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섬이야기 27] 육지가 된 섬, 군산 야미도

등록 2006.02.13 18:42수정 2006.02.13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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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도의 면적 94.6ha 중 임야가 87ha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밭이라고 해야 4.6ha에 지나지 않는다. 육지와 연결되기 전까지 해태와 멸치 낭장망로 먹고 살았지만 김양식은 새만금 사업과 함께 중단되었고, 멸치잡이는 해파리가 준동하고 방조제가 막히면서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알음알음으로 방조제를 통해 들어오는 횟집 손님들과 방조제 공사장 인부들을 대상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요즘 야미도 사람들의 살림살이이다.

이 섬은 군산항에서 40km 떨어져 있어 10여 년 전까지 여객선으로 1시간 20분이 소요되었다. 옛날부터 마을 뒷산에 밤나무가 많아 '밤섬'이라 불렀다. 굳이 한자로 이름을 진다면 율도(栗島)가 되어야 할 일이나 음을 따서 '야(夜)'를 가져오고 밤이 맛이 있었던지 '미(味)'를 더해서 야미도가 되어 버렸다.


김준

김준
군산항과 가장 가까운 섬, 육지가 되었다

야미도를 육지로 만든 새만금방조제 4공구를 지나 마을 뒷산을 돌아서면, 먼저 몇 채의 가건물과 낚시꾼을 위한 컨테이너 박스가 눈에 들어온다. 멀리 산 밑자락에 40여 채의 집들이 자리를 잡고, 마을 앞에 꽤 나이를 먹은 아름드리 나무숲이 교회를 감싸고 있다. 그 앞은 신시도와 마주보는 넓은 공터가 마련되어 있다. 이곳은 과거에 바다였을 것이다. 군산시에 주최하는 새만금 마라톤이 열리는 곳이기도 하다.

이 섬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항변이라도 하듯, 마을로 들어가는 길목에는 (정월) 초사흘을 쇤 것인지 제사를 지내고 사자밥을 내놓은 것인지 음식이 차려져 있다. 이런 모습은 시골이건 도시건 골목길에서 아침에 쉽게 볼 수 있었다.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긴 했지만 죽음을 면키 어려울 터인데 요즘 길거리에서 사자밥 보기도 쉽지 않다. 보름에 집 앞에 대문 옆에 내놓는 '보름밥'도 마찬가지이다. 단지 의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먹이가 궁한 겨울철 산짐승, 날짐승들과 나누어 먹는 선조들의 지혜가 깃들어 있다.

서남해안의 도서지역은 육지에 비해서 기독교의 보급과 활동이 매우 두드러진 곳이다. 야미도를 비롯해 고군산군도의 대부분의 섬들도 '성결교회'가 활동 중이다. 야미도는 1963년 복음활동을 시작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민들의 증언에 의하면 교회가 들어오기 전까지 음력 11월과 12월 중에 좋은 날을 택해 마을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당시 제주는 간장과 소금만 가지고 식사를 했으며 제물로 사용될 돼지는 일 년 중 아무 탈이 없는 집에 맡겨서 키워서 잡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켜졌다. 새벽 2시 경 제가 끝나면 마을주민들이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풍장을 울리며 산으로 올라가 재앙을 내쫓고 풍어를 기원하고 나서 제사음식을 볏짚에 싸서 바다에 띄웠다고 한다. 지금은 그 풍습이 위도에서 확인되고 있지만 과거에는 많은 도서지역에서 행해졌던 의례였다.

김준

김준
이제 야미도는 더 이상 섬이 아니다. 방조제공사가 진행되면서 고군산군도 중에서 가장 먼저 육지와 눈을 맞추었다. 그 동안 신시도와 선유도를 가는 배들이 잠깐 지나갈 뿐 주목받지를 못한 섬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상황이 크게 좋아진 것 같지는 않다. 새만금사업이 시작되기 직전에 60여 가구에 이르렀지만 지금은 40여 가구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야미도가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1970년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약 10년에 이른다. 이 시기는 야미분교가 1970년 신시국민학교에서 분리 독립되어 1982년 다시 인구감소로 분교로 편입되던 시기에 해당된다.

지금 야미도는 육지와 연결되었지만 자유롭게 왕래할 수 없다. 주민들도 출입증을 가지고 있어야 방조제를 통해서 들어올 수 있다. 외부인들이 출입할 수 있는 방법은 공사 현장사무소에서 방조제 출입구에 연락을 해주어야 가능하다. 야미도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주민들의 강력한 반발로 최근에는 횟집을 드나드는 사람들에 한해서는 제한적으로 출입을 허용해주고 있다.


환경운동은 없어서도 안 되고 너무 세서도 안 되고

환경에 대해서라면 야미도 사람들 할 말이 많다.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기 전에 언제 환경단체들이 갯벌에 관심을 가졌으며 바다환경에 대해서 이야기해 본적이 있냐는 것이다. 방조제가 막아지기 전에는 동진강 상류에서 내려오는 오물들이 야미도와 신시도까지 밀려들어와 조업이 곤란할 정도가 된 적도 있었다.

방조제가 막아지면서 육지가 되고 뱃길대신 자동차길이 열렸지만 잃은 것도 적지 않다. 야미도 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동진강 상류에서 오물은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새만금사업이 진행되는 동안 아킬레스건이 된 수질문제도 많이 양호해져 나쁠 것이 없다. 하지만 바닷고기는 예전에 비해서 턱없이 줄어들었다. 횟집에서 만난 한 주민의 말을 빌리지만 '환경(운동)은 없어서도 안되고, 너무 세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야미도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중립적인 주민의 의견이라고 생각된다.

갯벌에 나는 패류 중 환경에 가장 민감한 것이 '생합'이라면, 바다고기 중에는 단연 '복'이라고 한다. 이것들이 이곳 어민들에게는 생태지표인 셈이다. 부안의 갯사람들에게 생합이 얼마나 나오는가 하는 것이 갯벌상태를 확인하는 것이라면, 신시도와 야미도를 비롯해 고군산 군도의 어민들에게는 복이 얼마나 잡히느냐에 의해 결정되었다. 방조제가 막히기 전에는 복도 많이 잡았다.

김준

신시도에서 바라도 야미도, 공사현장 너머 멀리 보이는 야미도.
신시도에서 바라도 야미도, 공사현장 너머 멀리 보이는 야미도.김준
해방이 되면서 먹고 살길이 없는 야미도 어민들에게 식량과 같은 것이 '노랑조개'였다. 끌방(고데구리)를 이용해 잡은 노랑조개 덕에 배고픈 시절을 넘겨 부안을 비롯해 이곳 어민들은 노랑조개를 '해방조개'라고 부르기도 한다. 노랑조개가 사라지면서 시작된 어업은 김 양식이었다. 마을 주민들 대부분이 김양식에 종사했었다. 야미도보다 먼저 선유도에서 김양식을 시작했으며, 주민들 대부분이 참여할 정도로 부흥이 되었던 것은 남도 사람들이 와서 양식을 시작하면서였다. 새만금 방조제가 막히면서 김양식은 중단되었고, 어촌계공동어장을 비롯해 개인 양식에 대한 보상들이 이루어졌다. 보통 7-8천만 원의 보상이 이루어졌는데 5-6년에 걸쳐서 나누어 1천여만 원씩 분할 지급되는 통해 이렇다 할 투자도 하지 못하고 겨우 빚을 갚거나 가계비용 등 푼돈으로 써버리고 어장만 잃는 꼴이 되고 말았다. 어떤 주민은 보상금 믿고 돈을 쓰다 망해서 마을을 뜨기도 했다.

새만금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160ha의 어장에 김과 미역양식을 양식했었다. 주소득원이 해태양식이던 시절에는 인력난으로 인해 경남과 전남에서 높은 임금을 주고 데려와야 할 정도였다. 당시 호당 소득이 1200여만 원에 이를 정도였으며, 고군산열도에서 비교적 높은 편에 속했다.

지금 야미도에서는 10여 호가 낭장망을 이용해 멸치를 잡고 있다. 2005년에는 해파리가 몰려드는 통해 제대로 그물 한 번 펴보지 못하고 멸치철을 넘겼다. 야미도 포구에는 너 댓개의 멸치 삶는 솥이 방조제를 향해 녹물을 토해내고 있다. 낭장망은 자루모양의 긴 조망 양망을 닻이나 말목 등으로 고정시켜 강한 조류를 이용해 멸치, 실치, 잡어 등을 잡는 어구이다. 주로 3월부터 11월까지 서해남해안 일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낭장망을 처음 고군산군도에 전파한 사람들은 여수사람으로 1965년 장자도에서 시작되어 1970년도에 확산되어 1980년대에는 고군산군도 내에서만도 900여 통의 낭장망이 설치되어 멸치 등을 잡았다.

김준

김준
당장 할 것이 없어서 시작한 횟집들

차를 가지고 방조제를 통해서 오가는 주민들이 많아지고 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줄어들면서 여객선이 끊겼다. 야미도 주민들은 군산 등 뭍으로 나가려면 차를 이용해 방조제를 타고 나가야 한다. 과거 배를 이용할 때 보다 포장길이나 차고장도 많고 돈도 많이 들어가고 있다.

김제의 인구는 가장 많을 때 30만에서 10만으로 줄어들었다. 농업의존도가 높은 김제는 새만금효과를 거의 보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새만금 방조제의 배수갑문 2개를 포함해 대부분이 군산시 지역에 해당하며, 부안의 새만금 전시관을 비롯해 관광객들이 대부분 이곳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김제는 바다와 갯벌을 모두 잃게 되는 반면에 부안과 군산은 바다가 남아 있다.

야미도 인근 해역에서도 옛날에 비해서 고기가 잡히지 않고 있다. 바닷고기들이 산란시기가 되면 저염도 해역에 와서 산란을 하는데 강이 막히면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 고기들이 나오지 않는다. 최근에 멸치잡이를 하는 어민들이 몇 가구 있지만 이것도 금강 쪽에서 흘러오는 것 조금 잡는 수준일 뿐이며 작년에는 전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양식도 어렵고 고기잡이도 신통치 않게 되면서 주민들이 선택한 것이 식당을 겸한 횟집이었다. 처음에는 불과 두서너 집에 불과하던 가게들이 하나둘씩 늘어나고 공사인부들의 밥을 해주면서 지금은 열댓 집으로 늘어났다. 그렇다고 외부인들이 맘대로 이곳을 드나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비응도에서 4공구 방조제로 들어가는 곳에서 공사차량과 관련자들의 차량이 아니면 출입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당장 헐게 없으니까 이거라도 유지 헐라고 헌 것이지요."
"들어 갈 집 알고 오지요."
"한번 씩 와본 사람들만 와요."
"이거(식당)라도 헐라며 빨리 되어허고, 고기라도 잡으려면 (공사를) 막아야허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횟집에서 만난 야미도 주민의 이야기는 절실하다. 횟집이라도 유지하고 먹고 살라면 빨리 공사가 마무리되어 도로 포장되고 사람들이 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야미도에 횟집을 하는 김태영씨는 당시 새만금 사업으로 인한 어업보상금으로 3천여만 원의 빚을 갚고 나니까 남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마을주민들은 장사가 되는 것과 관계없이 포장마치나 횟집이라도 있으니까 사람 모습을 볼 수 있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이곳을 떠났을 것이라고 한다. 지금도 일부 어민들은 7월부터 10월까지 멸치 철이 되면 들어와 멸치잡고, 철 지나면 나가서 군산 등 도시에서 생활하고 있다. 횟집을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이야 죽으나 사나 야미도에 방조제를 바라보며 살고 있다.

김준

김준
허가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있지만, 주민 절반이 낚시 배를 운영하고 있다. 고군산군도는 4월부터 11월까지 태공들이 즐겨 찾는다. 바다를 열었다는 수성당의 '개양할미' 덕분인지 이곳에는 고기가 많아 손맛을 즐기려는 낚시꾼들에게 인기가 좋다. 그렇다고 횟집에 필요한 고기들이 야미도 인근에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야미도에 횟집은 포장마차처럼 가건물로 지은 집까지 해서 모두 19개에 이른다. 가구 수에 절반에 이르는 사람들이 횟집을 운영하고 있다. 야미도 횟집에 나오는 활어들은 양식되지 않는 자연산들이다. 이곳 바다는 양식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 탓에 멀리 어청도에서 고기를 받아오기도 한다.

전라북도에서는 야미도 인근 신시도에 세계 최고의 타워를 세우겠다고 조감도를 그리고 난리법석이다. 마을 앞 방조제 도로에는 돌을 실은 트럭들이 줄지어 달리고, 돌을 담은 돌망태들을 성처럼 쌓여져 있다. 마지막 물막이 공사를 앞두고 바다와 갯벌을 사이에 두고 긴장감이 흐른다. 주민들은 새만금 사업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 이지만 공사가 지연되면서 일상생활에 많은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 여기에 방조제 밖에 고기마저 잡히지 않아, 완공되고 나서 주민들에게 방조제가 '빛 좋은 개살구'가 되지 않을까 우려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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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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