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동화 62] 얼음무지개 (3)

등록 2006.01.20 18:42수정 2006.01.2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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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수

그러던 어느 겨울날이었습니다.
소년과 작은 새를 얼음 속에 잠들게 했던 겨울바람이 또다시 그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무지개야 나오너라, 무지개야 나오너라 노래를 부르고 있나?'하며 얼음 속을 들여다 본 겨울바람은 흡족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제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저 얼음 속에서는 그 마음도 차가워질 수밖에 없지. 그나저나 이제 겨울도 막바지에 접어드는데 어디 또 얼음 속에 가둬놓을 만한 것이 없을까?'

겨울바람은 을씨년스러운 바람소리를 남기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습니다.

겨울바람이 지나간 자리에 눈꽃이 피어 햇살에 영롱하게 빛났습니다. 그 작은 눈꽃이 아침햇살을 받아 작은 물방울이 되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순간 작은 무지개가 나뭇가지에 걸렸습니다. 햇살을 받아 하나 둘 나뭇가지마다 무지개를 걸어놓은 것입니다.

잠에서 깨어난 소년은 또 꿈인가 싶었습니다.

"작은 새야, 일어나 보렴. 저기 무지개가 많아!"

작은 새는 소년의 들뜬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었습니다.

"무지개가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네."

날갯짓을 한 번 하기만 하면 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무지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지개였지만 둘은 아직도 얼음 속에서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새의 심장소리는 귀를 기울여야만 들릴 정도로 아주 작아졌고, 소년의 절름발이 다리도 얼어서 다시는 걸을 수 없는 것만 같이 야위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너무 오랫동안 얼음 속에서 갇혀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소년은 이제 품안의 작은 새의 심장이 곧 멈춰버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품안의 작은 새, 함께 무지개야 나오너라 노래를 불러주었던 작은 새, 진심으로 사랑했던 새, 얼음 속에서도 추운 줄 모르고 같은 꿈을 꾸며 행복하게 지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미안해..."

그러나 서로 사랑하지 않은지 오래되어서 그 말은 작은 새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작은 새도 사랑하는 이도 없는 세상을 놓아버리는 것에 대해서 미련이 없었는데 함께 무지개야 나오너라 노래를 불렀던 소년, 진심으로 사랑했던 소년, 얼음 속에서 그나마 추운 줄 모르고 소년의 품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습니다.

이 세상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작은 새는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상처를 주었던 지난 시간을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소년의 품에 안겨있기는 했지만 따뜻하기보다는 슬프고, 외로웠던 시간들이 떠올랐습니다. 소년도 마찬가지였겠지요.

"미안해..."

그러나 역시 작은 새의 이 말도 소년에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미안해..."하는 말이 서로에게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안 작은 새와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내 눈물이 이 얼음을 녹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내 품에 있는 작은 새가 죽기 전에 날갯짓 한번 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내 눈물이 이 얼음을 녹일 수 있게 해주세요. 그래서 겨우내 나를 품에 안고 있었던 소년이 맘껏 들판을 뛰어다닐 수 있게 해 주세요.'

하나님이 빙그레 웃으셨습니다.

"그래, 너희들 다시 사랑이 시작되었구나. 그리고 이젠 아픔들도 이겨낸 듯하고."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왔습니다.
겨울바람은 오는 봄바람을 더 이상은 막을 수가 없어 겨울나라로 돌아갔습니다.

따스한 봄바람 타고 바람꽃들이 깊은 숲에서부터 피어나기 시작했고, 깊은 숲 뿐만 아니라 온 들판 여기저기에도 봄꽃들이 솟아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바람꽃으로 시작된 어느 봄날 따사로운 햇살에 아지랑이가 피어올랐습니다.

아지랑이 피어나는 봄날, 소년과 작은 새를 가두고 있었던 얼음이 안에서부터 천천히 녹아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위의 동화는 하덕규(시인과 촌장)의 '얼음무지개'라는 노래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총 3회에 거쳐 연재했습니다. 이 작품은 큰딸 다희와의 공동작품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위의 동화는 하덕규(시인과 촌장)의 '얼음무지개'라는 노래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으며, 총 3회에 거쳐 연재했습니다. 이 작품은 큰딸 다희와의 공동작품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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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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