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이정표가 나온 것 같다. '대선 승리가 목적인 당'과 '국정을 수행해야 하는 단임제 대통령'은 따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노무현 대통령의 언급이 뜻한 바가 뭔지 윤곽이 나오고 있다. 이른바 '조세개혁'이다.
<한겨레>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노 대통령이 18일로 예정된 새해 연설에서 조세부담률을 높이는 방안을 제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현행 19.5%인 조세부담률을 최소한 경제협력개발기구 수준인 30%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양극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재정지출 확대가 불가피한데 이를 감당하려면 세금을 더 거둬야 한다는 논리라고 한다.
이를 위해 면세점을 고정시켜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근로소득자 비중을 현재 49%에서 30% 안팎으로 줄이고, 자영업자에게도 간이과세 대상기준과 납부면제자 기준을 고정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충격파가 적지 않을 것 같다. 논란도 클 것 같다.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라고 하면서도 면세점 이하의 저소득 노동자들에게 세금을 걷겠다는 발상을 국민들이 이해할 수 있을까? 가진 자는 갖은 방법으로 탈세를 하는 반면 힘없는 서민들만 꼬박꼬박 세금 낸다는 국민의 조세감정을 돌파할 수 있을까? 양극화가 IMF환란에서 비롯됐고, IMF환란 원인이 부실·부도덕 경영을 일삼은 기업에 있는데도 오히려 그들이 법인세 1%포인트 인하 혜택을 받았다는 사실을 잘 아는 국민이 자기 지갑을 열려고 할까?
왜 탈당까지 언급하면서 '조세개혁' 카드 꺼내려고 할까?
제기해야 할 문제는 적지 않지만 일단 참자. 이른바 '조세개혁'의 구체 방안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서 왈가왈부하는 게 타당하지는 않아 보인다. 이틀만 기다리면 될 일이다.
다만 한 가지 확인되는 게 있다. 청와대는 오는 18일 새해 연설을 한 뒤 다음달 25일 기자회견을 갖는 일정을 잡아놨다. 이른바 시간차 입장 표명인 셈인데, 여기엔 노 대통령이 새해 연설에서 공개할 '조세 개혁' 방안이 선뜻 국민의 동의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그래서 18일 연설에서 대강을 밝힌 뒤 대국민 홍보를 부지런히 해서 다음달 25일 기자회견을 통해 여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 같다.
청와대의 이런 판단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탈당 발언이다. '대선 승리가 목적인 당'과 '국정을 수행해야 할 단임제 대통령'을 나눠 발언한 데에는 자신의 '조세개혁' 방안이 열린우리당에게 악재가 될 것이라는 예상이 깔려있다.
지난해에 출입기자들과 산행을 하다가 느닷없이 캐나다 멀루니 총리 얘기를 꺼낸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연방부가세를 도입해 169석의 보수당을 2년만에 2석의 초미니 정당으로 망하게 만든 멀루니 총리의 예와, '조세개혁'을 준비하면서 탈당을 언급한 노 대통령의 예는 닮아있다.
궁금한 점은 노 대통령이 '조세개혁' 구상을 실현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하는 점이다. 자신의 '조세개혁'이 열린우리당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발상이란 점을 알고 있는 노 대통령이 다른 정당, 특히 한나라당의 동의를 구할 수 있으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을까? 한나라당은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9조 감세안을 들고 나온 정당인데….
열린우리당 의원 상당수에 한나라당이 가세하면 노 대통령의 '조세개혁' 구상은 입법화될 수 없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왜 탈당까지 언급하면서 '조세개혁' 카드를 꺼내들려 할까?
정도전에 빠진 노 대통령, '조세개혁'으로 우리당과 '이혼'하나?
노 대통령의 '조세개혁' 방안이 국회에 제출되는 순간 노 대통령 탈당의 후순위로 점쳐지는 초당적 내각 구성은 제 정파가 두루 참여하는 내각이 아니라 제 정파가 모두 빠진 내각으로 성격이 변환되고 그만큼 국정 수행력은 약화된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왜 강수를 두려 하는 것일까?
언론은 노 대통령이 요즘 정도전에 빠져있다고 여러 차례 보도했다. 정도전이 비록 이방원에게 패하기는 했지만 조선 500년 역사의 뼈대를 세운 설계자로서 역사의 승리자라는 게 노 대통령의 역사관이라고 한다.
노 대통령이 정도전의 길을 걷고자 작심한 것이라면 탈당은 불가피하다. 열린우리당의 2.18전당대회는 노 대통령의 '조세개혁'을 둘러싼 논란으로 점철될 것이며, 당과 청와대의 틈은 더 벌어질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화해 불능의 상태로 빠져들어 이혼 도장 찍는 일만 남겨둘 공산도 크다. 조기 탈당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른다면 남는 문제는 하나다. 노 대통령을 따르는 당내 세력의 향배다. 노 대통령의 '조세개혁'이 지금 당장 이룰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면, 또 노 대통령이 정도전을 꿈꾼다면 노 대통령 임기 이후에도 '경국대전' 성안작업을 이어갈 후계 세력을 구축하는 건 필수다. 친노직계세력의 독자세력화를 뜻한다는 얘기다.
정치권이 요동치는 국면으로 급속히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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