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183

심양으로

등록 2005.12.01 17:06수정 2005.12.0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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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판수와 짱대가 부리나케 뛰어나가는 사이 평구로는 음식점의 나무 탁자와 의자를 닥치는 대로 집어던져 순라병들이 뒤쫓을 여지를 늦춘 후에야 몸을 돌려 달아났다.

“이것 참! 앞으로 고달프기 짝이 없겠구먼!”


한참을 달린 후, 순라병들이 더 이상 쫓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한 짱대가 숨을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장판수는 숨을 헐떡거리며 뒤쳐져 오는 평구로를 보고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맙습네다.”

평구로는 모처럼 감사함을 표하는 장판수의 말에 슬쩍 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이대로 심양성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하거니와 포로로 잡혀온 조선인들이 거의 성곽 외곽에 있었기에 장판수 일행은 왔던 길을 되짚어 나가 밖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날 장판수 일행은 조선인마을을 찾아다니기 위해 새벽녘부터 일어나 길을 나섰다.

“잠깐, 주위가 소란스럽다.”

평구로의 말에 장판수는 재빨리 땅바닥에 엎드려 귀를 기울였다. 땅에서는 미세하지만 분명 말발굽소리가 전해져 오고 있었다. 장판수 일행은 몸을 숨긴 채 말발굽소리가 난 방향을 주시했다.


“이랴! 이랴!”

요란하게 말을 모는 소리와 함께 온 것은 말안장에 달린 밧줄에 묶여 엉망이 된 채 질질 끌려 다니는 사내였다. 잠시 고삐가 당겨져 말이 멈추면 사내는 비틀거리고 일어섰고 그때마다 말위에 탄 청의 병사는 말고삐를 늦추어 다시 달리며 사내를 질질 끌어대었다.


“아이고 나 죽소!”

넝마가 된 옷을 입은 사내의 입에서 조선말이 튀어나오자 짱대가 분개해했다.

“저...... 저, 오랑캐 놈이 우리 사람 죽이네!”

“쉿!”

평구로가 짱대의 입을 급히 막았다. 말 탄 병사의 뒤에는 굴비 엮이듯 줄줄이 묶인 조선인포로 대 여섯 명이 고개를 숙인 채 청나라 병사들의 감시 하에 힘없이 걷고 있었다. 그들이 다 지나간 후에 장판수는 벌떡 일어서 가래침을 캬악 내 뱉었다.

“여기서 못 볼 것을 봤구만. 어쨌든 저들 뒤를 쫓아가면 틀림없이 조선 사람들 마을이 나올 것이니 가보자우.”

“저런 육시랄 놈들! 내 눈물이 다 나오!”

짱대는 오랑캐들을 저주하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소매로 훔쳐 내었다. 심양에 온 이후로는 유별나게 흥분도 잘하고 감정도 잘 드러내는 짱대였다. 장판수는 그런 짱대가 은근히 걱정되었다.

“니래 시덥잖은 소리도 하고 잘 놀던 놈이 왜 이케 됐네? 마음 단단히 먹으라우.”

“예......”

뒤에서 오던 평구로는 뭔가 안심이 안 되는지 앞서가는 짱대를 잡고 자신의 뒤로 물러나 걸어오라 일렀다. 짱대는 평소 그답지 않게 그 말을 고분고분 따랐다.

“허...... 여기가 사람이 사는 곳인가......”

조선인 마을에 들어선 장판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마을이라고는 하나 대충 얽기 설기 나무줄기로 만들어 놓은 집이 고작이었고 대부분은 그런 집조차 없어 사람들은 바닥에 앉아 퀭한 눈으로 장판수 일행을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겨우 끼니는 때우는 모양인지 몇몇 이들은 옹기종기 모여 솥에 무엇인가를 열심히 끓이고 있기도 했다.

“모두 모여라!”

날카로운 목소리에 사람들은 힘없이 고개를 들었다. 소리를 지른 이는 조선말을 유창하게 하는 청나라 관리였다. 청나라 병졸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움직이지 않는 이들에게는 사정없이 욕을 하며 발길질을 해대었다.

“어서 가보자.”

장판수는 괜히 충돌을 빚을 것은 없다고 여겨 마치 이미 포로로 잡혀 있던 사람인양 사람들 틈에 섞여 병사들이 줄지어 가는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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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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