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순발력인가 과단성인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노무현-정동영 단독회담 풀이

등록 2006.03.16 10:36수정 2006.03.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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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자료사진)
정동영 열린우리당 당의장. (자료사진)오마이뉴스 이종호
윤곽이 대충 드러났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대통령과의 14일 대화내용을 설명하면서 "대통령은 이 총리의 유임 쪽 생각도 많이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도 대통령이 당의 건의를 수용한 점을 강조했다. 이 총리 사퇴가 자신의 작품이란 뜻이었다. 물론 이런 설명을 통해 기대한 것은 자신의 위상 제고다.

하지만 일부 언론은 정 의장의 설명을 뒤집었다. 노 대통령이 이미 귀국 전에 이 총리 사퇴를 결심했다는 것이다. <한국일보>는 노대통령이 "이 총리를 유임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한 때는 내기골프 파문이 터진 10일이었다"고 보도했고, <동아일보>는 청와대 핵심부가 "11일을 전후한 시점에 이미 총리의 교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고 전했다.

그 뿐 아니다. 두 신문은 정 의장이 청와대의 이런 기류를 읽고 본격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하기도 햇다.

그래서 <한국일보>는 당청간의 막전막후를 "잘 짜여진 한편의 드라마"일 수 있다고 했고, <동아일보>는 "노 대통령 연출-정 의장 주연 드라마" 같다고 했다.

사실이 이렇다면 정 의장이 머쓱해질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깔아놓은 멍석 위에서 춤을 췄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처세 순발력을 높이 발휘했다는 평을 얻을 수도 있다.

하지만 꼭 박하게 평할 일만도 아니다. 정 의장이 당 최고위원들과 함께 이 총리 사퇴 불가피론을 결정한 시점은 9일, 청와대가 입장을 굳히기 전이다. 나름대로 정치적 과단성을 보였다고 평할 수도 있다.

정 의장이 잃는 게 더 많다


짚어야 할 건 이런 공치사 문제가 아니다. 노 대통령이 이 총리 사퇴를 수용한 과정이 의미심장하다.

노 대통령은 이 총리 본인의 사퇴 의사를 접하고서도 즉답을 피했다. 그랬다가 애초 약속에 없던 정 의장과의 만남을 자청해 당의 건의를 수용했다. 이는 뭘 뜻하는가?


<동아일보>는 "정 의장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서"라고 했지만 너무 소박한 분석이다. 단지 그런 뜻이었다면 정 의장의 어제 '공치사' 발언을 반박하는 말들이 청와대에서 흘러나올 까닭이 없다. 달리 보는 게 맞다. 노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빚은 산물로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과정이 어쨌든 노 대통령이 당의 건의를 수용해 이 총리를 사퇴시킴으로써 노 대통령과 정 의장은 한 배를 타게 됐다. 지방선거가 잘 돼도 공은 분산되고, 못 돼도 책임이 분산된다. 하지만 이건 가장 후한 평이다. 실제로는 정 의장이 잃는 게 약간 더 많다.

실상이 어떻든 겉으로는 정 의장이 주도하고 노 대통령이 수용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에 지방선거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정 의장은 그 책임을 청와대에 돌릴 여지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다. 반면에 노 대통령은 당의 선거논리를 대폭 수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느긋해질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지방선거 결과에 따라 노 대통령이 탈당해 거국내각을 구성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는 좀 더 세밀하게 다듬어져야 한다.

이 시나리오는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배해 당청 갈등이 증폭된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물론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울 당의 주체는 특정 계파가 아니라 대다수라는 전제도 포함된다.

하지만 정 의장이 노 대통령과 한 배를 탔다면, 더더욱 그 배를 주도적으로 마련한 사람이 정 의장으로 묘사됐다면 지방선거 후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우기가 쉽지 않다. 지방선거에 올인하려는 자신을 지원하려고 '천생연분'마저 내친 대통령에게 푸념을 늘어놓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렇게 보면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한다 해도 당청이 즉각 갈라서는 모습을 보일 공산은 크지 않다는 잠정 결론을 얻게 된다. 아울러 노 대통령이 탈당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해도 그 직접적인 원인이 지방선거 패배는 아닐 것이라는 추론도 성립한다.

만약의 경우, 즉 정 의장이 '안면몰수'하고 청와대를 치받는 모습을 보인다 해도 노 대통령으로선 밑질 게 별로 없다. 당의 건의를 수용하면서까지 정 의장에 길을 열어줬건만 이제 와서 보따리 내놓으라고 한다고 반박할 수 있다. 탈당 명분이 배가되는 것이다.

정 의장은 위상을 높이는 대가로 발목이 잡혔다. 살 길은 지방선거에서 이기는 것뿐이다. 그럼 일사천리다. 하지만 패한다면?

세상에 공짜란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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