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외교가 일본 앞에서 무기력한 이유

최근 동북아 스케치 ④

등록 2006.02.18 13:20수정 2006.02.18 15:53
0
원고료로 응원
2월 8일 베이징 북·일 협상 이후 일본에서는 또다시 대북 제재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집권 자유민주당(자민당)과 제1야당 민주당 등에서는 '일본판' 북한인권법의 국회 통과가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대북 압박이 뒷심이 다소 약한 데 비해, 일본의 대북 압박은 상대방을 '파렴치범'으로 몰면서 줄기차게 전개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일본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보다는 '수비'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고 요코다 메구미의 유골을 쉽사리 넘겨줌으로써 '가짜 유골' 논란을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북·일 협상에서도 쟁점 선정 및 홍보에서 일본에 밀리고 있다.

a

2002년 북일 정상회담(평양). ⓒ 일본 외무부 홈페이지

북미관계에서는 미국을 상대로 대담한 외교를 선보이고 있는 북한이 이처럼 대일관계에서는 일본에 밀리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점과 관련하여 다음 3가지 점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래에서는 세 번째 이유를 중점적으로 살펴보기로 한다.

첫째, 북한 외교가 일본 앞에서 무기력한 것은 현재 북한의 외교 역량이 북미관계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강 미국의 압박 공세 앞에서 공포심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북한 지도부는 외교 역량의 절대적 부분을 대미 관계에 투자하고 있다. 모든 촉각이 미국에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북한의 대일 외교 역량은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북한 외교가 일본 앞에서 무기력한 것은 상대적으로 일본이 북한을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일본은 한반도 정복을 위해서 충분한 '공부'를 했을 뿐만 아니라 한반도를 통치하는 동안에도 상당량의 정보를 수집했으며, 오늘날에도 일본은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지식을 한국보다도 더 많이 축적하고 있다. 한국학을 공부하려는 연구자들이 서울행이 아닌 도쿄행 비행기에 탑승하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북한 외교 대미관계에 치중, 일본이 상대방을 더 잘 알아

셋째, 북한 외교가 일본 앞에서 무기력한 것은, 북한 지도부가 '메이지유신(1868년) 이후 일본 대외관계의 기본 특성'에 대해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비단 북한뿐만 아니라 한국 등 다른 동북아국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오늘날 일본 대외관계의 원천적 힘은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 이는 마치 태아가 탯줄을 통해서 모체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기 위해 1868년부터 현재까지의 일본 대외관계를 간략히 개괄해 보기로 한다.

메이지유신 직후만 해도 일본은 동아시아의 전통적 방식으로 자국의 역내(域內) 위상을 높이려 하였다. 그러나 대한(對韓) 및 대중국 외교에서 이것이 실패하자, 일본은 중일수호조규 체결(1871년) 이후로 동아시아적 외교 방식에서 벗어나기로 했다(탈아외교, 脫亞外交). 다시 말해, '서구적 방식'으로 동아시아에서의 대외관계를 전개하는 쪽으로 선회한 것이다.

그리하여 1874년 대만 침공을 시작으로 일본은 탈아외교 노선을 본격화했다. 하지만, 1894년 이전까지 일본의 '성적'은 그리 대단한 것이 못 되었다. 그것은 서구열강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탈아외교는 '서구적 방식 +서구열강의 지원'이라는 조건이 성립되어야만 기능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조건은 1894년 중반부터 성취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일본은 서구열강의 암묵적 지원을 바탕으로 청일전쟁을 도발하였으며, 이 전쟁을 통해 강력한 라이벌인 중국을 제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일본은 1902년에는 영국을, 1905년에는 미국을 동맹국으로 만듦으로써 동아시아에서의 입지를 보다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 이후 1922년까지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비교적 안정적 지위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영국·미국과의 협력 때문이었다.

1894~1922년 기간에 영·미 양국은 일본에게 원천적 힘을 불어넣어 주는 존재인 동시에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지 않도록 통제하는 존재였다. 이 시기에 일본이 중국침략을 가속화시키지 못한 것은 바로 영·미의 통제 내지는 견제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1922년 영·미 양국과의 관계에 금이 생긴 이후로 일본 외교는 균형을 상실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일본의 팽창 의욕을 통제할 만한 강대국이 없어졌으며, 그 '덕분'에 일본은 중국정복을 위해 '브레이크 없는 무한질주'를 할 수 있었다. 이성을 상실한 채 무모한 대외침략을 감행한 일본은 결국 1945년 2방의 원자폭탄을 맞고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무조건 항복한 일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미국의 강력한 통제였다.

일본의 군사적·경제적 성장으로 인해 상당 부분 약해지기는 했지만, 일본에 대한 미국의 통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일본의 '서구 의존도' 특히 대미 의존도는 1894~1922년 기간에 비해 1945~현재까지의 기간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오늘날 일본 대외관계의 원천적 힘은 바로 미국에서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의 힘'은 미국에서 나온다

이처럼 원천적 힘이 미국에서 나오고 있으므로, 주변국들이 아무리 과거사 문제를 명분으로 공격을 한다 해도 일본은 아무 두려울 것이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아무리 과거사 피해배상을 요구하고, 한국이 아무리 역사 교과서 시정을 촉구하고 혹은 독도에 대한 야심을 버리라고 주문해도 일본은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일본이 '탯줄'을 통해 미국으로부터 '영양분'을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미국이 뒤에서 버티고 있는 한, 일본은 주변국들의 공격에 심리적 위축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미-일 간의 '탯줄'을 제거하지 않는 한 아무리 일본의 죄악을 비판한다 해도 효과를 거두기가 힘든 것이다.

주변국들이 일본의 범죄를 비판할 때, 배후에서 일본을 비호하는 미국의 역할을 폭로하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는 미일관계에 불편을 가져오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미국에 대한 일본의 심리적 의존을 불안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일본'만'을 상대하는 상황에서는 판도가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중소 국가라면 모르겠지만 세계 '정상급'의 국력을 보유한 일본을 상대하려면, 그 배후를 먼저 차단하는 게 순서일 것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최근 미일관계를 불편하게 만듦과 동시에 일본 내 여론을 분열시키고 있는 중국의 야스쿠니 비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일본 군국주의의 '주범'이라 할 수 있는 야스쿠니신사가 패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존속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비호에 힘입은 바 크다.

이처럼 미국의 동북아 패권전략과 논리적으로 연결된 야스쿠니신사를 비판함으로써 중국은 일본에 대한 미국의 비호를 차단함과 동시에 일본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효과를 낳고 있다.

야스쿠니 문제가 격화되면 될수록, 문제의 본질인 미국의 '원초적 부도덕성'으로 이목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이는 동북아의 리더가 되고자 하는 미국에는 도덕적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야스쿠니 문제의 격화는 일본을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는 국제적 포위망을 형성하여 북한을 고립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전략에 지장을 가져오는 것이다.

미국이 최근 일본의 역사인식을 탓하고 일본에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이나, 그로 인해 미일관계가 불편해지고 있는 것이나, 또 일본 내 여론이 분열하고 있는 것은 중국의 야스쿠니 비판이 미-일 간의 '탯줄'을 차단하는 기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이나 북한도, 미국의 비호를 차단하지 못하는 한 대일 비판에서 큰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과거사 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을 비판하려면, 일본만 비판할 게 아니라 일본을 비호하고 있는 미국의 역할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이 더욱 더 효율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

미·일 간의 '탯줄'을 끊으려면 미국을 드러내야

미국의 역할을 드러냄으로써 미국을 무대에 끌어들이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일본에 대한 미국의 은밀한 비호를 차단하는 것은, 미일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인 동시에 일본을 심리적으로 고립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외교력의 약화로 연결되는 것이다. 동북아국가들이 일본'만'을 상대할 경우에는 큰 외교적 부담을 지겠지만, 이처럼 미국을 끌어들이는 경우에는 미국의 힘을 빌려 일본을 견제할 수 있는 길을 트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이 일본의 대북 압박을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하고 일본에 끌려다니는 것은, 일본과 미국을 이어 주는 '탯줄'의 기능에 더욱 큰 주의를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의 탈아외교가 '탯줄'을 통해 미국 등 서구로부터 원천적 힘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과거사 문제를 명분으로 일본'만' 비판하기 때문에 더욱 더 큰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것이다. 과거사 은폐 배후에 미국의 비호가 있다는 점을 비판하지 않는 한, 그 어떤 진지한 대일 비판이라고 해도 실효를 거두기는 힘들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AD

AD

AD

인기기사

  1. 1 '100개의 눈을 가진 모래 속 은둔자', 낙동강서 대거 출몰
  2. 2 국가 수도 옮기고 1300명 이주... 이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3. 3 '삼성-엔비디아 보도'에 속지 마세요... 외신은 다릅니다
  4. 4 장미란, 그리 띄울 때는 언제고
  5. 5 "삼성반도체 위기 누구 책임? 이재용이 오너라면 이럴순 없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