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388회

등록 2006.03.15 08:16수정 2006.03.15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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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생각은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담천의는 일단 그녀의 위에서 덮치려는 듯 했다. 이미 그의 오른손은 빠르게 그녀의 허벅지를 타고 올라 허리를 감으려 하다가 젖가슴을 잡아가고 있었다.

“아악---!”


그녀는 우악스럽게 자신의 젖가슴을 잡아오는 담천의를 보며 무의식중에 비명을 토해냈다. 어느 틈엔지 왼쪽 젖가슴이 담천의의 손에서 일그러지며 무지막지한 고통이 밀려들었다. 그 순간 그녀의 오른쪽 무릎이 담천의의 아랫배를 걷어찼다.

“헉---!”
“악----!”

나직한 담천의의 신음과 고통스런 유항의 비명이 동시에 터졌다. 아랫배를 얻어맞은 담천의의 몸이 부르르 떨며 주춤거리자 유항은 얼굴을 찌푸리며 그의 몸 아래에서 빠르게 몸을 빼내 뒤로 물러섰다. 잡혀있던 젖가슴이 담천의의 손에서 빠져나오며 손톱에 긁혀 시뻘건 자국이 뚜렷했고, 핏물마저 배어나오고 있었다.

허나 담천의는 잠시 주춤거렸을 뿐 뒤로 물러나는 유항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그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고 목 부위가 부풀어 올라 사람의 몰골로 보이지 않았는데 유항의 몸을 잡으려고 다시 덮쳐들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상태였고,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그런 모습은 마치 상처를 입은 호랑이가 미쳐 날뛰는 것 같았다.

그녀는 급히 몸을 바닥에 뉘이며 옆으로 굴렀다. 세상에 저런 자가 존재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춘약이 진력을 격발시키는 작용을 한다지만 아마 대사형인 장철궁이라도 저리 지독하게 당했다면 움직이기 힘들었을 것이다.


광폭한 담천의의 모습에 겁이 덜컥 솟아올랐다. 이제는 저 자를 죽이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몸을 지키는 게 급선무였다. 그녀는 연신 백옥 같은 쌍수를 휘두르며 담천의를 다가오지 못하게 했다. 그럼에도 담천의는 교묘하게 우수를 뻗어 유항의 팔꿈치를 잡아챘다.

순간 유항은 왼팔이 마비되는 느낌이 들었다. 태극산수의 묘용은 의식이 없는 가운데서도 그 위력을 발휘했다. 유항은 자신의 염화심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담천의의 행동을 제어하고자 했다. 이미 이성을 잃은 상대라면 염력은 그 위력을 더한다. 허나 담천의는 잠시 주춤했을 뿐 여전히 자신의 허리를 감아오고 있었다.


퍼퍽--!

그녀는 황급히 우수로 담천의의 가슴을 격타했다. 그 위력은 바위라도 쪼갤 정도여서 가슴을 격타당한 담천의가 팔을 놓고 잠시 멈칫했다. 두려움이 역력한 유항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급히 석침 모퉁이에 있는 다리를 잡아 돌렸다. 그러자 침상의 한쪽이 돌아가며 조그만 구멍이 벌어졌는데, 그녀는 급히 그 안으로 빠져 들어갔다.

퍼퍼펑----!

구멍이 채 닫혀지기 전에 피를 토하며 담천의가 우수를 뻗으며 침상을 향해 장력을 퍼부었다. 지금 그의 목적은 유일하게 여자의 몸이었다. 자신의 온몸을 헤집고 있는 춘기를 발산할 여자의 몸뚱아리뿐이었다.

유항이 사라지자 담천의는 거친 고함과 함께 마치 먹이를 놓친 맹수처럼 날뛰었다. 허나 그 위력은 현저하게 떨어져 침상을 부셔 트리기는 했지만 구멍이 닫히는 것을 막지 못했다. 구멍이 닫히자 그는 미친 듯 고함을 지르며 고개를 흔들었다. 온몸은 피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미 혈맥이 파열될 지경인지라 불덩이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뜨거운 숨이 쉴 새 없이 가슴에 기복을 일으키며 밷아지고 있었다.

“.......!”

그러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그는 다시 먹이를 찾은 듯 괴이한 미소를 떠올렸다. 거기에 빙기옥골(氷肌玉骨)의 나신이 있었다. 조각을 해놓은 듯한 완벽한 여인의 나신이 있었다. 욕조 속에 상반신을 드러낸 채 꼼짝을 하지 않고 있는 완벽한 나신.

그가 목적했던 여자는 이미 사라졌지만 이 나신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눈을 까뒤집은 채 짐승과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남궁산산에게 달려들었다. 이성을 잃어버린 그는 이미 짐승이었다.

-------------

“다행이군...”

우교는 지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을 밷았다.

“영주께서 남기신 것이오?”

뒤따르던 백렴이 다가들며 물었다. 백렴의 뒤로는 흑구(黑球)가 양 손가락에 두개씩 철구를 낀 채 매서운 눈초리를 번뜩이고 있었다. 백렴과 같이 있던 두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미 변을 당한 것 같았다. 남아있는 세 사람 역시 멀쩡한 데가 없을 정도였다. 그들 역시 악전고투를 겪었던 것이 분명했다.

“남긴지 채 하루가 지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군.”

우교는 담천의가 남긴 마지막 표식을 유심히 살피며 고개를 끄떡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표식이 남아있는 것은 담천의가 아직 무사하다는 의미였다. 한동안 표식이 없어 걱정을 하고 있었던 터였다.

“헌데 왜 여기서 그 자와 헤어진 것일까? 출구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우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럼 영주께서는 아직 이곳을 빠져 나가시지 않았다는 말이오?”

우교의 모호한 태도에 백렴이 초조한 듯 물었다.

“그들의 기습이 멈춘 지 얼마나 지난 것 같은가?”

우교는 대답 대신 백렴에게 되물었다. 이곳에 들어온 자신들을 수없이 기습했던 자들을 말함이다. 그 와중에서 아까운 수하 두 명을 잃었다.

“확실치는 않지만 족히 열 시진은 지난 것 같소.”

“바로 그것이네. 이곳에 있는 자들의 목적은 오직 영주뿐이란 의미지. 아마 이 표식을 남긴 그 때부터 우리에 대한 공격이 멈추었다고 봐야 한단 말이네.”

백렴의 얼굴에 어두움이 깔렸다.

“영주께서 당했을 것이란 말씀이오?”

“모르지. 허나 영주는 그리 쉽게 당할 사람이 아니네. 이제부터 찾아 봐야지.”

우교는 표식을 다시 한번 세밀하게 살피고는 주위를 차근차근 훑기 시작했다. 백렴은 우교의 뒤에서 혹시나 모를 기습에 대비해 바짝 긴장을 하며 경계했다. 우교가 막혀 있는 좁은 통로로 들어서며 벽면을 살폈다.

“이곳이군.”

우교가 한쪽 벽면에 귀를 가져다 대고 가볍게 두드렸다. 소리에 진동이 느껴지자 벽 저편에 빈공간이 있음을 확신했다. 좌우 양쪽과 달리 일정 공간을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어디 열 수 있는 장치가 되어 있을 텐데.....”

기관의 장치는 대개 돌출되어 있는 법이다. 허나 아무리 살펴도 매끄러운 벽일 뿐 특별한 것이 보이지 않았다. 우교는 재차 조심스럽게 손의 감촉으로 이곳저곳을 쓰다듬으며 뭔가를 찾는 듯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백렴이 불쑥 물었다.

“도대체 살수는 기관지학(機關之學)에도 능통해야 하오?”

백렴은 우교와 동행하면서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지금까지 무사한 것은 우교 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우교 없이 자신과 수하들만 이곳에 들어왔다면 아마 벌써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

“설치는 하지 못해도 파해하는 데는 능통해야 하네. 우리의 목표는 흔한 사람들이 아니지. 최소한 호위나 기관지학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있는 인물들이 대부분이네.”

“살수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구려.”

누구든 마찬가지겠지만 백렴 역시 지금까지 살수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돈을 위하여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비겁하게 암습을 하거나 치졸한 방법으로 사람의 목숨을 노리는 인간쓰레기 정도로 치부하던 터였다. 허나 우교와 있는 동안 인식을 바꾸었다.

“비웃지 말게. 살수가 되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아무나 살수가 되는 것은 아니네.”

그의 말대로 살수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살수는 본래부터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을 죽이고 다시 태어나야 살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살수는 완벽히 자신을 죽였던 자만이 완벽한 살수가 되는 것이다. 자신을 죽일 수 있어야 노리는 자를 죽일 수 있다. 한번의 실수는 곧 죽음이고, 언제나 죽음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살수다.

“여기군.”

우교는 동작을 멈추고 오른손 엄지로 한곳을 지그시 눌렀다. 그러자 손바닥만한 원형의 구멍이 생겨나며 벽으로 생각되었던 곳이 열리기 시작했다. 육중한 소리와 함께 벽이 밀리며 사람 하나 가까스로 지나갈 정도의 좁은 공간이 나타났다. 우교가 백렴에게 눈짓을 주며 조심스럽게 그 안으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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