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은 왜 '아소 다로 망언'을 두둔하는가

대만 외교부장 "일본과 문제를 야기하고 싶지 않다"

등록 2006.02.07 12:23수정 2006.02.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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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높은 교육수준은 일본의 식민통치 덕분"이라는 아소 다로 일본 외무장관의 4일 발언을 두고 중국이 외교부 대변인 발언 등을 통해 강력 비판하고 있는 데 비해, 정작 당사자인 대만(중화민국)은 이를 전혀 문제시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일본을 두둔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열띤 대일(對日) 비판을 가하고 있는 중국인들을 머쓱하게 할 만한 현상이다.

뤼칭룽 대만 외교부 보도관(대변인)은 지난 5일 "일제 식민통치 기간 중에 대만이 근대화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일본 외무장관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고 발언했다.

다음 날인 6일에는 황쯔팡 외교부장(장관급)도 "이 문제로 일본과 문제를 일으키고 싶지 않다"는 발언을 하였다. 대만 텔레비전인 TVBS도 "(아소 다로 외무장관이) 반(反)중국, 친(親)대만의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며 아소 다로 장관을 두둔했다.

대만의 일반적인 분위기를 볼 때에, 대만인들은 아소 다로 장관의 발언에 적극 찬성하는 것은 아니면서도, 이를 문제 삼고 싶지 않다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다.

아소 다로 장관의 발언은 어느 국가가 듣더라도 불쾌하게 들릴 수 있는 표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만이 도리어 일본을 두둔하고 나오는 것에 대해 많은 한국인들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대만에서 오랜 기간 유학을 하고 돌아온 한국 연구자들도 흔히 하는 이야기가 바로 대만의 이러한 정서다. 한국보다 더 오랜 기간(50년) 동안 일제 식민통치를 경험한 대만 사람들이 일본의 지배에 대해 오히려 향수를 갖고 있다는 점이 쉽게 납득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의 원인에 대해서는 다음 몇 가지 주요 원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일본은 대만을 할양받은 1895년 이후 대만 저항세력을 철저히 '분쇄'했다. 청일전쟁 후 마관조약(하관조약, 시모노세키조약)으로 대만을 침탈한 일본은 대만이번(臺灣理蕃, 1896~1915년)이라는 '토벌'작전을 통해 저항세력을 철저히 '분쇄'했다. 한때 대만 내에서는 당징송이라는 인물을 대통령으로 내세워 독립 공화국을 세우려는 움직임이 있었었으나, 일본 해군대장 가바야마 스케노리 주도의 군사공격을 받아 실패하고 말았다.

1946~1948년 사이에 주한미군이 당시 90% 정도의 국민적 지지를 받던 한국 내 민족주의세력을 무력으로 학살한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역시 청일전쟁 이후의 20년 기간 동안 대만 저항세력을 무력으로 학살하였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미군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세력이 강한 생명력을 유지해 온 반면에, 대만 민족주의는 일본군의 탄압 앞에서 한국만큼의 생명력을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저항세력이 식민통치 초기에 사실상 완전 '분쇄'되었다는 점이 대만인들의 대일 비판정신을 약화시킨 것으로 보인다.

둘째, 장제스 국민당정권이 대만 국민들의 친일 성향에 한몫을 하였다. 1949년 공산당 군대에 패해 대만으로 도피한 장제스 국민당 정권이 친일 노선을 지향함에 따라, 일제 패망 이후 대만인들은 친일을 제대로 청산할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

셋째, 중국 본토에 대한 반발심리가 대만인들의 친일 성향을 부추기고 있다. '탈중국화' 노선을 걷고 있는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은 중국과의 대결구도를 위해 의식적으로 친일 노선을 걷고 있다. 달리 말하면, 꼭 일본이 좋아서라기보다는, 중국이 싫어서 그 반사작용으로 일본에게 다가가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넷째, 아직까지도 대만 고유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다. 대만인들은 스페인·네덜란드·중국·일본 등 외부의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번 아소 다로 장관의 망언의 경우에도, 주권국가라면 당연히 그러한 발언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였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본토를 의식하여 도리어 일본을 두둔한다는 것은, 아직까지 대만의 국가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대만인들이 쳐다보는 정체성이라는 '거울'에는 대만인 자신이 나타나는 게 아니라 본토 중국인들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통해 자아를 인식하는 게 아니라, '타인(중국)과 내가 다르다'는 점으로부터 자아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오랜 외부 침략을 받는 과정에서 대만인들이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확립할 기회를 갖지 못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보다 더 오랜 기간 그리고 더 많이 외세의 침략을 받은 한반도가 강한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과 좋은 비교가 된다고 하겠다.

지금까지 간략히 설명한 바와 같이, ▲일제 식민통치 초기에 대만 저항세력이 '분쇄'되었다는 점 ▲일제 패망 이후 친일적인 장제스 정권이 대만을 통치하였다는 점 ▲민진당의 탈중국화 노선이 중국에 대한 반발심리에 기인하여 의식적으로 친일 성향을 띠고 있다는 점 ▲대만이 아직까지 고유한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점 등이 원인이 되어, 이번 아소 다로 장관 망언의 경우와 같은 기현상이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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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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