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탈북자 정책, 자기 발등 찍나

[김태경의 동북아 브리핑] 담 넘어 미 공관에 들어간 탈북자들

등록 2006.05.23 10:02수정 2006.05.23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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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선양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와 대기중이던 탈북자 4명이 담을 넘어 바로 옆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으로 넘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중국의 한 국가 공관에 진입하려는 탈북 난민들.
중국의 선양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와 대기중이던 탈북자 4명이 담을 넘어 바로 옆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으로 넘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사진은 중국의 한 국가 공관에 진입하려는 탈북 난민들.자료사진
중국의 선양에 있는 한국 총영사관에 들어와 대기중이던 탈북자 4명이 담을 넘어 바로 옆에 있는 미국 총영사관으로 넘어간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이 발생한 날짜 자체는 확인되지 않는다. 한국에 이 사건이 알려진 것은 지난 19일이다.

한국 정부는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정황을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들의 보도를 종합해보면, 탈북자들은 20~30대의 남녀 4명으로 원래 한국에 오기 위해 선양의 한국 총영사관에 진입했다. 그러나 미국이 탈북자 6명을 난민으로 인정해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지난 6일 듣고 한국 총영사관 쪽에 미국행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행을 요구가 접수되기 힘들자 담을 넘어 미 영사관으로 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발생했다. 탈북자들은 미 영사관에 가는 과정에서 한국 총영사관에 근무하던 중국인 경비원을 밧줄로 묶는 행동까지 했다는 보도가 있다.

남한의 일부 북한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탈북 기획자들의 지시 하에 다시 한번 여론을 환기시키고 중국 정부를 더욱 코너에 몰기 위해 벌인 계획적인 행동으로 보고 있다. 북한 인권 문제를 강력하게 제기해왔던 사람들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탈북자들을 북송하는 등 문제가 많다고 비난해왔다.

그러나 만약 탈북 기획자들의 의도가 그런 것이었다면 오히려 목표물을 잘못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으로 한국 정부와 중국 정부가 곤혹스러운 지경에 처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가장 큰 부담을 진 쪽은 미국 정부다.

미국이 이번 탈북자를 받아들인다면?

지난 2004년 미국이 북한인권법안을 만들고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을 때 국토안보부에서 반대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탈북자들을 가장해 테러리스트들이 미 공관에 얼마든지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나는 탈북자이며 미국으로 가고 싶다"며 미 공관에 밀고들어온 사람이 자폭 테러범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


미 국무부는 지난해 2월 한 보고서에서 자국 외교·영사시설에 탈북자들이 "억지로 또는 몰래 들어오려는 것은 심각한 보안상의 위험을 일으키고 탈북자 자신들까지 중대한 위험에 빠질 수 있다"며 "사전허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 미국 시설물에 불법 진입하지 않도록 강력 권고하는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에 있는 미 대사관이 경비는 삼엄한데 탈북자들이 이 곳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물리적 충돌을 불사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뜻하지 않은 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 만약 이번 탈북자들을 미국이 받아들인다면? 앞으로 탈북자들은 미국 공관에 들어가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좀 더 기술적인 문제들도 있다. 미국행을 원하는 사람들은 탈북자들뿐만 아니라 중국인들과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들도 마찬가지다. 조선족과 북한인을 구분하는 것, 더구나 한국인도 아닌 미국인들이 둘을 분간하는 것은 쉽지 않다. 조선족 역시 탈북자를 자처하며 미 대사관에 들어올 수 있다.

국제문제조사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탈북자들이 한국 대사관 직원을 묶고 탈출했다는 언론 보도가 사실이라면, 이 사건을 기획했던 사람들은 자충수를 둔 것"이라며 "이번 행동은 미국식 기준으로 본다면 일종의 범죄행위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탈북자들이 미국에 가기 위해서는 중국 정부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동안 중국 정부는 탈북자들의 한국행을 묵인해왔다. 그러나 미국행을 바로 허용한다면 그들의 맹방인 북한을 자극하게 될 것이다. 미국은 6자 회담에 북한이 복귀하도록 중국이 힘을 쓸 것을 요구하고 있다. 탈북자 문제 때문에 북한과 중국 사이가 틀어진다면 김정일 정권이 6자 회담에 복귀하도록 설득하는 중국의 힘은 약화될 것이다.

중국 협조 없이 미국 갈 수 있을까?

거꾸로 미 행정부가 이번 탈북자들을 내놓으라고 중국 정부에 압력을 가한다면 양국의 외교적 마찰은 불가피하다. 역시 6자 회담 재개를 위해서는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인 미 행정부 입장에서 볼 때 부정적이기는 마찬가지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미국이 대북 압박을 위해 탈북자 수용 조치를 취했는데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며 "이미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한 이상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안 받아들일 수 없고, 그렇다고 받아들이면 앞으로 유사한 사건이 계속 발생할 테니 고민 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미국행을 원하는 탈북자들 상당수가 이미 탈북한 지 몇년 씩 되어서 사실상 중국화된 사람들"이라며 "결국 이들은 미국에서 돈을 벌겠다는 것으로, 북한 인권 향상이라는 애초의 미 행정부의 의도와는 간극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공은 미국에 넘어갔다. 미국이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우선 이번 사건과 관련된 탈북자들만 선별적으로 수용하되 앞으로는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중국 정부에 하는 방안이다.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가 산적해있는 만큼 합리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탈북자들을 선양의 미 영사관에 장기간 수용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사한 사태의 방지를 위해 아예 "물리적으로 대사관에 밀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맨 마지막 방법을 사용할 경우 미국이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수용하겠다는 공언과 어긋난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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