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 결정문 대다수는 기본권 '제한'과 '침해'를 다루고 있다. 기본권은 '제한' 가능하지만 한계를 넘을 수 없다. 넘으면 '침해'가 되어 위헌이다. 입법, 행정, 사법 등 국가작용이 기본권 제한의 한계를 넘어 기본권을 침해했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헌법소송의 전부에 가깝다.
기본권은 언제 어떻게 제한할 수 있을까. 헌법이 직접 제한하는 '헌법유보'와 헌법의 위임에 의해 법률로 제한하는 '법률유보' 두 가지가 있다.
'헌법유보'는 '헌법적 한계'라는 용어로도 사용된다. 우리 헌법에 헌법적 한계로는 개별적 조항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인 예가 위헌정당해산규정이다. 헌법 제21조 제4항에서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정부는 헌법재판소에 그 해산을 제소할 수 있고, 정당은 헌법재판소의 심판에 의해 해산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정당도 위헌이라면 해산할 수 있지만 방법과 절차를 헌법에 정하고 있다. 다른 법률을 만들어 정당을 해산할 수는 없다.
헌법 제37조 제2항, 기본권 제한 근거이자 한계
대개 문제되는 쟁점은 법률에 의해 기본권이 제한되는 '법률유보'다. 우리 헌법은 일반적 법률유보조항을 두고 있다. 헌법 제37조 제2항에서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는 규정을 말한다.
헌법재판소는 이 조항을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근거규정이라 한다. 법률 중 많은 내용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즉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인데, 무슨 근거로 그런 법을 만들었냐고 묻는다면 헌법 제37조 제2항을 들면 된다.
이 조항은 동시에 기본권제한의 한계 규정이다. 제한할 수는 있되 한계를 설정하고 있다. 한계를 하나라도 넘으면 위헌이 된다. 한계는 위 조항 속에 다 들어있다. 문구를 쪼개어 음미해보면 된다.
목적, 내용, 형식상 한계
우선 목적상 한계다. 국가안전보장∙질서유지∙공공복리라는 목적을 위한 제한만 가능하다. 모두 개인보다는 집단의 이익을 위한 경우다. 유사한 목적 가운데서도 '국가안전보장'이 이질적인 느낌이다. '질서유지'와 '공공복리'는 반드시 국가를 전제로 한 개념이 아닌데, 안전은 '국가' 안전으로 못 박고 있다. 1972년 유신헌법에서 추가된 문구다. 건국헌법에서 제3공화국헌법까지는 '질서유지'와 '공공복리' 요건만 있었는데 유신헌법 당시 처음 들어와 현행헌법에 이르고 있다.
시위군중 속에서 태극기를 흔히 본다. 주장의 이념적 토대가 좌건 우건 다르지 않다. 흑백사진 속 시위대건 요즘 뉴스화면에 등장하는 시위대건 태극기를 몸에 두르거나 흔들고 있다. 오해하지 말라는 무의식의 발현이 아닐까. 행여 '국가안전'에 위해가 되는 무리로 여겨질지 모르나, 자신들이야말로 진정 나라를 위하는 마음에서 거리로 나왔다는 외침으로 들린다.
'국가안전보장'에 반하는 세력이라고 낙인찍히는 일은 억울함이나 막연한 두려움에 그치지 않는다. 기본권을 제한하는 입법권 행사의 근거가 됨을 일찍이 역사적 체험을 통해 알고 있는 것이다. '당위'를 따지기 전 현실문제다.
형식상의 한계는 "법률로써"라는 문구가 담고 있다. 국회가 제정한 형식적 의미의 법률로 해야 한다. 그런데 '법률로써 제한'이란 '법률에 근거한 제한'이고 '법률에 의한 제한'이 아니다. 법률에 근거가 있는 한 하위명령에 의해서도 제한할 수 있게 된다. 실제 대통령령∙총리령∙부령에 의해서도 기본권이 제한되고 있다.
또한 내용상 한계로서 본질적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이는 제2공화국 헌법에서 처음 규정되었는데 유신헌법에서 폐지되었다가 1980년 헌법에서 부활했다.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빈번하게 문제되는 방법상 한계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는 방법상 한계를 표현한다. 과잉금지원칙 또는 비례의 원칙이라고 부른다. 헌법재판소 결정에서, 궁극에는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하였는지를 판단하는 사례가 많다. 국회에서도 반대하는 법률안에 대해서 흔히 하는 반박이 과잉금지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다.
세부적인 내용으로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피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을 든다. 이는 헌법재판소 결정문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결정문을 읽는 동안 반복해서 보게 되겠지만 워낙 요긴한 심사기준이므로 세부사항을 살펴본다.
과잉금지원칙은 기본권제한 수단과 제한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사이를 규율하는 원칙으로 주로 목적과 수단의 관계를 규율한다. '목적의 정당성'은 엄밀하게 따지면 포함되지 않겠는데 헌법재판소는 과잉금지원칙을 판단할 때 일괄해서 검토하고 있다.
목적의 정당성부터 부인되는 경우는 드물다. 동성동본금혼조항에 대한 헌법불합치결정(1997.07.16. 95헌가6)에서 입법목적이 '사회질서'나 '공공복리'에 해당될 수 없다고 판시한 정도가 대표적이다.
'수단의 적합성'은 입법목적 실현을 용이하게 하거나 촉진하는 경우 충족된다. 부분적인 적합성만으로 충분하고 완전한 적합성까지 요구하지는 않는다. 유일한 수단을 고를 것을 요건으로 하지는 않는 것이다. 최적실현을 바라는 것은 아니어서 전적으로 부적합한지 근본적으로 부적합한지만을 심사한다.
'피해의 최소성'은 입법권자가 선택한 기본권 제한조치가 그 제한을 필요최소한의 것이 되게 하여야 한다는 내용이다. 수단과 수단 사이를 비교한다. 완화된 수단이 있다는 것만으로 최소침해원칙에 반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완화된 수단이나 방법이 있다면 그것을 모색해야한다는 명제다.
'법익의 균형성'은 어떠한 행위를 규제함으로써 생기는 개인의 불이익과 그 행위를 방치함으로 생기는 공적 불이익을 비교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때 공익이 제한되는 사익보다 크거나 적어도 양자 간에 균형이 유지되어야 한다. 제한되는 기본권의 비중과 제한정도를 공공복리의 중요성과 긴급성에 비교하게 된다.
과잉금지원칙, 판단에는 가치관이 반영돼
이 세부기준을 구체적 사안에 적용해서 하나에라도 반한다면 과잉금지원칙위배로 위헌이다. 기준을 적용하면 정답이 나오는가. 물론 그렇지 않다. 개인이 가지는 헌법적 관점, 가치관에 따라 결론은 천차만별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사이에서도 종종 견해가 나뉜다. 시간이 흘러 헌법재판소 판례가 변경되는 수도 있다. 현실이 변해 그럴 수도 있고 재판관 성원이 달라진데서 말미암기도 한다.
과잉금지원칙은 새삼스러운 법이 아니다. 대포로 참새를 쏘아서는 안 된다는 소박한 상식에서 출발했다. 견문발검(見蚊拔劍), 모기를 보고 칼을 빼는 일은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며, 닭 잡는 데 어찌 소 칼을 쓰겠느냐는 꾸짖음이다.
문제는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시점'에 따라 혹은 '시야'에 따라 닭인지 소인지가 다투어진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키면서 말이라 일컫듯 알면서도 사실과 다르게 우기는 사람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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