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 일본 앞에만 서면 작아진다

최근 동북아 스케치 ③

등록 2006.02.16 11:39수정 2006.02.16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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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한국인들이 북한에 대해 갖고 있는 고정 관념 중 한 가지는 '북한은 외교만큼은 잘 한다'는 것이다. 물론 북한이 대담한 대미(對美) 외교를 구사하고 있고 또 한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교력이 나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북한의 인적·물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만큼 북한 외교라고 해서 언제나 완전할 수는 없는 것이다. 특히 대일(對日) 외교에서 북한은 현재 여러 가지 문제점을 노출하고 있다.

또 북한이 대일 외교에서 노출하고 있는 약점들은 북미관계와 중일관계에서 발생하는 이점들을 희석시킬 만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미국과의 핵문제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얻고 있는 이점과, 중국의 야스쿠니 비판을 통해 간접적으로 얻고 있는 이점을 북한은 대일 외교에서 일정 정도 잃고 있는 것이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2002년 정상회담).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2002년 정상회담).일본 외무부 홈페이지
북한의 대일 외교는 대미 외교보다 못해

북한의 대일 외교가 세련되지 못하다는 점은 최근 수년간의 몇 가지 사례를 통해서도 잘 드러나는 것이다. 여기서는 ▲소위 '가짜 유골' ▲북·일 협상 전략에 국한하여 논의하기로 한다.

2004년 11월 북한은 소위 '납치 피해자'인 고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일본에 반환하였다. 그러나 1개월 뒤인 12월 8일 일본정부는 그 유골이 가짜로 판명되었다고 발표하였다. 그 후 일본측 발표의 신뢰성을 두고 국제적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지만, 문제의 본질은 '유골의 진짜 여부'에 있지 않는 듯하다.

일본정부의 행위에 대한 도덕적 평가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이 문제가 북·일 간의 외교적 대결에서 어떤 작용을 하고 있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자국의 국가적 목표를 위해서라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국제정치 현실 속에서, 일본의 진정성 여부를 탓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큰 의미를 갖기 힘들 것이다.


문제는, 일본측 주장이 정말이든 거짓이든 간에 북한이 이 문제 때문에 현실적으로 곤란을 겪고 있으며, 또 북한 외교라인이 그 같은 일본의 공략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북한정부가 '납치 문제'에 대해 처음부터 '심사숙고'하지 못했다는 점은 2004년 11월의 유골 반환 과정에서부터 잘 드러나는 것이다. 일본의 목적이 '유골 회수'보다는 '대북 압박'에 있음이 명확한 상황에서, 북한은 유골을 '쉽사리' 반환하였을 뿐만 아니라, 공정한 3자의 참여가 보장되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정부에게 감정을 내맡긴 것이다.


이미 유골을 넘겨준 이상, 그것이 진짜든 가짜든 간에 북한은 적어도 유골에 관한 한 일본에게 할 말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것이 고 요코다 메구미의 진짜 유골이라고 해도, 이미 일본의 수중에 넘어간 이상 상황을 역전시키기는 힘들다. 그리고 일본측 주장대로 그것이 가짜라면, 북한으로서는 더 더욱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일본이 '가짜 유골'을 명분으로 북한을 '파렴치범'으로 몰고 있는 상황에서 증거자료를 이미 일본에 넘겨준 이상, 북한으로서는 적어도 납치문제에 관한 한 앞으로 일정 기간 수세적 입장에 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심사숙고 없이 결정된 '유골 반환'

다음으로, 북·일 협상에서도 북한은 쟁점 선정 및 홍보에 있어서 일본에게 밀리는 인상을 주고 있다. “북·일 협상, 무엇을 논의했나?”(<오마이뉴스> 2월 8일자 기사)에서 소개한 바와 같이, 최근 북·일 협상의 3대 의제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양국 간 '과거사' 문제였다.

그런데 일본이 과거사 중에서 '납치 피해자' 문제만을 집중적으로 특화시킨 반면, 북한은 과거사 전반에 대해 포괄적으로 접근하는 자세를 보여 주었다. 이로 인해, 보다 구체적이고 또 피부에 와 닿는 '납치 피해자' 문제가 한층 더 두드러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과거사 전반을 다루는 북한의 문제제기는 '귀에 쏙 들어오는' 납치문제에 묻히고 만 것이다.

그리고 중국은 야스쿠니 비판을 통해, 일본의 '원죄'를 부각시켜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또 일본 내 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데 비해, 북한의 대일 비판은 그러한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북한이 제기하는 쟁점 역시 충분히 일본 내 여론을 분열시킬 만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것은, 일본측이 북한의 문제제기를 역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 청산과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북한의 요구는 정당한 것이지만, 일본은 그러한 북한의 의도를 '돈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북한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을 유도하고 있다.

야스쿠니 비판의 경우에는 특별히 '돈 문제'와 연계될 것이 없는 반면, 북한이 제기하는 과거사 쟁점들은 '색안경'을 끼고 볼 경우 얼마든지 '돈 문제'와 연관될 수 있는 것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북한의 다급한 경제사정을 부각시키면서, 북한의 의도가 과거사 청산보다는 '돈 문제'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번 북·일 협상의 일본측 대표들이 언론에 흘려보낸 정보 역시 북한이 '돈'에 관심이 있다는 식의 정보였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북일수교의 전제로 과거사를 청산하고 정당한 배상을 얻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이 같은 북한의 의도는 일본측의 홍보전략 앞에서 퇴색하고 있다. 이는 자신이 제기한 쟁점을 홍보하고 또 보호하는 면에서 북한이 일본보다 뒤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납치 피해자'에 묻히고 있는 북한의 과거사 비판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대미 외교에서는 자국의 입장을 잘 부각시키는 북한이 유독 대일 외교에서만큼은 일본의 '페이스'에 휘말리면서 도리어 공연한 의심을 사고 있다. 이는 북한의 대일 외교가 대미 외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량이 낮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또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이 핵문제에서 직접적으로 얻고 있는 효과와, 야스쿠니 문제를 통해 간접적으로 얻고 있는 효과가 '납치 문제'로 인해 일정 정도 상쇄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럼, 이처럼 북한이 일본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에 관해서는 마지막 제4편에서 논의하기로 한다.

(제4편으로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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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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