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소설> 사금파리 부여잡고 2부 203

새로운 시작

등록 2006.01.06 17:35수정 2006.01.06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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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 동안 깊은 잠에 빠져 있던 장판수는 자욱한 연기에 눈을 떴다.

“뭐야?”

장판수가 벌떡 일어나 보니 헛간 틈새로 연기가 마구 들어오고 있었으며, 밖에서는 욕하며 싸우는 소리와 함께 가끔 칼을 부딪치는 소리도 들려왔다.

‘이거 뭔가 사단이 나도 단단히 났구나!’

장판수는 온 몸을 던져 문에 부딪혔으나 굵은 나무를 대어 만든 문짝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판수는 덮쳐오는 연기에 눈과 코가 매워지며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야! 내래 전에 불 질렀다고 태워죽일 작정이네! 어서 문열라우!”

이대로 있다가는 질식해서 죽겠다는 생각이 장판수의 머릿속에 스치는 찰나 거짓말처럼 문이 벌컥 열리며 복면을 쓴 자가 뛰어 들어왔다. 장판수는 영문을 알 수 없었으나 복면을 쓴 자가 소맷자락을 잡고 급히 밖으로 끌고 나가자 일단 그를 따른 뒤 땅바닥에 누워 힘겹게 숨을 헐떡였다.

“이거... 대체 뭔 일이야?”

장판수가 갇혀 있던 헛간은 물론이거니와 객주까지 불길에 휩싸여 있었고 드문드문 쓰러져 있는 사람도 있었다. 복면을 쓴 자가 얼굴을 드러내자 장판수는 깜작 놀랐다. 그는 심양에서 포로로 있다가 장판수에 의해 구출된 육태경이었다.

“아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네?”

“나중에 차차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금은 먼저 그 도적을 잡는 것이 급합니다.”

육태경은 다시 복면을 올리고서는 칼을 들고 뛰었다.

“저기다! 저기 한 놈이 도망간다!”

사람들이 소리 지르는 곳에는 누군가 필사적으로 급한 경사를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앞 다투어 달려가 그 자의 뒷덜미를 낚아채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어이쿠! 제발 목숨만은...”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진 자는 서흔남이었다.

“이놈! 그 땡중놈은 어디로 갔느냐?”

“난 모르오. 소란이 일어나 찾아보니 이미 사라지고 없었소.”

화가 난 사람들이 칼을 들어 서흔남을 찌르려 하자 장판수가 달려가며 소리를 질러 그들을 말렸다.

“대체 왜 이러네? 사람을 함부로 해하는 이유가 뭐네?”

장판수가 가까이 다가가 복면을 내린 그들의 얼굴을 보니 모두가 심양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탈출했던 사람들이었다. 육태경이 평구로와 함께 다가와 크게 울부짖었다.

“이 나쁜 놈들!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것들!”

“대체 무슨 영문입네까? 어찌된 것입니까?”

“이놈들이 수작을 부려 최종사관이 죽었소! 게다가 포로로서 도망간 자들을 조정에서 잡아들인다 하여 이리도 도망 온 것이오.”

“뭐...... 뭐이!”

장판수가 육태경에게 전해들은 얘기는 충격적이었다. 이시백에게 두루마리 필사본을 전하고 도움을 얻으러 간 최효일은 집 밖에 매복하고 있던 자들에게 붙들려 의금부로 넘겨졌고 그 곳에서 이괄의 잔당인 김개라는 자로 몰려 모진 고문을 받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최효일은 최명길의 아우 최만길의 집에 머물러 있으면서 흉계를 꾸민 자로 조작되었고 그로인해 최만길은 유배되고 최명길은 파직당하고 말았다. 이러니 장판수가 도움을 청하려 한 이시백마저 잠깐이나마 조정에서 입지가 좁아진 것은 당연지사였다.

“결국 최종사관은 고문으로 인해 장독이 올라 죽고 말았습니다. 저희는 의주에 머물러 있다가 장군관이 귀 뜸을 주어 잡히지 않고 다시 이리로 오게 된 겁니다.”

장군관은 바로 임경업 휘하에 있던 짱대였다. 장판수는 이를 갈며 소리쳤다.

“그럼 의주부윤께서는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았단 말입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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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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