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선수뢰를 띄우겠나이다.”
이제야 훈련대장 신관호가 일어났다. 훈련도감의 장졸 둘이 육각형의 나무 상자를 들고 있었다. 나무 여섯 장을 잇닿아 붙여 만들었는데 틈을 생석회와 기름을 섞어 만든 유회로 막고 삼베로 싼 후 그 위에 옻칠을 하여 방수처리한 것이었다. 각 면에는 납으로 만든 추가 달려있고 뚜껑 부위에 부구가 있어 한 눈에도 본체는 물 속에 가라 앉고 부구에 의해 수면에 표지를 남기는 방식임을 알 수 있었다.
“본 공선수뢰에는 120근의 화약이 들어 있사옵니다. 잠수부가 이양선 근처로 수뢰를 끌어다 놓은 후 수뢰 위쪽의 3개 구멍 중 가운데 뚜껑을 열은 즉 물이 들어가게 되옵고, 그러한즉 물이 직수관과 곡수관으로 들어가 수고 안으로 고이면 수고가 부풀어 올라 내부의 강기판을 들어올리게 되옵나이다. 그러하면 게판 위에 달린 탄조(공이치기)가 뇌관을 때리옵고 뇌관에서 일어난 불이 화탑과 약관을 통해 약창 안에 담긴 화약에 붙사오매 사방 몇 보 안의 배는 남아날 수가 없사옵니다.”
신관호가 주상에게 소상히 고했다. 어린 왕이 눈에 총기를 띠며 관심을 보였다.
“오호, 대단한지고. 정령 그리하면 양이의 배도 깨칠 수가 있단 말이지요?”
“그러하옵니다. 약창의 화약은 상자의 크기에 따라 변동이 가능하오매 본체의 크기만 늘린다면 300근의 화약도 족히 적재가 가능하옵니다. 그 정도 화약이라면 능히 깨치지 못할 배가 없을 줄 아옵니다.”
“그렇다면 이 병기가 물 속에서도 작용하는 원리는 무엇이오? 동화모(銅火帽) 때문이오?”
신관호의 눈이 번쩍 뜨였다. 내심 불쾌한 기색으로 먼 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찌푸려 있던 대원군의 안색도 변했다.
“예. 그러하옵니다.”
신관호가 미소를 머금은 흐뭇한 표정으로 답했다. 어리게만 봤던 임금이 얇은 동판에 뇌홍이라는 물질을 담아 격발만으로 발화가 가능하게 만든 뇌관의 원리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공선수뢰의 제작의 진두지휘했던 자신도 나사정(나사못)과 강기판(판스프링), 가죽수고(가죽패킹)의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완성 후에 대원군에게 원리를 설명할 때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던 부분이었다.
‘주상께서 <해국도지>를 읽으셨단 말인가?’
신관호는 주상이 부국강병을 위해 무엇인가 작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아 내심 흐뭇했다. 이 대화를 가만히 듣던 대원군이 슬며시 주먹을 쥐었다.
‘어린 주상이 <해국도지> 같은 서책을 접했다? 중국에서 들어와 금서로 취급되던 책을 접하고 공선수뢰의 원리를 들은 바 있다면 필경 이 아이 혼자의 생각은 아니었을 터......이 요사스런 계집이 주상을 움직이고 있는 게야!’
근자에 중전이 부쩍 외국 서적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은 접했다. 그러나 그게 주상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으리란 생각은 못하고 있었다.
‘어디 영향받는 게 그뿐이랴. 베갯머리 송사에 쇠도 녹는다더니.......’
대원군은 중전과 주상을 떼어 놓을 계책을 마련해야겠다며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래, 훈련대장은 어서 시연토록 하오. 과인 또한 수뢰의 위력이 궁금하구려.”
주상의 명이 떨어지자 한강 가운데 띄워 놓은 나룻배를 향해 잠수부가 천천히 헤엄쳐 갔다. 이 광경을 보며 흉터 난 사내가 소매 속 수발총을 지그시 쥐었다. 손에 차가운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어찌 되었든 예서 끝장을 보아야 한다. 마지막이다. 이번 한 탕으로 손 터는 거다.’
수하 두 놈 중 한 놈의 행적이 묘연한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여기서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흉터 난 사내가 소매 안에서 천천히 격발쇠를 제꼈다.
[딸깍]
소매 안에서 나는 쇳소리가 구경하느라 정신을 놓은 다른 이들에게 들릴 리 만무하겠건만 흉터 난 사내는 예민하게 주위를 훑었다. 바로 앞의 구경꾼들은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데 30여 보 떨어진 건너편에서 제법 턱선 굵은 사내 둘이 자신을 응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사내 둘이 천천히 거리를 좁혀오는 중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한강 중간에 떠 있는 폐선에 집중되어 있었다.
‘방해꾼이 있었구먼!’
흉터 난 사내가 슬쩍 자세를 낮췄다. 좁혀오던 사내 둘이 순간 긴장했다. 시야에서 흉터 난 사내가 사라졌다. 비록 멀지 않은 거리였으나 그놈이 그놈 같은 군중들 사이에서 그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 중 한 사내가 흑호대 오장의 표정을 살폈다. 그의 표정도 당혹스러워 보였다. 오장이 눈짓으로 뒤로 빠지란 표시를 했다. 이제 남은 방법은 대원군의 차일이 쳐진 단 아래를 에워 싸고 습격을 막는 수밖에 없었다. 오장이 품속에 손을 넣어 팔짱을 끼었다. 묵직한 오혈포의 느낌이 그대로 전해졌다.
‘이런 젠장할......뒤숭숭한 꿈자리가 맘에 걸리는구먼.’
오장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오혈포까지 꺼내어 자객을 막을 상황이 된다면 주상과 대원군이 있는 앞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노출하게 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돌아서기도 어려웠다. 결국 자객이 원하던 혼란의 상황이 이 모든 걸 덮어 버리길 빌 밖에 도리가 없었다.
먼 발치로 수뢰에 연결해 놓은 인승을 끌어 배로 다가간 잠수부가 뚜껑의 마개를 뽑고는 사력을 다해 강가로 헤엄쳐 내닫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나 신경은 온통 대원군 쪽으로 쏠리고 있는 살기의 감지에만 몰두해 있었다.
[꽈우웅-]
경천동지할 굉음이 한강변을 휩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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