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엔 '양심'이 몇 번이나 나올까?

[헌법재판 오디세이 17]양심의 자유

등록 2006.01.11 14:08수정 2006.01.11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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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과 프랑스 사회를 비교 관찰하면서 체면과 양심이 양국의 사회를 통제하는 메커니즘으로 자리 잡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프랑스인이라고 해서 체면을 따지지 않는 것도 아니고, 한국인이라고 해서 양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한국인들은 체면에 민감하고 프랑스인들은 양심에 의해 제어된다."

한국인은 체면, 프랑스인은 양심

'조홍식 교수의 프랑스 문화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책 <똑같은 것은 싫다>에 나오는 구절이다. 저자는 체면과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 중 어느 쪽이 더 낫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어떤 측면에서는 체면을 중요시하는 사회가 훨씬 도덕적이고 윤리적일 수 있다고 말한다. 다만 체면사회가 자본주의와 결합했을 때 최악이라는 분석이다. 부가 체면의 척도가 되고 가난한 자는 체면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에서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은 체면의 필요조건이랄 수 있는 부의 축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양심이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서로 다른 종류의 양심을 가진 집단이 여럿 존재할 경우 이들 간 갈등과 마찰이 타협하기 어려운 투쟁으로 발전하기 쉽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동양 사회에서 종교 갈등이 크지 않았던 데 반해, 프랑스 역사는 종교에서 비롯된 피비린내로 가득한 무수한 전쟁이 있었던 배경으로 양심에 의해 조종되는 메커니즘을 꼽는 것이다. 종교전쟁이란 말 그대로 믿음과 또 다른 믿음이 서로 목숨을 걸고 충돌하는 것인데 치열한 양상을 띨 수밖에 없다는 해설이다.

각기 장단점을 들었다고 하지만 체면과 양심을 키워드로 드는 분석이 유쾌한 것은 아니다. 아무래도 '체면'보다는 '양심'이 더 보편적이고 인간다운 가치다. 우리 사회가 아직 '양심'을 받아들이기에 덜 성숙했다는 비판은 못내 불편하다. 저자도 이점이 끝내 마음에 걸렸는지 책 말미 '후기'에서 '프랑스 사회를 미화하고 한국 사회를 비판적으로 보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탈고 순간까지 괴롭혔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한국은 여전히 물신주의에 기초한 체면사회였고 프랑스는 상대적으로 인본주의 가치가 살아있는 양심사회였다. 그 반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를 설득시켜주기를 기대할 뿐"이라며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나는 체면상 도저히 못 하겠다'며 물리치는 말과 '양심상 그렇게 못 하겠다'는 항변 중 어느 편에 공감하는 사람이 더 많을까. 혹시 '체면 때문에 못 하겠다'는 거절에는 '솔직히 나라도 못 하겠다'며 고개를 끄덕이지만, '양심상 할 수 없다'는 주장에는 괜한 핑계라고 몰아붙이는 비아냥거림이 우리 사회 밑바탕에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지은이의 분석에는 개인마다 동감하는 정도가 달라 의견차가 있을 것이다. 설령 글쓴이와 생각이 정반대이더라도 해야 할 일은 반박이라기보다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찰이 아닐까.

우리 헌법상의 양심


'양심'이 서구에서 보다 널리 퍼진 의식일지 몰라도 우리사회에서도 점차 '양심'을 내세우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다보니 헌법문제에서도 '양심'을 둘러싼 다툼이 많아진다. 헌법조항에는 양심이 몇 번이나 나올까. 세 번 등장한다. 제46조 제2항에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는 규정이 있다. 국회의원의 헌법상 의무로 '국가이익우선의무'다.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는 조항은 법관의 재판상 독립 내지 직무상 물적 독립을 표현한다. 양심은 법관 개인의 도덕적∙주관적 양심이 아니라 객관적인 직업적 양심을 말한다. 크게 논쟁이 없는 조항들이다. 국회의원과 법관이 양심이라는 보루에 기대 주장을 펼칠 만큼 절박한 상황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논란이 되는 조항 "모든 국민은 양심의 자유를 가진다"는 제19조다. 양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담고 있다. 사람은 자기 양심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인격적인 자기표현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양심의 자유는 인간존엄의 뿌리라고 평가된다. 현실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소수의 양심이다. 그들이 종래 국가 법질서나 사회의 도덕률과 일치하지 않는 주장을 펴며 양심을 내세울 때 갈등이 생긴다. '공동체의 다수결정과 달리 생각하고 달리 행동하고자 하는 소수를 국가가 어떻게 배려하는가'의 문제, 소수에 대한 국가적·사회적 관용의 문제다.


양심이란 무엇일까

양심의 자유에서 그 개념을 정확하게 정의하기는 어렵다. "어떤 일의 옳고 그름을 판단함에 있어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절박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라는 헌법재판소 판시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다. 후반부에 강조점을 두면 오히려 우리말 '소신'에 가깝다.

사전은 첫 번째 정의로 "사람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바르고 착한 마음"이라고 한다. 확장하더라도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선악을 판단하고 명령하는 도덕의식"정도로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본다. 헌법상 의미와 일상적인 쓰임새와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그런데 헌법학자들은 대체적으로 양심의 자유에 사상의 자유까지 포함시켜 해석하려한다. 우리 헌법에 사상에 자유에 대한 규정이 없어서 생기는 공백을 메우려는 의도이다. 여기까지 의미를 넓히면 일상어와는 거리가 더 멀어진다. 양심이 무엇인지가 자주 다투어지는 까닭이다.

양심의 개념에 사상이 포함되나

헌법재판소는 사상의 자유를 포함시켜 이해하는지 개념에 대한 입장이 명확하지 않다. '사죄광고 사건'(1991.4.1. 89헌마160)과 '국가보안법 불고지죄 사건'(1998.7.16 96헌바35) 등에서는 넓게 파악해서 "양심이란 세계관·인생관·주의·신조 등은 물론, 이에 이르지 아니하여도 보다 널리 개인의 인격형성에 관계되는 내심에 있어서의 가치적·윤리적 판단도 포함 된다"고 하였다. 반면 '음주측정거부 사건'(1997.3.27. 96헌가11)에서는 "선과 악의 범주에 관한 진지한 윤리적 결정"이라는 표현을 사용 윤리적 판단에 한정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준법서약제 사건'(2002.4.25 98헌마425)에서는 "양심의 자유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성 유지와 개인의 자유로운 인격발현을 위해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을 보장하는 기능을 담당한다"고 하여 명시적으로 윤리적∙도덕적 양심으로 국한하였다.

이 사건에서 두 재판관은 위헌이라는 반대의견을 냈는데, "다수의견은 양심의 범위를 도덕적 양심에 국한시키면서 개인의 윤리적 정체성에 관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에 한정시켜 판단하고 있는 바 이는 명백히 종래의 판례취지를 축소 내지 변경하는 것"이라며 비판적 견해를 냈다. 다수의견처럼 양심범위를 좁게 보면 앞선 사건의 결론도 뒤바뀌었을 것이라는 지적을 덧붙였다.

논쟁은 개념에 대한 약속에서 시작된다. 개념에서부터 다른 길로 들어서면 도착지점도 같지 않기 십상이다. 그렇지 않아도 난해한 문제들이 더 복잡해지는 이유는 정의에서부터 혼선이 있기 때문이다. '양심'을 윤리적 시각에서 좁게 보면 대척점에 '비양심'이 있지만 '사상'이나 '신조'로 이해한다면 맞은편에는 그와 다른 또 하나의 '사상'이나 '신조'가 있을 뿐이다.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의도적으로 개념을 조작하려는 시도를 배제하는 데서 생산적인 공론장이 마련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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