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이 남북정상회담 '꺼리는' 까닭

'잔칫상' 마련보다는 '잔치 분위기' 조성이 중요

등록 2006.02.22 14:54수정 2006.02.23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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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내에서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정부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답방 또는 제2차 정상회담을 실현시키려면, 다른 쪽 당사자인 김정일 위원장이 이 문제에 대해 어떠한 기본 인식을 갖고 있는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

북한 지도부는 다음과 같은 두가지 조건 중 하나가 실현 가능하다는 확신을 가졌을 때 제2차 정상회담 혹은 답방을 진지하게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한 가지는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강화된 경우이고 또 한 가지는 김정일 위원장이 한국 국민들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기는 경우다. 그럼 두가지 경우를 구분하여 설명하기로 한다.

북한이 생각하는 제2차 정상회담의 조건

첫째, 김 위원장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발언권이 강화되었다는 판단이 들 때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고려할 것이다. 왜냐하면 주변국들의 견제가 심한 상황에서 아무런 발언권도 없는 한국정부를 상대로 '민족공조와 통일'을 위한 담판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정부의 발언권이 강화되는 경우는 다시 두 가지로 세분된다. ▲한국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적극적으로 자주노선을 추구하는 때 ▲한반도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약화되어 그 반사작용으로 한국정부의 입지가 강해지는 때.

비록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1994년 7월에 북한측이 남북정상회담에 적극성을 보인 것은 당시의 상황이 위 두 번째 경우에 해당했기 때문이다. 구 소련 붕괴를 계기로 당시 동북아에는 탈냉전의 '훈풍'이 불었으며, 이러한 정세 변화를 기회로 남북관계·한중관계·북일관계 등에 새로운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미국 영향력이 상대적 퇴조


1993년부터 미국이 북·미 핵문제를 일으키며 동북아 단속에 나서기는 했지만, 그 당시는 이전에 비해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해진 시기였다. 북한이 이 시기에 남북정상회담에 열의를 보인 것은 이 같은 정세 변화를 배경으로 한 것이다.

김영삼 당시 대통령이 자주노선을 추구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의 영향력 약화의 부수 효과로 한국정부의 입장이 개선되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로서도 남북정상회담의 효과에 대한 기대를 가져 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후로는 1994년 10월 북-미 제네바 합의서를 계기로 동북아 정세가 다시 잠잠해졌기 때문에, 북한도 남북정상회담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2000년에는 미국 영향력 퇴조와 한국정부 열의 두드러져

그러면 2000년 6월 15일의 김대중-김정일 회담의 경우는 어떠한가? 당시는 미국의 동북아 영향력이 다시 이완되기 시작하였을 뿐만 아니라 북한도 '고난의 행군' 이후 경제·외교 분야에서 '옛 실력'을 회복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김대중 정부 역시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 하더라도 대북관계에 열의를 보이고 있었다.

이와 같이, 미국의 영향력이 점차 퇴조하는 동시에 한국정부가 자주외교에 대해 어느 정도의 열의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정부를 만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례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북한은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 정부의 발언권이 강화되거나 혹은 미국의 영향력 퇴조로 인한 반사작용으로 한국정부의 입지가 강해지는 경우에 차기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고려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처럼 한국정부가 대미 종속적 경향을 도로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시 말해 한반도 문제에 관한 한국의 발언권이 약해지고 미국의 영향력이 다시 강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정부가 한국정부와의 담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소득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둘째, 위 첫 번째 경우에 비해서는 중요성이 떨어지지만 김정일 위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북한 지도부가 한국 국민들로부터 신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들 때에 남북정상회담의 필요성을 고려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 지도부는 한국정부나 한국국민 둘 중에 하나라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경우에 한해 정상회담에 임한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열린 제1차 남북정상회담 때 김대중 대통령보다는 김정일 위원장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부각될 수 있었던 것은, 한국보다는 북한이 자기 지도자의 이미지 관리에 더 많은 심혈을 기울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자료사진)
2000년 6월 15일 제1차 남북정상회담.(자료사진)사진공동취재단
선거철 정상회담 논의는 북한 신뢰 못 얻어

그런데 한국 국민들의 관심이 선거에 집중된 시기에 남북정상회담 논의가 일거나 혹은 정상회담이 실제 열린다면, 그 효과는 북한 지도부보다는 한국 집권여당에게 돌아갈 것이다. 다시 말해, 북한 지도부는 그저 들러리 신세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북한 지도부가 '한국 국민들에게 김정일 위원장의 이미지가 어떻게 비쳐지고 있는지'를 중시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선거철에 제기되는 남북정상회담 논의에 대해 북한이 얼마나 진지한 관심을 쏟을 것인가는 굳이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는 북한 지도부에게 한국정부의 통일의지에 대한 의구심을 심어 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두 번째 경우는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이고, 위 첫 번째 경우가 가장 본질적이고 중요한 문제다. 한국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해 어느 정도의 발언권을 갖느냐, 한국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어느 정도나 자주적이 되느냐가 북한 입장에서는 중요한 것이다.

북한정부가 한국정부의 자주노선을 바라는 것은 단순히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정부가 자주적이 되지 않으면 한반도 문제를 놓고 한국정부와 이야기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별다른 결정권도 없는 측과 진지한 대화를 나눈다는 것 자체가 모양새 우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자주적이 된다고 하여 그것이 곧바로 대북(對北) 종속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 지금 이 단계에서는 북한이 남한을 종속국가로 둘 만큼 '유능'한 것도 아니다.

한국정부가 대미관계에서 자주적이 된다는 것은 '내 자신의 문제'에서 내 스스로 주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그것은 남과 북의 두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관한 결정권을 공유하게 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 성사의 가장 본질적인 조건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한국정부에게 중요한 것은 당장에 '잔칫상'(정상회담)을 마련하기보다는 잔치를 열 수 있는 분위기(자주외교)를 조성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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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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