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이 딴소리 내는 기이한 풍경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정말 어려운 '논술'

등록 2006.01.18 11:02수정 2006.01.18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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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통합형 논술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17일자 <중앙>의 1면 톱기사(위)와 통합형 논술의 높은 난이도는 비판할 게 안 된다고 주장한 <조선>의 18일자 사설(아래). 논조에 상당한 대조를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통합형 논술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비판한 17일자 <중앙>의 1면 톱기사(위)와 통합형 논술의 높은 난이도는 비판할 게 안 된다고 주장한 <조선>의 18일자 사설(아래). 논조에 상당한 대조를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희한한 광경이다.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는 광경이 아니다.

조·중·동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통합형 논술을 두고서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문제에 관해서만큼은 한 목소리를 내던 조·중·동이었다. 그랬던 조·중·동이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2006학년도 논술시험이 치러진 직후 나타나는 현상이다.

<중앙일보>는 어제 주요 대학의 2006학년도 논술 문제를 살펴본 후 이런 총평을 내놨다. 「어려운 논술…교수도 '채점 힘들어'」. 대학들이 변별력 때문에 논술 문제를 너무 어렵게 내는 바람에 문제를 이해조차 못하는 학생들이 많았고, 결국 사교육비 부담만 키울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1면 머릿기사와 4·5면 전면을 털어 이 문제를 집중 보도했던 <중앙일보>는 오늘 1면 대문을 또다시 열어 나름대로의 해법을 내놨다. 대학은 교과서와 추천도서에서 문제를 출제해야 하고, 정부는 '3불 정책'을 풀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앙일보>의 주장에 제동을 건 곳은 <조선일보>다. <조선일보>는 오늘자 사설을 통해 "대학들이 선택한 방향은 옳다"고 못 박았다. "대학들이 꾸준히 수준 높은 논술시험을 만들어 정착시켜 간다면… 우리 교육의 장래도 함께 밝아질 것"이라며 "우리 교육은 이쪽으로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했다.

사교육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중앙일보>의 주장도 반박했다. "사교육은 학벌에 대한 사회의 통념과 그에 따른 수급에서 비롯되는 것이지 논술이니 수능이니 하는 입시제도의 산물이 아니다"며 "교육 이슈만 나오면 습관적으로 사교육 문제를 꺼내드는 것은 여론을 오도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입장차가 크다. <중앙일보>는 사실상 통합형 논술 '반대'이고, <조선일보>는 '고수'다.


대체 이유가 뭘까?

이 뿐만이 아니다. <중앙일보>는 통합형 논술의 난이도를 조절하는 방법으로 교과서의 추천도서에 한정해서 제시문을 낼 것을 단기 대안으로 제시하는 한편 근본 대안으로는 '3불 정책' 폐지를 들었다. <중앙일보>의 주장대로 '3불 정책'이 폐지되면 최소한 통합형 논술의 중요성은 소멸된다.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가 부활하기 때문이다.


서울대 등이 입만 열면 했던 얘기는 변별력 확보였다. 이러던 차에 국·영·수 위주의 본고사가 부활한다면 논술보다 훨씬 객관적으로 점수를 매길 수 있는 방법이 마련되는 셈인데 굳이 부작용 많은 통합형 논술을 고수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국·영·수 본고사를 위한 사교육과 통합형 논술을 위한 사교육을 이중으로 받으라고 할 수는 없다. 적어도 <중앙일보>의 논리로는 그렇다.

<동아일보>도 엇비슷한 입장을 보였다. <동아일보>는 오늘자 사설에서 "논술시험이 본래의 취지대로 정착되려면 대학에 실질적인 학생선발권을 보장하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동아일보>의 주장은 '대체'가 아니라 '병행'이다. <중앙일보>와 입장이 갈리는 지점은 바로 이곳이다.

반면 <조선일보>는 '3불 정책'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사설에서 언급한 내용은 오직 통합형 논술이다. 과거 '3불 정책' 폐지를 주장했던 전력을 감안할 때 입장 선회로 보긴 어렵지만, 그렇다고 해서 <중앙일보>처럼 '통합형 논술 반대'는 아니다. <조선일보>는 통합형 논술이 우리 교육의 장래를 좌우한다고 했다.

궁금하다. 왜 입장이 갈리기 시작한 걸까? 이들 신문은 지난해 7월, 서울대의 통합형 논술시험 실시 방침에 대해 강력 대응을 천명한 당정을 향해 "대학 때려잡기"(조선일보), "한심하다"(중앙일보)고 했고, 당정의 기세에 눌리지 않고 통합형 논술시험 실시 입장을 고수한 정운찬 총장을 향해 "당당하다"고 칭찬했었다. 그랬던 신문들이 왜 이제 와서 각기 다른 입장을 내보이는 걸까?

힌트 : 평촌에 논술학원 개설한 <조선>, 논술사업 파트 꾸린 <동아>

통합형 논술에 대한 중간평가가 신문사별로 달라서일까? 그건 아니다. 통합형 논술 '고수' 입장을 표명한 <조선일보>조차 지나치게 난해한 문제점은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럼 뭘까?

앞으로 활발하게 진행될 통합형 논술에 대한 평가과정에서 이들 신문의 추가 입장 발표가 있을 터이니 이들의 '시각'이 뭔지를 알아볼 기회는 많다.

한가지 '사실'만 알고 넘어가자. <조선일보>는 지난해 6월 학생들을 앉혀놓고 논술을 가르치는 '논술센터'를 평촌에 개설했다. 수강생이 수백 명에 달한다고 한다. <동아일보>는 며칠 전 인사를 단행하면서 논술사업 전담 파트를 꾸렸다. 그것이 <조선일보>처럼 '오프라인 학원'인지는 불분명하나 논술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은 분명히 밝혔다.

반면 <중앙일보>는 논술사업에 대한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것이 논술사업을 안 하겠다는 뜻인지 여부는 밝혀지지 않고 있지만 <조선일보> <동아일보>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사실'이 하나 더 있다. 모 신문사도 서울 강남에 논술 학원을 차리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형 논술에 대해 그 어느 신문사보다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했던 곳이다. 하지만 이 신문사는 2006학년도 통합형 논술시험이 치러진 이후에도, 조·중·동이 갑론을박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사설을 통해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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