겨야 합니다.

기름이 충분히 뜨거워졌을 때 돈가스를 튀겨야 합니다. ⓒ 이효연

7. 튀김팬에 튀길 때에는 180도 정도(젓가락을 넣어 치이익 소리가 나거나 빵가루를 넣었을 때 금방 떠오를 정도)에서 겉이 노릇노릇해 질 때까지 3분-4분 튀겨줍니다.

a 곁들이로 야채를 준비하면 보기도 좋고 고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좋지요.

곁들이로 야채를 준비하면 보기도 좋고 고른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어 좋지요. ⓒ 이효연

8. 팬에 소스재료를 넣어 잘 저어 끓인 후 접시에 올린 돈가스에 뿌려내면 완성이지요.

덧붙이는 글 | 오늘은 홍콩에서 '왕 돈가스' 가게를 내 보면 어떨까 하는 농담을 남편과 주고 받았습니다. 지난 번에는 '생맥주 가게'였는데 오늘은 또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왕돈가스'며 '호프집' 등이 홍콩에서도 붐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덧붙이는 글 오늘은 홍콩에서 '왕 돈가스' 가게를 내 보면 어떨까 하는 농담을 남편과 주고 받았습니다. 지난 번에는 '생맥주 가게'였는데 오늘은 또 주제가 바뀌었습니다. 한류의 바람을 타고 '왕돈가스'며 '호프집' 등이 홍콩에서도 붐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멋대로 요리' 이효연의 홍콩 이야기 http://blog.empas.com/happy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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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는 방송에 홀릭했던 공중파 아나운서. 지금은 클래식 콘서트가 있는 와인 바 주인. 작은 실내악 콘서트, 와인 클래스, 소셜 다이닝 등 일 만드는 재미로 살고 있어요. 직접 만든 요리에 어울리는 와인을 고르고 피아노와 베이스 듀오 연주를 하며 고객과 공감과 소통의 시간을 가질 때의 행복이 정말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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