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추리 평화공원에서. 정한섭씨와 박제우, 심하나, 과학기술대 학생들송성영
"어떤 일로 가십니까?"
"친구 만나려구요."
"신분증 좀 보여 주시죠."
"왜요? 친구 만나러 가는데 신분증이 왜 필요하죠?"
"시위가 있을지 몰라서요."
20일, 평택 대추리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경찰들이 우리가 탄 자동차를 막았다. 우리 차에는 공주시 반포면에 사는 정한섭(41)씨와 한국과학기술원(카이스트)에 다니는 심하나(화학과 4년)씨, 박제우(전산과 석사과정)씨와 나를 포함해 모두 네 명이 타고 있었다. '과기대' 학생들은 처음 당하는 일이라서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었지만 정 선생은 당당했다.
"무슨 시위가 있다고 그래요! 오늘 시위 없는 거 다 알고 있는데, 여기 있어요 신분증, 됐지요."
"뒤에 있는 두 사람 신분증도 보여 주시고…."
"아참, 왜 자꾸 그래요! 우리가 신분증을 꼭 보여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겁니까!"
"그건 아니지만, 혹시 시위가 발생해 다치기라도 하면 보호해야 하니까요."
"아, 걱정하지 말아요! 누가 누굴 보호해줘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길이나 막지 말고 비켜요!"
"트렁크 좀 열어주세요."
"왜 트렁크에 쇠파이프라도 들어 있을까 봐서요, 트렁크 열려 있으니까 얼마든지 봐요!"
검문 경찰은 막무가내로 트렁크를 열어 보았다. 트렁크 안에는 우리 집에서 재배한 야채와 정 선생이 사온 돼지고기 몇 근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문정현 신부님과 몇몇 대추리 주민들과 자원봉사 친구들을 위한 저녁식사 거리였다.
힘든 친구들 만나 저녁식사 좀 하겠다는 우리 일행은 법 조항에도 없는 무지막지한 검문검색을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잘난 법 조항에도 없는 검문검색이었기에 우리는 당당하게 통과할 수 있었다. 국경선 통과하듯 까다로운 통관 절차를 밟고서야 대추리로 들어설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