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
이제 야미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방조제공사가 진행되면서 고군산군도 중에서 가장 먼저 육지와 눈을 맞추었다. 그 동안 신시도와 선유도를 가는 배들이 잠깐 지나갈 뿐 주목받지를 못한 섬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크게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60여 가구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야미도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70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에 이른다. 이 시기는 야미분교가 1970년 신시국민학교에서 분리 독립되어 1982년 다시 인구감소로 분교로 편입되던 시기에 해당된다.
지금 야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주민들도 출입증을 가지고 있어야 방조제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 외부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은 공사 현장사무소에서 방조제 출입구에 연락을 해주어야 가능하다. 야미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최근에는 횟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해주고 있다.
환경운동은 없어서도 안 되고 너무 세서도 안 되고
환경에 대해서라면 야미도 사람들 할 말이 많다.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언제 환경단체들이 갯벌에 관심을 가졌으며 바다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적이 있냐는 것이다. 방조제가 막아지기 전에는 동진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오물들이 야미도와 신시도까지 밀려들어와 조업이 곤란할 정도가 된 적도 있었다.
방조제가 막아지면서 육지가 되고 뱃길대신 자동차길이 열렸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야미도 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진강 상류에서 오물은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킬레스건이 된 수질문제도 많이 양호해져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바닷고기는 예전에 비해서 턱없이 줄어들었다. 횟집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을 빌리지만 '환경(운동)은 없어서도 안되고, 너무 세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야미도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중립적인 주민의 의견이라고 생각된다.
갯벌에 나는 패류 중 환경에 가장 민감한 것이 '생합'이라면, 바다고기 중에는 단연 '복'이라고 한다. 이것들이 이곳 어민들에게는 생태지표인 셈이다. 부안의 갯사람들에게 생합이 얼마나 나오는가 하는 것이 갯벌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신시도와 야미도를 비롯해 고군산 군도의 어민들에게는 복이 얼마나 잡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복도 많이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