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리고 싶어"... 기간제 교사는 파리 목숨

[숲페의 학교와 인권이야기 6] 기간제 교사에게 인권은 있는가

등록 2006.04.27 10:05수정 2006.04.28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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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제 교사로 임명한다는 내용이 담긴 임명장. 그나마 임명장이라도 주는 학교는 낫다. 임명장 없이 구두 계약만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하는 학교도 많다. ⓒ 임정훈

얼마 전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기간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을 두고 인터넷 게시판이며 공중파 언론들까지 매우 요란을 떨며 집중보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각 언론들의 보도에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거의 모든 언론들은 사건의 구조적 본질을 찾아 보도하기보다는 "성폭행 사건이 벌어졌는데 가해자의 개인 정보가 인터넷에 지나치게 유출되어 가해자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어 문제"라는 식의 입장을 보였다.

"'가해자의 인권'은, 성폭력 가해용의자가 수사과정에서 고문이나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을 권리를 의미"하며, "사법권을 가진 국가를 상대로 용의자와 피해자의 권리 차원에서 주장되어야 하는 것" 이라는 정희진(<페미니즘의 도전>, 교양인, 2005)의 주장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 봄직한 말이다.

결국 피해자의 상황보다는 가해자의 신분 노출에 대해 인권침해 운운하는 언론의 보도는 피해자를 두 번 죽인 꼴이 되고 말았다. 이 사건의 본질은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 아니라 '기간제 여교사' 성폭행 사건이다.

그는 계약기간이 끝난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였다. 기간제 교사는 교장·교감 등 학교의 관리자는 물론 정규직 교사들에게 밉보여서 이득이 될 일이 없다. (재계약이 가능한 상황에서) 계약기간을 연장하기 위해서는 성실하게 충성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야 재계약이 이루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진 그날도 그는 만료된 계약 기간을 연장할 수 있는 희망의 끈이라도 잡아보려는 마음에 정규직 교사들과 어울리는 술자리에 참석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희망의 끈으로 알고 붙잡은 것이 썩어 문드러진 동아줄이었으니.

만약 그가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을 수밖에 없었던 '기간제' 교사가 아니었다면 그날처럼 무서운 일이 쉽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너, 짤리고 싶냐?"... 기간제, 어떤 수모도 다 참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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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떠나야 하는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의 슬픔을 말해주는 만평 ⓒ <교육희망> 정평한

기간제 교사들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겪는 수모와 비인간적 대우는 이것 말고도 숱하다.

언론의 최근 보도처럼 ▲정규직 채용을 조건으로 수천만 원의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정규직 자리가 있음에도 일단 기간제로 채용하여 성향(일명 충성도)을 파악한 후 정식 발령을 내거나, 다른 사람을 같은 조건으로 다시 채용하는 경우 ▲학교나 교사들의 회식 자리 등에 자신의 의사대로 빠지거나 다른 볼일을 볼 수 없는 경우(그랬다간 불성실한 것으로 '찍혀서' 정규직 발령이 안 나거나 재계약이 안 될 수 있다)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 ▲신분의 차이에 따른 정규직 교사들과의 미묘한 갈등 등 기간제 교사의 비애는 말로 다 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인권은 상상할 수 없는 단어이다. 충남의 한 고교에서 기간제로 근무한 적이 있는 박 교사는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제가 기간제로 있던 학교의 교장 선생님은 무척 청소에 신경 쓰던 사람이었어요. 그래서인지 매일 기간제 교사에게만 청소 문제를 지적하며 대놓고 '너, 짤리고 싶냐? 너 내 성격 몰라? 나중에 안 좋은 꼴 당할래?'라며 위협을 하더군요. 그 말에 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기간제 교사의 목숨은 파리 목숨이니까 어떤 말을 듣더라도 다 참아야 했죠."

체육과목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다 지금은 체육관 관장이 된 이 아무개 씨도 "잘못된 선택" 이었다고 말하며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그는 주변 사람의 소개로 사립학교 행정실장에게 5백만 원을 주고 기간제 교사로 들어갔다. 행정실장은 재단 이사장의 동생으로 실권자였고, 5백만 원은 해당 과목의 교사가 3년 후면 정년 퇴직을 할 것이니 그 때 정규직 발령을 내 준다는 '밀약'의 대가였다.

그러나 약속한 3년이 지난 후 그는 학교를 나와야 했다. 정년 퇴직으로 결원이 생긴 자리에 교장의 아들이 정규직으로 발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는 어디에도 하소연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들의 말을 믿은 자신의 잘못된 선택이 마냥 후회스럽기만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비정규직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는 슬픈 일이 일어나는 곳이 바로 '참되거라 바르거라'를 가르친다는 대한민국의 학교다. '참된 것'과 '바른 것'이 과연 무엇인지에 의문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다.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보통의 마음이나 생각을 말한다. 다르게 말하면 그것이 '인권'이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보편적인 정서가 없다면 인권도 없는 것이다.

사람의 신분을 갈라 차별하고 갈등하게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 아니다. 우리의 학교(사회)가 좀 더 인간에 대한 예의를 공부해야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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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청 누리집에 올라온 기간제 교사 모집 공고들. 매년 학기초가 되면 기간제 교사를 구하는 학교와 기간제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의 글이 각 시도 교육청 누리집을 도배하다시피 한다. ⓒ 임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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