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발언, 정말 혼란스럽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탈당은 과연 과거형인가

등록 2006.01.13 10:53수정 2006.01.13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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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만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탈당을 고려했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1일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당·청 만찬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사실상 탈당을 고려했었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낳았다.연합뉴스 박창기

노무현 대통령에게 물어야 할 게 있다. 자신의 탈당 발언으로 정가의 안개 농도를 더 짙게 만든 만큼 최소 밝기의 안개등이라도 켜줘야 하는 게 도리가 아닐까 싶다. 물어야 할 건 두 가지다.

하나. "대연정 주장은 잘못 됐다"는 말은 뭔가?

김근태 열린우리당 고문은 지난 6일 "노 대통령이 근래 공·사석에서 대연정 주장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고 했다.

지난 11일 청와대 만찬에서 흘러나온 얘기도 일맥상통한다. 노 대통령이 지난해 말에 대연정 제안으로 당에 피해를 입혔다면 탈당이라도 하겠다고 말했다는 얘기 말이다. 그 전에 청와대는 대연정 제안은 사실상 무산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불분명한 게 있다. '잘못'이나 '무산'의 내용이 명확하지 않다. 청와대는 당시 한나라당의 거부로 대연정 제안이 무산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의지는 있으나 여건이 안 돼 거둬들인다는 취지였다. 김 고문의 말에서도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없다. 그저 "지나쳤다"는 노 대통령의 말만 전했을 뿐이다

노 대통령이 대연정 제안 과정에서 했던 말 가운데 특별히 돌아봐야 할 게 있다.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차이가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 대연정 제안 반대 논리의 핵심이었던 노선차를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물어야 할 건 바로 이것이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정체성에 차이가 없다는 말은 잘못된 것이었는가? 판단 착오였는가?


둘. "창당 초심"은 또 무슨 말인가?

지난해 11월 14일의 일이다. 10·26 재선거 참패로 위기에 빠진 열린우리당 내에서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제기되자 노 대통령은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고 국민에게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정당과 정치인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지역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민주당과는 같이 할 수 없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이에 앞서 유시민 의원은 대연정 제안을 옹호하면서 "노 대통령이 '호남 표 덫'에 도전 중"이라고 했다.

3김정치의 유물인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질서와 문화를 일구는 게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이요, 다른 당과의 통합 여부를 판단하는 첫째 기준 또한 이것이라는 얘기다.

노 대통령은 진정성 과연 뭐기에...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가의 안개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
지난 11일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나온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으로 정가의 안개 농도가 더욱 짙어지고 있다.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래서 묻지 않을 수 없다.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는 열린우리당의 정체성"과 "열린우리당의 창당 초심"이 부응하지 않는데도 노 대통령은 왜 두 말을 했는가? 지역주의 정당이란 점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다르지 않은데도 노 대통령은 왜 상반된 태도를 보인 건가?

이럴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판단 착오로 정체성 발언을 했다가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창당 초심으로 돌아가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어서 오라"고 손짓했을 수도 있다. 노 대통령 발언을 시간 순으로 늘어놓으면 이런 추측도 가능하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탈당 발언은 또 뭔가?

청와대는 노 대통령의 탈당 발언이 과거완료형이었다고 거듭 주장하지만 그렇게 받아들이는 정치인과 언론은 거의 없다. 노 대통령이 지방선거 이후를 대비해 탈당 발언을 했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정계개편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 지점에서 종합판 질문이 나온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은 도대체 뭔가?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을 향해 "100년 가는 정당이 돼야 한다"고 덕담한 바 있다. 정당이 100년의 역사를 헤아리기까지 숱한 우여곡절을 겪게 된다. 지방선거, 총선은 물론 대선에서 지는 일도 다반사일 것이다. 이런 풍상을 겪으면서도 정당이 명맥을 이어가는 동력은 노 대통령 스스로 밝힌 대로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이다.

그럼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이 "자신의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을 훼손했다고 판단하는 걸까? 그렇다면 열린우리당과 차별화되는 정치노선과 정책은 뭔가?

언론은 노 대통령이 11일 청와대 만찬에서 했다는 또 다른 말, 즉 2002년 대선 직전 유시민 의원 주도로 만들어진 개혁당에 대해 "가장 이상적인 정당이었다"는 말을 주목하고 있다.

오는 18일로 예정된 노 대통령 연설과 25일의 기자회견 내용을 주목하기도 한다. 주로 사회개혁 의제가 담길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다.

이런 것들은 노 대통령이 애기한 "정치노선과 정책의 정체성"과 직결되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구상을 여기서 엿볼 수 있다.

노 대통령이 정당개혁과 사회개혁 화두를 선점할 경우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적지 않다. 지방선거 이후 여권 내에 몰아칠지도 모를 회오리에 대응하면서 정국 주도권을 쥘 수 있는 도구로 손색이 없다. 그 뿐인가. 이 역학관계의 향배에 따라 모색될 정계개편의 명분축적용으로도 하자가 없다.

한 가지 남는 문제는 있다. 그런 구상과 목표가 이른바 '민주개혁평화세력'의 분열을 초래한 책임을 상쇄할 수 있느냐는 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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